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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지그린 Sep 12. 2024

임신의 시작점

프롤로그

요즘 나는 나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육아에 쓰고 있다. 그중에 아주 조금의 힘을 떼어내어 내 이야기의 마침표를 찍기로 했다. 적어둔 글이 단 하나도 없지만 더 이상 미루면 안 될 것 같아 서둘러 목차를 정하고 연재를 등록했다. 첫 화의 제목은 ‘임신의 시작점’이었다. 어떤 내용을 적을지 정해둔 것도 없으면서 홀린 듯 정해버린 제목이었다. 내가 정했음에도 도무지 무엇을 적고 싶었는지, 무엇을 적어야 하는지 떠오르지 않아 며칠을 계속 고민했다.


'임신의 시작점'이라..

나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아침에 눈을 떠 고개를 돌리면 천사처럼 자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마주한다. 나는 이제 아기를 가슴에 안고 엄마가 됐노라고 오랜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그렇게 물려보고 싶었던 젖을 아기에게 물릴 수도 있고 아기의 작은 손에 나의 손가락을 살포시 쥐어줄 수도 있다. 그토록 수없이 그리고 간절히 바랐던 시간 속에 내가 있다. 그래서 가끔 이 시간이 꿈같고 더없이 행복하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를 품에 안게 해 준 '

임신의 시작점'은 과연 어디였을까?


시험관을 하기 위해 다시 찾아간

난임병원의 문턱이었을까?

부처님에게 무릎 꿇고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하던 찰나였을까?

정상 배아가 수정되던 그 순간이었을까?


생각해 보면 임신의 시작은 일상 속에서 아주 조용히 찾아왔다. 작년 10월, 말끔하게 정리된 집안을 쭈욱 둘러보며 상상했다. 이 거실이 아기 물건으로 가득 찰 거라고. 설거지를 하다 말고 뒤돌아 텅 빈 거실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거실 한가운데 아기 침대에 잠자고 있는 아기를 상상했다. 아기가 없음에도 그 짧은 상상이 어찌나 생생한지 마음이 가득 설레곤 했다. 그때부터 설거지를 할 때마다 매번 뒤를 돌아봤다. 존재하지 않는 아기를 상상하며 그런 날이 올 거라고 믿었다.


두 번의 유산도 모자라 20주에 아기를 보냈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번이 마지막 도전이야'라든가 '내 모든 걸 걸고 해 보겠다라던가' 하는 거창한 마음을 먹었던 것도 아니다. 일상 속에서 아주 조금씩 천천히 임신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나에게 임신이란 참 어려운 숙제였다. 내 몸은 임신 자체가 쉽지 않았고 임신을 유지하는 것 역시 참으로 어렵고 위험했다. 그리고 유산의 트라우마는 너무나 깊었다.


내가 과연 임신의 끝에 도달할 수 있을까?

걱정과 두려움은 임신의 시작 그 낮은 문턱 앞에서 몇 번을 주저앉아 울게 했다. 임신을 한 뒤에도 남들처럼 임신 기간을 보낼 수 없었다. 아침 눈을 떠 잠에 들 때까지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았다. 나에게 쌓여가는 임신 주수는 올림픽 신기록 보다 더 값진 기록이었다. 잠들기 전 오늘 날짜에 동그라미를 치며 ‘아가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넘기는구나’하며 잠이 들었던 나의 임신 기간. 그 시간을 넘어 나는 드디어 아이를 품에 안았다.


5년의 시험관

계류유산과 선택 유산

그리고 20주 중기 유산

그렇게 다시 만난 아기는

30주에 양수가 터져 이른둥이로 태어났다.

힘겨웠지만 건강하게 100일을 맞았고

우리 가족의 사랑이자 행복이 되고 있다.


이 글을 적으며 알게 되었다.

지금의 아이를 만나게 해 준 임신의 시작점이 어디인지.

그곳은 난임병원도 부처가 계시는 절도

임테기 두줄도 아니었다.


내가 포기하지 않겠다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생각했던 마음.

버리지 않고 품었던 작은 희망.

내 마음 저 깊이에서부터

임신이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며

나와 같은 아픔과 두려움과 걱정에게 전하고 싶다.

여기 이곳에 희망의 증거가 있어요.

당신에게... 작은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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