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인데, 나는 너일까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다는 건,
그 사람의 작품이 된다는 게 아닐까.
그이가 내 작품인 줄로만 알았다, 그는 내게 결국 늘어질 테이프 속의 노래였고, 빛이 바래버릴 한 장의 사진이었고, 손 때 묻을 책이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세상 어느 작가가 본인의 작품을 통제하지 못하겠는가, 그저 하나의 작품인 나는 나조차도 조절하지 못한다. 마음대로 접을 수도, 찢을 수도, 멈출 수도 없는 찰나의 작품은 서럽다.
형편없을지도 모르는 하나의 나는 너에게 연주되고 그려지고 조각되고 쓰이며, 한 번, 또 한 번, 결국
이 한 몸 내어주어 그리 쓰여도 순응할 뿐이다.
아닌가, 쓰이지도 않으려나.
.
무명의 작은 이리도 고요한데, 그 위에 손 길 얹는 네가 원망스럽다. 백지 같은 내게 툭툭 떨어지는 손길을 따라가고 싶고, 그 길에 끌려가고 싶은 작은 나
이 作은 나.
몽글몽글했던 마음이 살랑살랑 일랑이게 되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다가 모든 걸 보게 되고, 그러다가 결국 체념하고 수용하게 되면 그제야 사랑이 시작되는 거라고, 몹시 괴로워지고, 한없이 아파지면 그게 진짜 사랑이라고,
작품은 창조주에게 사랑을 느낄까.
내가 너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안위를 바라는 만큼 그이의 안위도 바라지만서도, 나도 부디 아프지 않기를, 나도 웃기를 바란다.
내 엷은 쌍꺼풀이 풀리지 않기를 바란다.
종이가 울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이다.
내가 울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이다.
바로 알아볼 수는 없지만 너무도 투명한 말
너무 투명해서 붉히는 말
또 너무 투명해서 울리는 말
그런 말들이 부쩍 좋아지곤 한다.
.
어딘가에서 사람은 근본적으로 자신 이외에는 무엇도 사랑할 수 없는 동물이라는 걸 본 적이 있다. 그저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자기’라는 개념을 확장시키고 있었을 뿐이라는데,
그러면,
그렇게 되면,
너는 나인데, 나는 너일까?
작가는 작품을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는데, 너의 그 애정은 나와 같은 색일까. 너에 의해서지만 네 의지는 없었던 작은, 멋대로 조각되고, 그려지고, 쓰이고, 감히 칠해졌는데, 몰라주면 나는 서럽다.
알아채도 부끄러울 테지만,
내가 너와 같은 색이기를 바라며, 감히 말리지 않으련다, 내 색이 너에게 묻기를 바란다
.
그 큰 눈동자도, 비치는 내 모습도 좋다
작이 되는 과정이 참 아프다.
조각되어가는 이 과정이 참 쓰리다.
떨어져 나가는 내 일부, 갈리는 내 피부, 찔리는 모든 순간도 그저 작이 되어가는 과정이라면 수용하겠지만은, 만일 내가 끝내 부서진다면, 저 구석 지난 작들과 누워 새 작의 형성을 보게 된다면, 그제야 아프려나. 그러면 난 너 없이도 아프려나.
끝은 알 수 없고, 답은 할 수 없다.
작은 그런 것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