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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개인 브랜딩 '연필로 짓는 집'

theMe Studio, Written in Pencil

by 근아

나에게는 오래전부터 꿈꿔왔지만,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있다.


조그마한 작업실을 차려서 그림도 그리고, 다양한 아트 크래프트를 가르치는 공방을 여는 것이었다.


자수에 빠져있을 때는 자수공방을,

북아트에 빠져있을 때는 북아트 공방을,

까또나쥬에 빠져있을 때는 까또나쥬 공방을 꿈꿨다.


아들이 3살이 되어갈 무렵, 2017년즈음, 유치원에 들어갈 시기를 기다리며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1:1 디자인 수업까지 신청해

일러스트레이션 프로그램으로

브랜딩을 위한 디자인을 배우며

본격적으로 준비했다.


그 당시, 내 닉네임 '카린'과 딸아이의 영어 이름 '케일린'을 섞은 '카린 케일린 스튜디오_린린'라는 상상의 공방을 생각하며 로고, 엽서, 패키지 디자인을 했다.





Copyright © 정근아 2025.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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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예상치 못한 호주 이주라는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면서, 그동안 열심히 준비해오던 공방오픈에 관련 꿈들은 잠시 뒤로 미뤄두어야만 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를 새로운 기회로 삼아, 그동안 쌓아온 디자인 작업의 컨셉과 경험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며 호주 디자인 대학원 진학을 위한 포트폴리오를 차근차근 준비해 나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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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며칠전, 오랜만에 컴퓨터 파일들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예전의 디자인 작업들이 마치 오래된 편지처럼 정겹게 다가왔다. 수많은 파일들을 하나씩 열어보니, 그 속에는 내가 그동안 꿈꾸어왔던 모든 순간들과 그 시절의 설렘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밤늦게까지 작업하며 완성했던 로고들, 여러 번의 수정 끝에 만족스러웠던 패키지 디자인들, 그리고 처음 시작할 때의 서툴렀던 스케치들까지.


노트북 화면 속 오래된 스케치들과 완성된 디자인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그 순간 내 안에 여전히 살아있는 그때의 꿈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다가왔다. 각각의 작업물에는 그 당시의 고민과 노력, 그리고 성취감이 고스란히 배어있었고,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때의 감정들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내 마음 한켠에 자리 잡고 있던 그 열정이 다시 한번 내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다. 그리고 이런 우연한 발견이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잠시 멈춰두었던 꿈을 다시 이어나갈 시간이 온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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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한 문장이 떠올랐다.


"연필로 짓는 집"


theME에서 운영하는 스튜디오의 이름으로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이다. "연필로 짓는 집"이라는 이름은 창작의 시작점인 연필과 이야기가 쌓이는 공간인 집의 의미를 담아내며, 그림과 글의 스토리텔링이 만나는 특별한 공간을 상징하는 이름이다.


글을 짓다

그림을 짓다

집을 짓다


"짓다"는

무언가를 만든다는 의미뿐 만 아니라,

창작하고 형성하는 의미를 담고 있어

폭넓게 활용할 수 있는 포괄적인 단어였다.


꿈을 짓다

시를 짓다

이름을 짓다

노래를 짓다

미소를 짓다

표정을 짓다

농담을 짓다

관계를 짓다

인연을 짓다


오늘은 그 이름에 담겨 있는 의미를 좀 더 살펴볼까 한다.





< 나의 삶을 도슨트하다. 2화 >




연필로 짓는 집 theMe Studio, Written in Pencil



2017년 무렵부터, 오랫동안 여러 공방을 꿈꾸며 로고의 디자인은 끊임없이 변화했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한결같이 유지되어 왔다. 이는 내 삶에서 가장 소중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에, 나를 표현하는 로고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은 듯 하다.


그것은 .


그리고 그 집 모양을 뒤집으면 나타나는


연필이다.







[ 집. House. ]


나에게 집은 가장 안락한 공간이자, 삶의 터전이며, 나만의 이야기가 쌓여가는 곳이다. 물리적 구조를 넘어서 나의 존재를 형성하는 근원이며, 그 안에서 시간과 기억이 쌓이며 나라는 사람이 만들어진다. 마치 내면을 가꾸듯, 집은 내 삶을 담아내는 그릇이 되어간다.


나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은 자연스레 집의 형태와 분위기에 스며든다. 나에게 집은 창작의 공간이자, 때로는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성(城)이다. 이곳은 내 내면을 그대로 비추고,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드러내는 공간이다.


하지만 집은 나 혼자만의 공간이 아니다. 가족, 친구, 그리고 나와 연결된 이들이 함께 관계를 맺고 기억을 나누는 곳이다. 이곳에서 느끼는 따뜻함과 소속감은 바로 이런 관계들이 만들어낸 결실이다.


집은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시간과 함께 변화하고 성장한다. 벽에는 세월의 흔적이 새겨지고, 새로운 것들로 채워지며, 곳곳에 내 삶의 자취가 깃든다. 쌓인 기억들은 이곳을 나의 역사가 깃든 특별한 공간으로 만든다.


때로는 집을 떠나고, 때로는 돌아온다. 독립을 위해 떠날 때도 있지만, 시간이 흘러 다시 돌아와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기도 한다. 나에게 집은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근원이자, 새로운 시작을 위한 출발점이다.


결국 집은 나의 삶과 정체성이 형성되고, 관계가 만들어지며, 시간이 쌓이는 철학적 공간이다. 나는 집을 지어가며 내 삶을 만들어가고, 집은 그렇게 나를 담아내는 또 다른 나 자신이 되었다.




[ 연필. Pencil. ]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그림을 그려온 나에게는 가장 소중한 도구이며, 수많은 미술 용품 중에서도 연필은 특히 애착이 간다. 나는 여전히 연필을 사용한다.


연필은 나의 생각을 형상화하는 도구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아이디어를 기록하며,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낸다. 연필은 지울 수 있기에 창조와 수정을 거듭하며 완성으로 나아가는 과정 자체를 상징한다.


연필은 닳아 사라지면서도 스케치북과 노트 위에 흔적을 남긴다. 자신을 깎아가며 이야기를 새겨 넣는다는 점에서 '희생과 기록'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 내가 살아가며 경험과 선택으로 나를 형성해 가듯, 연필도 사용될수록 자신을 깎아가며 흔적을 남긴다.


연필은 지울 수 있는 도구다. 한번 쓴 것이 영원히 고정되지 않고 수정하고 다시 그릴 수 있다는 점에서 유연함과 열린 사고를 상징한다. 완벽한 답만을 고집하지 않고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다는 삶의 태도와 맞닿아 있다.


연필은 볼펜이나 잉크처럼 강렬하고 영구적인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쉽게 흐려지거나 부러질 수 있지만, 그 안에서 연약함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삶이 완벽하지 않아도 의미가 있듯이, 연필 역시 불완전함 속에서 가능성을 품고 있다.


아직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연필 한 자루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담겨 있다. 어떤 이야기를 새길지는 온전히 나에게 달려 있다. 단순한 도구일지라도, 내가 무엇을 담아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만들어내는 존재. 그것이 바로 연필이다.


그리고 연필을 뒤집어 보면 집의 형태가 된다. 마치 생각이 쌓여 나를 형성하듯, 연필이 그려낸 흔적들이 쌓여 하나의 공간을 이루는 것처럼 말이다.




[짓다. Write. Create. Build. Form. Shape.]


나는 ‘짓다’라는 말 속에서 창조, 형성, 그리고 존재의 방식을 발견한다.


나는 글을 짓고, 그림을 짓는다.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는 과정 속에서 나의 생각과 감정을 형상화한다. 글과 그림은 나만의 시선과 해석이 담긴 세계를 구축하는 일이다. 예술과 사유 또한 나에게는 ‘짓는’ 행위와 다름없다.


나는 사람들과 관계를 짓고, 이야기를 짓는다. 의미 있는 연결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삶의 방식 또한 내가 선택하고 만들어가는 것이기에, 나는 내 삶을 스스로 ‘짓는’ 존재다.


이름을 짓는 것, 집을 짓는 것은 단순한 명명과 건축을 넘어선다. 나는 나의 공간을 만들고, 나만의 세계를 형성하며, 스스로를 다시 세운다. 나의 존재는 한 번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해체되고 다시 구축되는 과정 속에 있다.


나는 매 순간 나를 짓는다. 관계를 짓고, 나의 세계를 짓는다. 그렇기에 ‘짓다’는 나의 삶을 만들어가는 나만의 철학적 과정이 된다.




[집. 集. 모을집.]


책을 짓는 집, ‘집(集)’


‘집(集)’이라는 한자는 한 그루 나무 위로 새들이 모여드는 모습을 의미한다. 나무는 한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새들은 날아왔다가 떠나기도 하며, 때로는 머물며 지저귄다. 그렇게 새들이 모여드는 나무처럼, ‘집(集)’이라는 글자도 흩어진 것들을 모으고 연결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책도 그렇다. 한 권의 책은 흩어져 있던 이야기, 생각, 감정들이 모여 만들어진다. 시집, 동화집, 수필집… 모두가 하나의 집을 이루듯, 다양한 조각들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된다. 마치 나무 위에 모여드는 새처럼, 단어와 문장이 모여 이야기를 짓는다.


나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나만의 책을 짓는다. 한 편의 글, 한 장의 그림이 모여 나의 집이 되어간다. 책을 짓는다는 것은 단순히 글을 모아 엮는 일이 아니라, 생각을 모으고 의미를 쌓아가는 과정이다. 어쩌면 내 삶도 그렇게 짓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또한, 책을 디자인하는 나에게, 그 과정은 집을 짓는 일과 같다. 제목, 글자 크기, 일러스트, 페이지 배열 등 모든 요소가 하나로 모여 독자의 이야기를 담을 공간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공간 안에서 독자는 자신의 내면을 탐색하고,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북디자인은 결국 독자를 위한 또 하나의 집을 짓는 일이다.






연필 모양을 뒤집으면 집모양이 된다.

집모양을 뒤집으면 연필모양이 된다.


[뒤집다. Flip. Turn over. Reverse. Invert.]


나는 종종 그림을 뒤집어 본다. 방향을 바꾸면 익숙했던 장면이 낯설어지고, 숨겨져 있던 구도가 드러난다. 글도 마찬가지다. 같은 문장이라도 관점을 달리하면 전혀 다른 의미가 보이곤 한다. 그렇게 뒤집는 행위는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본질을 다시 바라보는 과정이 된다.


나의 삶에서도 뒤집는 순간들이 있었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을 다시 생각하고, 익숙한 틀을 깨는 경험을 하면서 새로운 길을 발견해 왔다. 때로는 불안했고, 예상치 못한 그림이 펼쳐지기도 했지만, 결국 그 과정이 나를 더 넓은 세계로 이끌었다. 뒤집는 것은 기존의 질서를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또한, 뒤집는 것은 균형을 맞추는 일이기도 하다. 한쪽만 계속 사용하면 닳아 없어지듯, 한 가지 생각에 갇히면 시야가 좁아진다. 한 방향에서만 보던 것을 뒤집으면, 보지 못했던 가능성이 열리고 무게 중심이 조정된다. 삶에서 균형을 찾는 과정 역시 그런 것 아닐까.


어떤 전환점이 찾아올 때, 나는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는 대신 뒤집어 보려 한다. 카드를 뒤집을 때 예상치 못한 그림이 나타나는 것처럼, 삶도 그렇게 또 다른 방식으로 펼쳐질 수 있으니까. 결국, 뒤집는 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위와 아래가 절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그것은 우리가 만든 기준일 뿐이다. 뒤집힌다는 건 단순히 위치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믿어온 기준이 상대적이라는 걸 깨닫는 과정이다. ‘위’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은 ‘아래’일 수도 있고, ‘아래’라고 여겼던 것이 다시 ‘위’가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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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숨은 뜻을 깊이 생각하다 보니, 수년 동안 왜 이 로고에 집착했는지, 이제야 내가 이해가 된다. 그동안 내가 왜 이 로고를 통해 말하려 했는지, 그 의미가 점점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이 모든 의미를 담은 theME Studio를 조만간 오픈하고 싶다. 나만의 공간에서 창작하고, 나만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그 공간을, 그리고 그 공간이 나의 철학과 삶을 담는 그릇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현재는 호주에서, 방 4개의 하우스에서 아들과 둘만이 살고 있다. 집은 내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과 철학이 담길 장소이기도 하다. 거실을 따로 꾸며 그림 그리는 공간으로 만들고, 책이 가득한 미니 도서관으로 꾸미며, 그 안에서 많은 이들과 북토론도 하고 글도 쓰며, 내가 원하는 공간을 만들어가고 싶다. 그곳은 단순한 집이 아니라, 나의 꿈과 가치를 담고, 내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는 장이 될 것이다.


로고는 좀 더 다듬어보자.





2025년 3월 10일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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