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7월, 아들 학교 수업을 마치고 부산역으로 가서 SRT 타고 수원 이모집으로 갔다.
우리는 다음날 새벽 5시 공항 리무진을타야 했기에 일찍 자리에 누웠지만 나는 걱정으로 잠이 들 수가 없었고, 아들은 혹시나 늦잠을 자서 미국행 비행기를 탈 수 없을까 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우리는 계속 서로 잠을 자는지 확인만 하고 뜬눈으로 새벽 5시에 리무진을 타러 갔다.
여행 떠나기 며칠 전 온라인 티켓팅을 하라는 문자를 받고 갑자기 비행기 좌석이 걱정되었다.
3개월 전에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기에 분명 자리가 나란히 됐을 꺼라 생각하고 확인차 항공사사이트에 접속을 했는데좌석지정이 되어 있지 않았다.
코로나이전 하노이에서 해외생활 5년이나 했고, 그 5년 동안 동남아의 많은 나라들을 다니면서 직접 비행기를 예매했지만 좌석 지정을 해 본 기억이 거의 없기에 비행기 좌석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았다.
코로나 이후의 변화인지 시스템의 변화인지 출발비행기는 지정을하지도 못하고 돌아오는 비행기 좌석만 겨우 지정하고우리는 공항으로 가야 했다.
코로나 이후 처음 온 공항이었고 늘 부산출발 비행기와 아시아만 여행해 본 아들과 나는 인천공항이 처음이라 공항의 크기와 기계화된 변화에 많이 당황스러웠다.
몇 번의 실수를 거듭하고 무사히 티켓을 받고 짐을 보낸 뒤 우리는 입국장을 통과했다.
오랜만에 공항에서 하는 비행대기였기에설렘과 걱정이 한가득이었는데 내 마음과 상관없이 너무 많은 중국사람들과 함께 대기해서 우리가 중국인지 한국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부산에서만 비행기를 탔던 아들과 나는 한국을 경유하는 아시안인들을 만나며 인천공항 규모와 위상도 절로 느낄 수 있었다.
2시간 대기하고 드디어 탑승 방송이 나오고 줄지어 비행기로 가서 좌석을 확인하는데..
사전에 미리 좌석지정을 하지 않은 우리의 자리는 중앙좌석 한가운데 앞뒤로나란히 지정되어 있었다.
당황한 나의걱정과 달리 중2아들은 14시간 긴 여정을 엄마의 옆자리가 아닌 앞자리에서 잔소리를 피할 수 있다는 반가운 표정을 숨길수가 없었다. 아들은 웃음을 참으며 "이것도 나쁘지 않은데..."라고 했다.
길어야 5시간 정도 비행에 익숙한 나는좁은 공간에서 5살 때보다 말을 더 듣지 않을 중2아들과의 긴긴 14시간의 여행을 위해그간 온갖 여행책이며, 유튜브, 블로그를 통해 장시간 비행을 즐기는 방법을 섭렵하고 비행기에서 읽을 책이며 핫팩이며 간식, 미스트, 양말, 안대, 귀마개, 발돋움 등등 많은 준비를 해갔다.
그 많은 준비물들은결국 앞뒤로 주고받지도 못하고 내 자리만 차지하는 쓸모없는 짐들로 전락해 버렸다.
약 14시간 비행시간 동안 아들은 아들대로 옆자리 한국계 미국인 아저씨와 먹고 자고 영화 보고 수다 떨며 더없이 즐겨주셨고,나는 20년 전 이민을 떠나 한국 한달살이를 하고 돌아가시는 아줌마의 버라이어티 한 미국정복기를 들어가며 주는 밥 먹으며 와인, 맥주, 라면까지 야무지게 먹어가면서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첫 장거리비행을 즐겨보았다.
길 것만 같았던 14시간의 비행은 무사히 끝나고 드디어 전 세계에서 젤 까다롭다는 뉴욕 입국심사장에 줄을 섰다.
사실 이번 미국 여행은 아들의 영어실력을 알아보고 싶은 사심 가득한 여행이었다.
아들은 5살부터 10살까지 약 5년간 하노이에서 생활했고 글을 처음 배우기 시작할 때 한글과 영어를 같이 배웠기에 비록 귀국 5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귀국 후 아들의 영어 수준과 중학교 입학 전 매일 영어책을 읽히며 유지하려 했던 나의 노력에 대한 테스트와도 같은 여행이었다.
이번 여행은 영어는 못하지만 계획적인 엄마가 100프로 아들의 영어에 의지해서 준비한 미국 여행이었다.
아들의 영어 테스트는 입국심사 줄을 서면서 바로 시작되었다.
뉴욕 입국심사는 기본 1~2시간이 걸리기에 줄 서 있는 동안 미리 한국에서 준비해 간 E-SIM을 먼저 아들 폰에 연결해 보라고 시켰다.
아들은 난생처음 데이터무제한 요금제를 쓸 수 있다는 기대에 몇 번의 안내전화녹음을 들어가며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전화를 연결시켰고 엄마 것까지 기분 좋게 연결해 주었다.
악명 높은 뉴욕 입국심사는 "미국에 무슨 일로 왔니?" "그럼 그 엄마친구랑 같이 어디 여행을 하니?" 그리고 "다시 뉴욕으로 올 거니?"라는 몇 가지 질문을 하였고 오랜만에 원어민의 영어를 들었던 나는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고 아들은 막힘없이 술술 이야기해 나간 덕분에 예상 시간보다 빨리 입국심사를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사히 통과한 나는 아들에게 계속 '대박'이라며 '너 영어 너무 잘한다'며 '반했다'며 왕푼수를 떨며 중2아들의 어깨에 힘을 실어 주었다.
하노이 떠난 지 5년, 아들이 외국인과 영어로 대화하는 모습을 너무 오랜만에 봤기에 진심 놀랬고 대박이라고 외칠 수 있는 상황에 감사했다.
뉴욕 J.F.K공항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크지는 않았고 많은 곳이 공사 중이라 3시간 내에 미국 국내선 환승을 해야 했던 우리에게 어수선했지만 정말 우리가 미국이고 지금 목적지인 조지아주 사바나를 가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느끼게 해 주었다.
무엇보다 아들은 자신감이 생겼고 나도 충분히 믿음이 갔기에 미국 국내선 이동 중 우리는 많이 안정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제 아들이랑 전 세계 어디도 갈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마저 생겨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