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지그린 Feb 07. 2024

애도의 여정

나는 오늘도 널 애도해

시도 때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감정을 스스로 처리할 수가 없어 심리상담을 받기로 했다. 오늘이 세 번째 상담을 받는 날. 상담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조만간 있을 복직에 대한 두려움과 한 주의 안부를 이야기하며 상담을 시작했다. 본격적인 상담에 들어가기 전 애도의 여정이라는 그림을 보여주셨다. 애도의 여정이라... 선생님이 주신 그림을 마주하니 작은 감탄이 나왔다. 이 그림을 그린 사람, '애도의 여정'이라는 개념을 확립한 이 사람은 분명 상실의 아픔을 직접 겪은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지 않고는 이 여정을 알 수 없으리라.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과연 애도라는 단어를 몇 번이나 사용했을까? 어쩌면 내가 만들어 낸 문장에 단 한 번도 사용된 적 없는 단어 '애도'. 요즘 나는 이 애도라는 단어를 하루에서 열 번 이상 생각하고 말한다. 널 애도해. 널 애도하고 있어. 애도 중이야. 보통은 이 단어 뒤에 꽁꽁 숨어서 무기력하게 하루를 보내지만 위로 가득한 '애도'라는 말이 있어서 내가 죄책감에 벗어날 수 있고 내 하루가 의미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 '나는 오늘도 널 애도한 거야' 하고.



애도의 여정은 상실 (Lost)에서 시작한다. 받아들일 수 없는 상실을 경험하면 충격과 멍함, 혼란, 분노, 죄책감 그리고 신체 증상이 나타나는 저항의 단계를 거치게 된다. 생각해 보면 내가 딱 그랬다. 까꿍이를 잃고 충격과 혼란, 죄책감, 멍함에 벗어날 수가 없었다. 폭풍우가 몰아치고 비바람과 번개가 내 마음에서 수도 없이 일어났다. 그 시간을 지나면 다음 단계인 안절부절못하고 집착하고 가족 내 갈등과 자존감 저하가 일어나는 탐색의 단계를 거친다. 그러다가 슬픔의 고요, 절망의 심연에 다다르게 된다. 아픔, 비통함, 우울, 외로움, 무의미함인 절망의 단계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밑으로 밑으로. 바닥으로 바닥으로. 이 절망의 단계에서 사람들은 자살을 생각하기도 한다. 그 깊은 심연에서 살아남으면 조금의 활력감과 이따금씩의 재미, 집착의 감소, 피로감과 거리두기, 무던함의 감정을 느끼는 재구성의 단계에 이른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 단계. 애도의 여정의 종착 지점에서 드디어 새로운 나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재투자의 단계라고 한다. 


선생님께서 나는 어디쯤이냐고 물으셨다. 폭풍우를 만나 절망했고 내 마음 깊은 절망의 심연에서 조금씩 걸어 올라오는 내가 보였다. 나는 아마도 재구성의 단계를 지나고 있으리라. 애도의 여정을 끝내고 새로운 나를 만나는 게 사실은 조금 두렵지만 나도 이 여정의 종착지점에 도착하겠지. 선생님에게 내가 애도의 여정을 끝내면 까꿍이를 잊어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미안하다고 했다. 선생님께서는 애도는 그 사람을 잊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잘 기억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편해졌다.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단다. 내 마음이 아프면 나는 인지하지 못하지만 몸이 그 아픔을 먼저 인식하고 반응한다고 했다. 마음이 이렇게 아프다고 몸이 신호를 보내는 것. 매일 밤 위염에 시달리고 두 눈에 부종이 생긴 것도 내 마음이 그렇게 아팠다는 신호였나 보다.


절망의 절벽에서 겨우 나와 재구성의 오르막길을 오르다가도 지금까지의 노력이 무색해질 정도로 하루아침에 다시 데구루루 굴러 더 깊은 절망에 빠질 수도 있다고 하셨다. 종착점에 왔다고 생각했는데 블루마블에 '다시 시작점으로'라는 카드를 마주한 것처럼 스타트 지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원점에서 시작하기를 몇 번을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 나 자신도 몰랐던 새로운 나를 만나게 되겠지. 


'나는 오늘도 널 애도해'. 


아이러니하게도 이 애도의 여정에서 많은 영감을 받는다. 길을 걷다가 밥을 먹다가 불쑥하고 어떤 문장과 장면이 떠오른다. 그럼 나는 그 문장을 붙잡아 메모하고 그림을 그린다. 아마도 이것이 내가 널 애도하는 방법인가 보다.



이전 09화 유일하게 하고 싶은 한 가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