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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30권의 책을 사오는 이유

by 근아

호주에 살면서 한국 책(종이책)을 구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전자책이 보편화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종이책을 선호한다. 직접 책장을 넘기는 감촉, 눈으로 활자를 따라가며 집중하는 느낌,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문장에 줄을 긋고, 메모까지. 이런 경험은 전자책이 결코 줄 수 없는 즐거움이다. 하지만 해외에서 종이책을 구입하려면 비용과 시간, 그리고 절차적인 불편함까지 감수해야 한다.


내가 호주에서 한국 책을 구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한인타운에 있는 작은 서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내가 방문하는 곳은 6평 남짓한 작은 동네 서점이라 주로 베스트셀러 위주로만 구매가 가능하다. 원하는 책은 주문도 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렇게까지는 해본 적이 없다. 책값은 한국 정가의 2배 정도인데, 17,500원짜리 책을 호주달러 38불(34,200원)에 구입했다.


두 번째 방법은 한국의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여 해외배송을 이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1-2권만 사기 위해서는 이용하지 않는다. 배송비가 더 비싸게 책정되기 때문이다. 14,000원짜리 책을 구입할 때 해외배송비는 19,300원이나 된다. 그래서 나는 사고 싶은 책이 10권 이상 모이면 한꺼번에 구입하는 편이다.


물론 지인을 통해 조금 더 저렴한 택배 배송을 부탁할 수도 있지만, 매번 그렇게 부탁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렇다고 책을 포기할 수도 없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책을 신중하게 고르게 된다. 꼭 필요한 책을 모아 한 번에 주문하거나, 한국 방문까지 기다리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한국을 방문할 때면 책을 캐리어 한가득 사 오는 것이 가장 확실한 해결책이 되었다. 다행히 여러 번의 한국 방문을 통해 모닝캄 회원 자격을 얻어 두 개의 캐리어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그 덕분에 호주를 떠날 때 빈 캐리어를 챙겨 가 한국에서 구입한 책으로 가득 채워온다. 해외배송비를 생각하면 이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다.


한국에서라면 서점에 들러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이지만, 여기에서는 책 한 권을 손에 넣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여정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만큼 책이 도착했을 때의 기쁨도 크다. 오랜 기다림 끝에 손에 쥐는 순간, 소중한 선물을 받은 듯한 감각이 든다.




이렇게까지 번거로운 과정을 감수하면서 책을 구입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책은 생각을 확장시키고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어로 된 책을 읽을 때, 나는 더 자연스럽고 본능적으로 사고하게 된다. 언어는 사고의 틀을 만든다는데, 어쩌면 나는 내 모국어로 된 문장을 통해 나 자신을 더 온전히 이해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쉽게 얻을 수 없는 만큼 한 권 한 권이 더욱 소중하다. 한국에 있었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서점에 들러 구입했을 책이지만, 여기서는 책을 한 권 손에 넣는 것 자체가 하나의 과정이 된다. 어떤 책을 살지 신중히 고르고, 배송을 기다리는 시간 동안 더 기대감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어렵게 도착한 책을 펼칠 때, 오래 기다린 답을 만나는 기분이 든다. 책 한 권이 주는 무게감이 다르게 다가오는 것이다.




나에게 책을 구하는 과정이 독서를 위한 것만은 아니다. 나는 북디자이너로서 책의 내용뿐만 아니라 그 형태와 디자인에도 관심이 많다. 종이의 질감, 인쇄 방식, 제본 방식, 표지의 질감과 색감까지—이 모든 요소가 책을 하나의 완성된 작품으로 만든다. 한국에는 디자인적으로 훌륭한 책이 많아, 그 책들을 직접 손에 쥐고 살펴보는 것 자체가 하나의 배움이 된다.


특히 해외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감각적인 요소들을 경험하기 위해, 나는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다양한 책을 구입해 온다. 책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직접 보고 느끼고 싶은 마음에서다. 이를 통해 나는 내 작업에 새로운 영감을 얻고, 더 나아가 디자인적 시야를 확장할 수 있다.


이렇듯 책을 구하는 과정 자체가 쉽지 않지만, 그만큼 책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진다. 이렇게 어렵게 구한 책들은 깊은 사색을 불러일으키는 글로, 어떤 것은 세밀한 디자인적 영감을 주는 오브제로 내 곁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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