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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아 Jan 26. 2024

더이상 굴릴 수 없는 돌덩이는
내 인생수업료

48분에 내 인생 48년을 담다.

벌써 30분째.

시동을 걸었는데 걸리지 않는다.

화가 난 차는 부들부들

당황한 나는 안절부절


마치, 내 인생 같다. 


시동이 걸리지 않아 애먹었던 48분.

삶을 몰라 쩔쩔매며 달리다 멈추다를 반복했던 48년.

48분은 나의 48년을 고스란히 대변한다.


지난 시간들, 내 의지가 더 이상 굴릴 수 없는 돌덩이(주1)들이었다. 하지만 이 지난 시간들은 내가 살면서 보상받은 것에 충분한 수업료를 지불(주2)했던 시간들이었다. 앞으로 내게 올 모든 시간 역시 수업료를 지불하고 큰 보상을 얻게 될 날들이리라. 지난 시간이 47분 만에 이렇게 그려진다는 것은 앞으로의 시간도 천리마보다 빠르게 지나갈 것을 내게 경고했다!



Copyrights 2024. 정근아 all rights reserved.




첫차

부모님께 선물 받은 까만색 작은 차

운전하는 법을 몰라 고생만 시킨 차

하지만, 나를 여기저기 데리고 다닌 충복이었다.


0살

세상에 나와 부모.라는 이들을 만났다.

사는 법을 몰라 고생만 시켜드렸지만

하지만, 먹고 말하고 함께 하는 법을 알려주신 은인이었다.




20분

어딜 가든 나의 검정차는 나의 충복이다.

이제 제법 여기저기 여행도 시켜주니 충복에서 애마로 승격시켰고

늘 그렇듯 사랑은 아픔이다.


나름 어른에 진입했다는 이유로 여기저기 만나러, 즐기러, 배우러

맘껏 즐기며 다녔던 시절

늘 그렇듯 여행은 깨달음의 고통이다.

나의 방황은 20대의 무수한 경험으로, 자유로 승격되었다.




27분

7은 행운의 숫자가 맞다.

3은 마법의 숫자도 맞다.

30분이 되기 3분 전, 행운의 27분에 시동이 걸렸다.

그러나 이내 꺼진다.

하지만, 한 번 걸린 시동은 ‘가능성’이다!


뭔가 불안정하지만 27세는 굉장한 어른인 듯 착각하는 나이다.

더 큰 시도를 하고 더 큰 물에서, 나는 더 크게 놀아보지만

이내 커다란 좌절과 상처도 함께 왔다.

하지만 이 모두는 나의 양분으로 지금 내 피가 되어 내 안에서 돌고 있다.




29분

안될 때는 ‘포기’도 방법이다.

계속 돌려보던 키를 잠시 내려놓았다.

부글거리며 화내던 차도 잠시 침묵한다.


10년을 달려온 나의 20대도 부글거렸다.

화도 많아졌고 좌절도 깊었고 욕구도 높았다.

나는 잠시 멈췄다.




30분

뒷자리에 앉은 딸아이가 울기 시작한다.


3의 마법이 시작됐다.

세상을 움직이는 정확한 중력의 힘

한쪽이 멈추면 다른 한쪽이 요동친다.

뒷좌석의 딸아이는 조용해진 틈을 타 마구 울어 제친다.


정신없이 달리다 멈춘 30대.

나에겐 아이가 생겼고

역시 멈춤은 새로운 걸음의 시작이었다.

새로운 인생으로의 진입에 20은 멈췄지만 30은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35분

다시 시동을 걸어본다. 

왠지~라는 기대감을 갖고, 키를 돌려보지만

힘이 빠진 엔진 소리만 여전하다.


아이가 유치원에 처음 가는 날.

나는 새로운 꿈을 꾸고 세상밖으로 나가보지만

휴~ 역시라는 실망감의 한숨만 나온다.

5년의 경력단절을 실감했다. 힘이 빠진다.




40분

진짜 포기직전이다. 마지막 시도를 해본다. 시동을 걸다 말다 반복한다. 

하지만, 여전히 시동은 걸리지 않는다. 

그냥 보험사를 불러야 하나?  

때마침 뒤늦게 차에 올라탄 아들.

아이들과의 놀이에 잠시 집중하기로 했다. 

까르르 웃다 보니 한숨이 사라졌다. 


의욕은 사라진채, 마지막이라는 전제를 깔고 또또또 시도를 한다.

하는 것마다 나와 맞지 않다.

전업주부로 살아야 하나? 

때마침, 둘째의 탄생. 

기쁨마음으로 아이의 양육에 다시 집중하기로 했다.

마음을 고쳐 먹었더니 나에게 웃음이 찾아왔다.  




45분

잠깐 한눈판 사이 5분이 지났다. 

다시 시동을 걸어본다. 

드드드드~

드드드드~

소리가 다르다. 


육아의 시간, 5년도 지났다. 

다시 세상밖에 나의 것이 있나 또 찾아본다. 

재도전이다. 

호주이민과 디자인

완전 딴 세상이다. 




48분

힘겹지만 이제 시동소리가 난다. 

시동이 걸릴 것 같다. 

부르르르 ~

계속 시도해 보면 되겠다.


새로운 환경, 힘겨운 영어. 그래도 살만하다. 

희망이 보인다. 

동화작가.

계속 시도해 보면 되겠다. 






주1)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 2000. 책세상

주2) 구도자에게 보낸 편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2005, 오래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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