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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을 위한 티켓을 획득하셨습니다

PGT 통배를 얻다

by 코지그린

*개인적인 경험과 견해로 작성한 글입니다.


드디어 생리가 시작되었다. 평소 같으면 불청객처럼 느껴지는 생리겠지만 난임병원을 다닌 이후로 생리를 한다는 것은 드디어 시험관을 시작할 수 있다는 신호이기에 기쁘지 않을 수가 없다. 생리를 해야 난자 채취도 시작할 수 있고 배아 이식도 할 수 있다. 생리를 확인하자마자 서둘러 난임병원을 예약했다.


임신의 대장정이란 출발선에 서기 위해서는 난자와 정자가 만나 수정된 배아가 필요했다. 나의 과거 이력으로 그냥 배아는 안되고 정상 배아가 필요했다. 일명 'PGT 통배'라 불리는 천하무적 배아.


도대체 'PGT 통배'가 뭐야?


시험관은 여자에게 난자를 채취하고 남자에게 정자를 얻어 수정된 배아를 여자 몸에 이식한다. 이식 후 정상적인 착상이 이루어지면 임신이 되는 것이다. PGT는 배아 염색체 검사로 수정된 배아를 자궁에 이식하기 전 건강한 배아를 선별하는 검사를 말한다. 이때 PGT 검사를 통과한 배아를 줄여 통배라고 부른다.


PGT 검사는 힘들기로 유명한데 그 이유는 PGT 통과배아(이하 통배)를 얻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통배를 얻는 이렇다 할 특별한 노하우가 전무하다. 내 경험상 로또처럼 운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노력해도 통배가 나오지 않으며, 반대로 노력을 하지 않아도 통배가 나온다. 정말 복불복이다. 비용 또한 부담스러운데 배아 1개당 검사 비용이 30-50만 원선이다. 4개를 보낼 경우 시험관 비용을 제외하고 검사 비용만 200만 원이 드는 셈이다. 열심히 주사 맞고 난자를 키워 채취까지 해서 비싼 검사를 보냈는데 검사 결과 '통과 배아 0개입니다. 그러나 비용은 내셔야 해요! 200만 원입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멘털이 털리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또한 PGT 검사를 위해서는 5일 배양 배아가 필요하다. 5일 배양 배아가 나오지 않으면 검사를 시도조차 할 수 없다. 착상률이 높은 이 귀하디 귀한 5일 배양 배아를 이식도 못해보고 PGT 검사로 다 날려버리면 그 허망함은 설명할 길이 없다. 통배가 나오지 않으면 쌓여가는 시험관 차수만큼 불안감도 높아지는데 '아 이러다가 통배가 나오지 않아 임신 시도조차 못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게 된다. 거기에 PGT를 실패할 경우 채취 이후 약 2-3달의 휴식기를 가져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금인 난임 부부에게는 상당한 부담스러운 검사이다.


이 힘든 PGT 검사를 도대체 왜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PGT를 시행하는 이유는 선별 검사를 통해 유산의 확률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견해지만 PGT 통배는 천하무적에 가깝다. 임신에 성공할 확률이 상당히 높고 기형아 확률도 낮다. 하지만 PGT 통배라고 다 임신이 되는 것은 아니다. (PGT 검사에 실패한 배아임에도 정상적인 임신과 건강한 출산으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그러니 PGT를 무조건 신봉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없다. 진행 여부는 의사의 진단과 난임 부부의 선택에 달렸다고 본다.


나도 처음에는 호기롭게 PGT를 시작했었다.

그러다 계속되는 실패에 좌절했고 포기하고 싶었다.

PGT 검사를 실시하지 않고 배아를 바로 이식하자고 남편과 주치의를 설득했다.


하지만

"유산하는 것보다 임신을 하지 않는 것이 여자 몸에 더 좋다"라는

주치의의 말에 4번째 PGT를 하게 되었다.


4번째 PGT 결과를 들으러 가는 날.


나는 시험관의 과정 중 이 날이 제일 힘들고 두려워 견딜 수가 없었다. 수많은 주사와 질정, 난자 채취 마지막 임신 결과를 듣는 날까지 시험관의 모든 과정을 통틀어 제대로 숨을 쉴 수 없는 날이 바로 PGT 검사 결과를 듣는 날이다. 0개 통과로 이번 차수는 실패라며 2번의 생리를 하고 다시 오라는 선고를 듣게 될까 봐 너무나 두렵기 때문이다.


겨우 앞으로 나아가려고 한 발짝 내디딘 나를

더 깊은 터널 속으로 내동댕이 치는

그 말은 정말이지 듣고 싶지 않아.


그렇게 시간이 흘러 두려워하던 결과를 듣는 날이 왔다.

우리 부부는 과연 어떤 말을 듣게 될까?


나의 PGT 역사는 이랬다.

첫 번째 PGT 검사 4개 중 0개 통과

두 번째 PGT 검사 2개 중 1개 통과 - ( 중기유산을 하였다...)

세 번째 PGT 검사 4개 중 0개 통과

네 번째 PGT 검사 4개 중 과연 검사 결과는?!


남편과 떨리는 손을 잡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흰머리에 연세가 지긋한 나의 주치의. 평소라면 안경 너머로 카리스마를 뿜어내실 텐데 이날은 따뜻한 미소를 장착하고 계셨다. 그 미소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설렜다.


제발 저에게도 출발 티켓을 주세요!

다시 시작해 보고 싶습니다.


주치의는 검사 결과 모니터를 가리키며 너무 잘되었다며 무려 2개의 배아가 검사를 통과했다고 말했다. 와.. 보통 0개 통과, 1개 겨우 통과라는 성적표만 받아본 내게 2개의 통배는 정말 엄청난 결과였다. 결과가 실패하더라도 실망하지 말아야지 몇 번이나 다짐했는데... 2개의 건강한 배아를 얻다니! 임신을 한 것보다 기쁘고 행복했다. 아니 마치 임신을 한 것처럼 행복했다. 드디어 나도 임신을 위한 출발선에 서보겠구나!


임신을 위한 출발 티켓을 획득하셨습니다.

승차하셔도 좋습니다.


2023년 11월, 건강한 배아 중 하나를 이식했다. 이식하는 날 보여주신 배아는 눈사람 배아에서 껍질을 까고 나온 아주 건강한 감자 배아였다. 간호사는 오늘 안으로 착상이 될 거라고 했다. 외면하려 노력했지만 거울 앞을 지날 때면 배를 바라보며 부디 자궁에 잘 뿌리내려 예쁘게 집을 지으라고 기도했다.


나는 과연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인 임신에 도착할 수 있을까?

아이를 내 품에 안을 수 있을까?

임신 결과를 기다리는 12일 동안 그렇게 마음이 울렁거렸다.


SE-77192864-b685-41c8-b9f7-733ef4731a43.jpg?type=w1 셔터가 올라가기 전에 도착한 난임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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