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유산 후 다시 찾은 난임병원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병원을 가는 동안 생각보다 마음이 덤덤했다. 내가 이렇게 용감하고 마음이 단단하구나 감탄을 하던 그때 난임병원 입구를 마주하자 기다렸다는 듯 마음이 와르르 무너졌다. 2년 동안 다닌 난임병원이었다. 건강한 아이를 품고 행복하게 졸업했었는데 20주 아이를 하늘로 보내고 다시 난임병원을 찾은 내 모습은 그야말로 외롭고 초라하고 쓸쓸했다. 상처가 아직 아물지도 않았는데 무슨 용기로 그것도 혼자 이 병원을 다시 찾아왔단 말인가. 참을 수 없는 외로움에 두 팔로 내 몸을 감싸 안았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날개 달린 작은 풍선 하나가 내 어깨 옆에 둥둥 떠서 날 따라오는 것 같은 느낌. 마치 까꿍이가 엄마는 혼자가 아니라고, 우리 어서 만나야 하니 힘내라며 응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이가 날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이 든든해지며 용기가 났다.
난임병원 문을 박차고 들어가며
그래! 엄마는 할 수 있어!
5월 3일 20주 1일에 양막 파수로 조산을 하고 6월 2일로 난임병원을 예약했다. 아직 첫 생리도 시작하지 않았고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상담을 하려고 병원에 왔다. 왜냐면 그때의 나는 '아이를 다시 만나는 것'이 삶의 유일한 이유였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난임병원은 예전 보다 더 많은 사람으로 붐비고 있었다. 진료실 도착확인을 누르고 앉을자리가 없어 밖으로 저만치 걸어가는데 간호사 선생님께서 내 이름을 불렀다. 난임 병원을 다니며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고 의지 했던 간호사 선생님. 특유의 귀여운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그녀가 왜 왔냐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질문을 했고 나는 그녀의 얼굴을 마주 하자마자 눈물을 쏟았다. 기다리는 사람이 정말 많았는데도 눈물을 흘리며 작은 목소리로 말을 했다. 그녀는 며칠 전 예약 리스트에 내 이름을 확인하고는 설마 아니겠지 하며 제발 그냥 진단서 떼러 오는 것이길 바라셨단다. 진짜 건강한 아이였는데 20주에 양막이 파수되었다는 말을 눈물로 전하며 난자채취를 할 수 있는지 상담을 하러 왔다고 했다. 안쓰러운 얼굴로 위로해 주시며 먼저 초음파를 보라고 하셨다.
오랜만에 마주한 난임병원 초음파실. 이곳에서 난포가 잘 자라는지 수 없이 확인을 했었다. 그리고 마침내 까꿍이의 반짝이는 심장을 확인했던 곳이다.
초음파실로 들어가서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고 의자에 누웠다. 의자에 누우면 바로 옆에 모니터가 있는데 텅 비어버린 자궁을 보니 눈물이 났다. 그때 초음파실 선생님께서 단호한 목소리로 "그냥 보지 마요! 보면 더 마음이 아프니 보지 마요!"라며 모니터를 꺼버리셨다. 그리고 정말 조심스럽게 아이가 몇 주였는지 소파수술인지 분만을 했는지 물어보셨고 조용히 본인 이야기를 해주셨다. 초음파선생님도 유산을 몇 번 하셨다며 비슷한 주수의 경험이 있단다. 그때는 너무 힘들고 괴로웠다며 식당을 들어갔다가 다른 손님의 아기를 보고는 마음이 너무 아파 나온 음식을 그대로 두고 나와버린 적도 있다고 하셨다. 그러니 날 괴롭게 하는 상황을 만들지 말라고 지금은 너무 힘들고 괴롭겠지만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단 하나, 어서 아이를 낳아서 정신없이 살아야 한다고 하셨다. 그러니 힘내라고 선생님의 진심 어린 위로가 힘이 되었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드리고 나오며
그래.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는 거야.
다시 일어날 수 있어.
오랜 기다림 끝에 교수님을 다시 마주했다. 교수님은 정말 오래도록 아무 말씀 없이 진료 차트 모니터만 보셨다. 교수님께서 긴 침묵을 깨고 첫마디로 "그렇게 고생했는데..."라고 말씀하셔서 또 눈물이 났다. 교수님은 우선 아무것도 하지 말고 몸과 마음을 잘 추스르라고 하셨다.
그리고 생리를 두 번 하고 오라고 하셨다.
생리 두 번 하고 오세요!
생리 두 번 하고 오세요!
생리 두 번 하고 오세요! 는 내 목표가 되었다.
단순하고 작은 목표.
이 단순한 목표에 기대어 그냥 하루하루를 살자.
생리 두 번 하고 다시 난임병원을 찾는 그날을 기다린다.
돌아서며 나오는데 간호사 선생님이 다음엔 잘 될 거라고 힘내라고 하셨다.
그녀는 정말 나의 작은 천사다.
다음엔 남편이랑 같이 와야지.
조그마한 희망이 다시 내 마음을 가득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