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난임 우울증 상담 센터 네 번째 상담
심리 상담 시작 전, 선생님은 매번 나에게 묻는다.
“지난주는 어떻게 보내셨나요?”
그래서 질문의 답을 미리 적어 본다.
1. 지난번 심리 상담 때 보여주신 애도의 여정이 너무 인상 깊어 글도 쓰고 유산하신 분들에게 공유도 했다. 정말 큰 힘이 되었다.
2. 애도에 관한 책 김형경의 ‘좋은 이별’이란 책을 하늘공원 원두막에서 읽었다. 너무 좋았다.
3. 강아지 산책 봉사를 했다.
4. 도예 수업을 들었는데 정말 너무 좋았다. 정규 수업으로 들어 보고 싶다.
5. 중기 유산 후 드디어 가족이 아닌 친구와 첫 통화를 했다. 이 시간을 거쳐야 앞으로 내가 이 친구와 연락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용기를 냈는데 참 좋았다. 두 달간의 심리치료 보다 이 한 시간의 통화가 날 더 치료해 주고 위로해 주었다.
6. 요즘 지인들과 가끔 아무렇지 않게 카톡을 하기도 한다. 이야기 도중 어쩌다 카톡에 ‘ㅋㅋㅋ’를 보내는데 이런 내 카톡을 보고 내가 다 괜찮은 줄 알 까봐 갑자기 ‘ㅋㅋㅋ’ 보낸 내가 싫어지고 이야기도 하기 싫어진다.
7. 나는 여전히 슬프고 마음이 아프고 자주 눈물이 난다. 울지 않아도 속으로는 울고 있다. 그래도 살아야 하기에 웃고 말하고 밥 먹고 산다. 그걸 보고 내가 괜찮다고 생각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
8. 회사를 당장 그만두지 않고 조금 더 다니기로 했다. 대신 내가 아직 괜찮지 않기 때문에 무리한 업무가 갑자기 주어지면 버티지 못할 것 같다고 솔직하게 말해야지. 밤을 새우면서 일하는 업무를 맡게 되면 퇴사하거나 전배를 진짜 말해 볼까 싶다.
9. 회사에서 프로그램 기획서를 내 보라는데 난임 관련 프로그램을 기획해보고 싶다. 그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나 자신도 치유하고 싶고. 회사는 어이없어하겠지.
10. 나의 가능성을 믿어야 하는데 두렵다.
11. 나는 일을 내 삶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살았고 휴직 후 일 대신 임신을 내 삶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항상 나 자신은 없었는데 이제 나 자신을 우선으로 두어야겠다. 내가 중심인 삶을 살아야지. 일과 임신은 내 삶의 전부가 아니라 내 삶의 한 부분이다.
12. 나중에 회사를 다니다가 남편과 어머님, 엄마가 회사 다니지 말라고 할까 봐 걱정이다. ‘지금 회사 다닐 때야?’라고 말하실 것 같다. 나는 임신을 위해 정말 최선을 다했고 난임과 시험관이라는 외로운 길을 혼자 걸었고 (남편이 있지만 신체, 정신적으로 나 혼자 감당해야 한다.) 임신도 두 번(비정상임신 1번까지면 3번)이나 했고 화유도 하고 소파수술과 분만까지 했다. 20주에 아이를 보낸 슬픔을 훌훌 털어내라고 한다면 그건 정말 나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다. 나는 할 만큼 했다. 일 그만두고 다시 임신에 올인해서 살라고 아무도 말할 수 없다.
13. 나는 까꿍이를 보내고 부서졌다. 무너졌다. 아니다. 아직 그 고통을 표현할 수 있는 정확한 단어를 찾지 못해 표현할 수가 없다. 나는 까꿍이를 보낸 슬픔에서 살아남기 위해 내 삶과 이 슬픔의 구원이 임신이라고 믿었다. ‘까꿍이를 다시 임신하기 위해 내가 사는 거야’ 그 생각을 하면 내가 밥을 먹어도 되고 웃어도 되고 행복해지려고 해도 되었다. 사람이 너무 큰 충격을 마주하면 우리 신체는 제일 먼저 자신을 보호하려고 멍해짐, 부정, 회피, 행동이 느려지고 주저앉거나 와 같은 행동으로 신체를 마비시킨다. 이 감당해 낼 수 없는 충격을 당장 뇌가 인지할 수 없도록 나름의 방어기제가 작동하는 것이다. 이 중에 내가 선택한 방어기제는 ‘재빠른 재임신’이었다. 나는 내 삶의 주체인 나를 위해 먹고 나를 위해 운동하고 그러면서 행복을 느껴야 한다. 임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삶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 그렇게 살다 보면 나에게도 아이가 찾아오겠지. 일과 임신이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 한 부분임을 깨닫고 몸과 마음을 위한 치유의 시간이 먼저 임을 부정하지 말자.
14. 언젠가 나도 이 애도의 여정 끝에 새로운 나를 만나겠지. 내 친구 그랬듯 새로운 나를 만나고 싶다.
지난주를 어떻게 보냈는지
밤을 새워서 말해도 다 말할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