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병원을 갈 때면 나는 생각한다. 내 몸에 감정은 모두 다 사라지고 오직 육체만이 존재하기를. 슬픔이라던지 기쁨, 공포, 속상함, 기대 같은 감정 따위가 모두 다 사라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주사를 맞고 난자를 채취하고 이식을 하고 이러한 행위는 육체적인 것이니 육체적으로만 힘들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시험관을 시작하는 순간 내 감정은 그 어느 때보다 예민해진다. 거기에 잠자고 있던 작고 미세한 감정까지 일제히 잠에서 깨어나는 느낌이 든다. 이번에는 감정에 휘몰리지 않으리. 덤덤하게 시험관을 할 거야.라고 매번 마음 먹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오전 8시도 안 된 시각. 난임 병원은 손님으로 넘쳐난다. 나는 조산 후 3번째 생리를 시작했다. 보통 생리 이틀째에 와서 차수를 진행하는데 연휴가 걸려 생리 4일째에 병원을 올 수밖에 없었다. 조금 뒤 초음파를 보면 이번 달 시험관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있다. 뭐... 하면 하고 못하면 못하지.라고 담담하게 결과를 기다려야지. 시험관의 고난은 육체가 버틸 테니 내 감정들이여 곤히 잠들어라 제발.
진료 대기실 앞.
- “들어오세요”
나는 비장하게 자리를 박차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그 어떤 상황이 와도 내 마음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 다는 듯 당당하고 씩씩했다.
- “이번이 시험관 처음인가요?”
나의 이전 병력을 기억하지 못하는 주치의 선생님을 마주하며 내 마음에 파도가 일렁인다. 절대 악의가 있으신 것 같진 않고 그냥 환자가 너무 많아서 기억을 못 하시는 것 같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는 게 내 마음이 더 편하다. 섭섭하다기보다 내가 시험관이 처음이 아닌 것이, 임신을 두 번이나 했고 20주에 양수가 파수되어 조산을 했다는 사실이 서글퍼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 “아...! 자궁무력증으로 그랬구나”라는 선생님의 말에 나는 다시 똑 부러지는 말투로
- “20주에 양수가 파수되어 조산했습니다”라고 수정했다.
5분이면 진료가 끝나버리는 난임병원에서 약 5분간의 정적이 흘렀다. 민망함과 미안함의 정적이 아닌 내 병원 차트를 다시 훑어보시는 시간. 이 시간 동안 내 마음의 파도도 잠잠해지기를. 눈물 같은 건 흘리지 않을 거야. 내 차트가 하도 처참하여 스크롤을 내리시는 선생님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 선생님은 한참을 보시다가 생리 4일이지만 이번에 난자를 채취해 보자고 하셨다. 나중에 임신하면 자궁경부를 일찍 묶으라고 하시는 선생님의 눈빛에서 따뜻함이 느껴졌다. 그건 분명 걱정과 안타까움의 눈빛이었다.
진료 후 서울역 차병원에 온 지 1년이 넘어서 심전도와 엑스레이, 피검사도 다시 했다. 벌써 1년이라니... 기쁘게 난임병원을 졸업하고 20주에 유산을 해 이렇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나라니... 신세가 처량하기도 하고 가엽기도 하고 누가 이런 내 마음을 알까. 이번 난자 채취는 내가 원해서 시작하는 건데 잘 한 건지 아닌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명확한 건 어쨌든 나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부디 내 감정이 파도치지 않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