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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없는 것은 없다

by 근아

<나의 삶을 도슨트 하다> 5번째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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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사유 , 4:43 am


잠에서 깨어난 순간, 어둠대신,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밤새 켜둔 조명이었다.

새벽 4시 30분.


나의 시선이 한동안 아무 생각 없이 조명에 머물러 있었다.
흐릿한 의식 속에서, 생각들이 서서히 움트기 시작했다.

고요한 방 안에서, 머릿속에는 끊임없는 질문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만의 사유의 시간이다.


빛은 벽에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선명하고, 강렬한 평면의 형상으로.

그러나 시선을 더 깊이 두자,
보이지 않는 곳까지 스며들어,

방의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는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빛이 더 넓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내가 보지 못할 뿐,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끝을 알 수 없는 무한 속으로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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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사유 , 7:41 am


새벽 독서 모임이 한창 진행되는 동안,

방 안의 조명이 비추던 빛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차갑고 선명했던 그 빛은

또 다른 빛이 스며들기 시작하면서,

어느새 부드러운 노란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새벽 태양빛의 등장이다.


조용히, 그러나 강렬하게 방 안으로 들어와,
조명의 빛과 겹치고, 번지고, 마침내 삼켜버린다.

시간이 흐를수록 태양빛은 더욱 깊숙이 스며들었고,
방 안을 가득 채우던 조명의 흔적은 희미해져 갔다.


어둠을 지우던 조명은 이제,
새벽을 맞이하며 그 스스로 사라지고 있었다.





제목 : 사유 , 7:42 am


조명과 태양이 만나 만들어내는 새로운 창조물.

그림자.


서로 다른 두 빛이 교차하며, 존재하지 않던 형상을 만들어낸다.
그림자는 빛이 만들어낸 흔적.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빛의 존재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나 또한,

나를 드러내며,

나의 존재를 선명히 하며,

매 순간 나만의 흔적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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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사유 , 7:45 am


빛으로 생겨나는 어둠.


어둠은 빛이 없을 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빛 속에서 태어난다.

그리곤,

빛의 이면 속에 숨어버린다.


그렇게, 빛과 어둠은 서로를 규정하며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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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사유 , 7:45 am 그리고 8:38 am


자연은 변화하며 새로움을 창조한다.

시간을 머금고, 진화한다.


다윈의 『종의 기원』 초판에는
‘진화(Evolution)’라는 단어가 없었다는데(주),

그것은 변화가 반드시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뜻일지도 모른다.


태양이 만들어내는 창조물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빛과 그림자는 대립하지 않는다.
그저 다른 형태로 존재할 뿐이다.


변형된 것은 더 나은 것이 아니라,
그저 다름일 뿐.


그리고 자연의 일부인 인간도.

그러하지 않을까.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그 변화가 ‘진보’라는 이름을 가질 필요는 없다.
그저 다르게 존재할 뿐.


빛이 그림자를 만들고,
그림자가 빛을 더욱 선명하게 하듯이.



(주)찰스 다윈이 1859년 출간한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 초판에서는 '진화(Evolution)'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변이(variation)’,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 ‘점진적 변화(gradual change)’ 같은 표현을 사용했어. ‘진화(evolution)’라는 단어는 6판(1872년)에서 처음 등장했다. 그리고 ‘Revolution(혁명)’은 애초에 다윈이 사용한 단어가 아니었다. '진화'를 혁명적 변화처럼 급진적인 개념으로 보기보다는, 점진적 과정으로 설명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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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사유 , 7:46 am


마침내 마주한 태양.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강렬한 빛을 내뿜는다.

저 멀리, 우주의 심연에서부터 온 빛.


그 먼 거리를 지나, 지금 여기, 나의 눈앞까지 닿았다.

한없이 광활한 공간을 지나왔지만,
그 빛은 여전히 뜨겁고, 여전히 강렬하다.


눈을 질끈 감아도 소용없다.

태양빛은 여전히 내 눈 안에서 존재한다.

감겨진 눈꺼풀 너머에도,

더 강렬한 밝은 빛이 존재한다.


강렬한 동그라미.


그 태양빛을 내 안에 품고,

그 빛이 건너온 머나먼 공간을 품고,

나는 하루를 시작한다.


자연의 일부로,

나의 일부, 자연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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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사유 2025, theME


나에게 없는 것은 없다.
그저 눈에 보이지 않을 뿐.

그러니 더 무한으로 변화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듯,
지금 닿지 않는 것들도 내 안에 스며들어 있다.


태양빛이 감은 눈 너머에서도 빛나듯이.


나의 꿈을 위한

나의 사유에도

우주의 시간을 품은 변화가 스며든다.


그 변화는

조용하지만 강렬하게,


더욱 깊이,

더욱 멀리,

더욱 빛나게,


나를 이끌고 있다.













< 나의 삶을 도슨트하다 >

매주 월요일 새벽 5시 발행


도슨트(docent)는 '가르치다'라는 뜻의 라틴어 docere에서 유래한 용어로써, 미술관, 박물관 등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며 일반 관람객들에게 작품, 작가, 그리고 각 시대 미술의 흐름 등을 설명해 주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 이미지들을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해, 나는 나만의 도슨트가 필요했다.

도슨트는 사람을 가리키는 명사지만, 도슨트 어원의 시작도 동사였으니, 나는 이 단어를 동사로 쓰려 한다. 마치 '관람하다', '감상하다'처럼 '도슨트하다'라는 행위를 통해 내 삶의 전시장을 걸으며 각 순간과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가치와 맥락을 찾아 설명하고자 한다. 이는 순수한 의미에서 기록이나 회고를 뜻하기도 하지만, 내 삶의 조각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고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지 깊이 이해하고 전달하는 과정이 될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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