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를 시도하다 : 타문화를 들여오면 문화는 변할까?
사람들과 엉켜서 살아가다 보면 법은 아니지만 강력한 구속력을 갖는 룰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예를 들면 부하직원이 상사보다 좋은 차를 타면 눈총을 받는 일이다. 이유는 누구도 말로 꺼내지 않는다. 자신의 사회적 가면 속 날것, 내면의 바닥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학교에도 이런 암묵적인 룰이 존재한다. 나는 피부로 두 가지를 체감했다. 그러고는 반골 기질 때문인지 순응하지 않고 반대로 행동하게 된다. 그 결과 기존의 룰에 지배당했는지, 그 룰을 바꿨는지는 글을 읽고 판단해 보라.
첫 번째. 대학교 이름이 걸린 옷.
신촌에서 편입 학원을 다니며 신촌 거리나 카페에서 과잠이라 불리는 야구점퍼 외에도 다양한 물건들에 학교 이름이 새겨 저 있는 걸 보게 된다. 필통, 물병, 열쇠고리 등등 자신이 속한 집단을 애정하는 그들의 모습이 내가 다니던 지방대와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그 색채가 옅어지는 모습을 봤는데 이런 순서였다.
1) 학교 이름을 크게 적고 학과 이름을 작게 적는 옷
2) 학과 이름을 크게 적고 학교 이름을 작게 적는 옷
3) 마지막으로 학과 이름만 새겨진 옷
필자는 마지막 학과 이름만 새겨진 옷을 배정받았다. 누가 룰을 정한 건 아니다. 그냥 대학 사회에 자리 잡은 암묵적인 룰이었다. 3번 옷을 입는 나는 화려한 디자인의 1번 옷이 부러웠다. 옷으로 함축하지만 똑같이 학교 동아리에서 춤을 춰도 고가의 장비로 찍어 미디어로 송출되는 모습, 우상으로 봐주는 반짝이던 시선과 반응들, 글로 적기 모호한 하지만 확실히 보이는 그들만이 가진 화려함이 분명 있었다. 나는 그걸 쫓아 학교를 옮기게 되었고 가천대학교에 오게 된다.
그리고 그들만의 물건들을 찾았다. 그 결과 1과 2번 문화의 경계로 진입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완전한 1번이 되지 못한 나는 여전한 갈증을 느끼고 다시 한번 편입에 도전하게 된다. 나를 바꾸는 것이 세상을 바꾸는 것보다 쉽다는 판단이었다. 그러고는 실패한다.
다시 돌아온 경계선. 나를 바꾸지 못한 결과. 경계선이라면 한 발자국만 나아가 볼까 생각이 들었다. 신촌만의 그것, 플리스 자켓을 만들어 팔기로 한다. 먼저 학교에 전화를 해 담당 부서를 연결받았고 취지를 말씀드리고 수익을 창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허락을 구했다. 이름과 학과 전화번호를 드리고 전화를 마치게 된다.
이제는 옷을 만들어야 한다. 관련된 일은 전혀 해본 적이 없었다. 아이패드를 켜서 여러 로고를 그려보지만 그럴듯한 형태가 나오지 않았다. 디자인 툴로 깔끔한 이미지를 만든 것도 아니다. 나의 손떨림을 그대로 담은 선들이었다. 아이디어 고갈로 로고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던 중 기업들의 로고 변경에 관한 기사를 보게 되었다. 심플하게 변경하는 것이 ‘요즘 추세’라고 한다. 촌스러움을 피하려 일류 로고 디자이너들의 방향을 따라가기로 한다. 그렇게 본관의 실루엣을 따와 피피티로 디자인을 완성하게 된다. 완성된 디자인은 학교 커뮤니티에서 생각보다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 관심들을 근거로 대행업체를 찾아 실물 제작에 들어갔고, 플리스 자켓 200매를 우리 학교에 최초로 보급하게 된다.
그 200매가 촉매가 되어 움직임을 이끌었을까? 아쉽게도 더 큰 움직임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과잠의 등판을 보면 알 수 있다. 여전히 1과 2의 경계에 머무르고 있다. 신촌, 그들의 문화 들여오기는 ‘빌보드의 강남스타일’, ‘one-hit wonder’로 끝이 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