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하신 분들에게
나는 왜 계속 이 슬픔을 기록하고 쓰는가? 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다. 한두 번이면 되지 왜 이렇게 사방팔방에 떠들어 대는가? 말하기 조심스럽고 마음이 무거워지는 유산, 사산이라는 단어를 왜 수도 없이 해시태그하는지, 왜 다른 사람들처럼 조용히 슬픔을 삼키지 않는지.
나는 내 슬픔을 말하고 적어야겠다.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문장과 그림을 붙잡아서 메모하고 그리고 적어야 내 마음이 살 것 같다. 우리 사회는 슬픔과 눈물을 표현했을 때 나약하고 미성숙하고 비이성적인 사람이라는 시선을 보낸다. 그 시선을 나도 느끼기에 이제 그만 울고 털어내고 슬픔을 삼켜야 하는데 나는 내 슬픔을 토해내고 싶다. 울고 싶으면 울고 말하고 싶으면 적나라하게 말할 거다.
다시 돌아가 나는 왜 나의 슬픔을 사방팔방에 떠들어 대는가에 대한 내 대답은 이 행동은 나만의 애도방법이라는 것이다. 나는 애도를 하고 있다. 그럼 애도는 무엇인가? 나는 지금까지 애도란 떠난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건 줄 알았다. 근데 애도는 그게 아니다. 상실을 마주했을 때 그 당사자가 느끼는 모든 감정과 행동을 애도라고 한단다. 그러니깐 상실에 대해 슬픔을 표현하고 느끼고 나아가 이겨내는 모든 과정이 애도인 것이다. 애도에는 규칙도, 정해진 방법도 없다. 상실을 마주한 개개인이 보이는 그 반응이 그냥 애도인 것이다.
나는 이 시간을 이겨 내기 위해 몇 가지 노력을 했다. 참고로 다 이겨낸 것이 아니라 이겨내고 있는 중이다.
노력이 아니라 내 몸과 마음이 시켜서 한 것이 있다.
1. 그림 그리기
2. 글쓰기
3. 울고 싶을 때 울기 (회사에서도 운다)
4. 애도에 관한 책 읽기
5. 유기견 강아지 산책 봉사
6. 남편과 산책
7. 회사 복직
8. 괜찮지 않을 때 괜찮다고 말하지 않기
애도에 관한 책을 읽어보니 슬픔과 감정을 표현하고 이타적인 봉사를 한다거나 가벼운 산책을 하는 것이 좋다고 되어 있었다. 배우지도 않았는데 내 몸과 마음이 이 시간을 이겨내려고 알아서 노력하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는 슬프고 눈물이 난다.
어제는 중앙 난임 우울증 상담센터에서 진행하는 유산 집단 심리 치료 프로그램 강의를 줌으로 들었다. 인상 깊었던 몇 가지를 기록해야겠다. 슬프고 적나라한 해시태그를 타고 오는 가엽고 아픈, 나와 같은 유산 & 사산을 겪은 분들이 이 글을 보고 조금이라도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
"저도 당신과 같은 마음입니다"
1. 아이를 잃은 아픔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많은 인생의 이벤트들이 있다. 결혼부터 죽음, 은퇴, 질병 등. 그 많은 이벤트들의 스트레스 지수를 조사한 자료가 있는데 그중에 1위가 배우자의 죽음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이후에 더 많은 연구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배우자의 죽음 보다 자녀의 죽음이 더 심각한 반응을 야기한다고 한다. 부모나 형제의 죽음은 배우자나 자녀의 죽음에 비해 상대적으로 mild 하다고 한다.
자녀의 죽음은 인생을 바꾸는 경험이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슬픔이 인생의 이벤트 중에 제일 슬픈 일이라는 말을 들으니...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내가 이렇게 미친 사람처럼 슬픔에 허우적대는 게 미친 게 아니고 정상이라고, 정말 많이 울고 슬퍼해도 된다고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2. 슬픔은 표현해야 한다
상실에 대한 슬픔을 마주했을 때 큰일이 아닌 것처럼 행동하고 허세, 냉소,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나중에 감정을 겉으로 표현하는 사람들보다 슬픔을 해소하기 위해 더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된다고 한다. 나도 첫 유산을 했을 때 그런 반응을 보였었다. 그냥 다 괜찮다고 했었던 그때의 내가 떠오른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내 마음 깊이 마주하고 싶지 않은 아픔으로 남아있다. 슬픔은 표현해야 덜 슬프다.
3. 애도의 평균적인 기간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분노, 혼란, 자책의 시간으로 2주를 보내고 슬픔으로 2개월을 보내고 천천히 회복되는데 2년이 걸린다고 한다. 나는 지금 슬픔의 2개월 속에 있구나.
4. 유산과 사산
이번 강의를 들으면서 알게 된 것 중에 하나가 내가 겪은 일은 유산이 아니라 사산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이다. 나는 임신 20주의 아기를 사망한 채로 분만했으니 유산이 아니라고. 아... 너무 충격적이다. 이제야 알았다.
5. 유산을 한 사람에게 하지 말아야 하는 반응들
모든 일엔 다 이유가 있어
하나님의 뜻이었겠지
00이(큰 아이)가 있잖아
아직 젊잖아
다시 가질 수 있잖아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다 잊힐 거야
엄마가 무사해서 다행이야
아기는 정상이 아니었을 거야
언제 유산된 것을 알아챘어?
나도 선생님이 예로 보여 준 문장의 거의 대부분을 주변에서 들었다. 위 말들은 위로가 되지 않고 그 사람을 더 아프게 하는 말 들이라고 한다. 백번 천 번 공감한다. 쉽게 접할 수 없는 일이기에 상대방도 어찌해야 할지 몰라,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하는 말이라 한다. 그래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말이다. 그냥 아무 말을 하지 않는 게 더 큰 위로가 될 수도 있다.
6. 애도의 유형
인지적 유형과 직관적 유형이 있다. 이 유형을 알아야 차후 남편과 아내의 애도 반응에 대한 차이를 이해하고 오해를 줄일 수 있다. 나는 완전 직관적인 유형이었다.
<인지적 애도 유형>
사고> 감정 / 느낌은 절제
애도는 지적인 활동 / 에너지는 활동으로 해소
감정보다는 문제에 대한 토론 선호, 상실에 대한 적응은 도전
동반 증상 : 혼동, 집중, 잠정 표현의 어려움, 초조, 불면, 긴장, 분노
<직관적 애도 유형>
감정> 사고 / 애도는 극심한 고통
눈물, 흐느낌, 울부짖음 / 타인과 느낌을 공유하려는 경향
다른 사람의 애도 표현을 듣고 직접 혹은 대신 그 느낌을 경험
동반 증상 : 우울, 불안, 식욕저하, 예민함, 피로
7. 아내와 남편의 애도 반응 차이
유산 후 아내가 계속 울고 슬픔에 빠져 있으면 남편은 이제 아기는 하늘나라로 갔으니 그 슬픔에서 나오라고 한다. 슬픔에 머물러 있고 싶고 감정을 공감해 주며 같이 슬퍼해주길 원하는 아내는 남편의 그 말에 생각한다. '남편은 덜 힘들구나', '나에게 관심이 없구나', '나만 이 일을 슬퍼하는구나'.
아내 : 남편은 아기를 잃었다는 것에 상관하지 않는다.
남편 : 아내가 같은 이야기만 반복하고 끊임없이 울면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는데 나중에 알았다. 남편도 속으로 정말 많이 울고 있구나. 성향과 표현 방식, 애도 방식이 다른 것이다. 남자와 여자의 본성이 원래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이다. 때문에 남편이 조금 힘들더라도 아내의 슬픔에 잠시 같이 머물러 주는 것이 좋다. 적극적인 방법으로 아내가 울고 있을 때 듣고 싶은 말을 적어 남편에게 주고 남편은 그걸 그대로 말하라고 하셨다. 이렇게 말해줘라고 답안지를 작성해서 주는 것이다.
8. 외상 후 스트레스가 아닌 외상 후 성장
유산을 마주한 나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회복해야 한다. 회복은 무엇인가? 회복은 그 일이 일어나기 전으로 돌아가는 것인데 죽은 아이는 살아 돌아올 수 없기 때문에 회복할 수 없다. 그러면 우리는 회복이 불가능한가?!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손실로 인해 완전 회복은 불가능하지만 대신 새로운 성장으로 불가역적 손실을 보상받을 수 있다. 그러니 외상 후 스트레스가 아닌 외상 후 성장을 통해 회복하면 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아닌 외상 후 '성장'이라는 말이 큰 울림을 준다.
강의가 끝나고 질문 시간.
나는 의사 선생님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이 슬픔에서 제발 좀 꺼내 달라고 외치듯 질문했다.
"다시 임신을 하고 또 유산을 할까 봐 너무 공포스럽습니다. 어떻게 이겨내야 하나요?"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정말 공포스러울 것이다. 유산했던 주수까지 이겨낸다면 그 이후부터 증상이 나아진다. 나는 10주 유산의 경험이 있기에 10주까지 공포에 떨며 이겨냈는데 이번엔 20주에 아기를 보냈다. 20주까지의 공포는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답이 없구나 하고 돌아서는데 선생님이 말했다.
"그러나,
같이 가면 됩니다.
같이 이겨내면 됩니다."
그래 우리 다 같이 이겨내자.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