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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데칼코마니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가을하늘

by JULIE K Mar 07. 2025

캐나다에 온 지 일주일 만에 드디어 환한 아침을 맞이했다. 완벽히 은 하늘은 아니지만 연한 푸른빛이 어둠을 밀어냈다.


걷기 좋은 아침, 분 좋은 하루를 시작해 본다.



도심 속 자연
Stanley Park


오늘의 첫 산책코스는 밴쿠버에 오면 누구나 한 번씩은 간다는 '스탠리 파크(Stanley Park)'로 정했다. 호텔에서도 약 20분이면 충분히 갈 수 있어서 걸어서 이동하기에도 큰 부담이 없다.


모처럼 맑은 하늘을 감상하며 걷는 발걸음이 신이 난다.


고층 빌딩숲을 지나가 멋진 요트들이 정박해 있는 바다가 나온다. 아무렇지 않게 가는 곳마다 귀한 요트를 마음껏 구경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지리적 특성상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기 때문이다.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산을 배경으로 줄지어 늘어서있는 요트들로 한 폭의 수채화가 완성되었다. 산책길에 있는 커피숍을 발견하고는 자연스레 어가 본다.


따뜻한 핫초코와 베이글로 간단히 배를 채우기로 했다. 번 여행에선 유난히 베이글을 자주 찾다. 바삭하게 구워진 쫄깃한 빵 위에 고소한 크림치즈를 발라서 먹 그 맛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든든하게 한 끼 해결한 뒤 다시 풍경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끝없이 이어지는 다양한 배를 구경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공원 입구에 다다랐다.


공원 규모가 커서 다들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는데...


마침 자전거 대여소가 눈에 들어왔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는 것도 재밌을 것이다. 하지만 손에 들린 카메라가 재촉했다. 완전히 본연의 색을 되찾은 하늘과 푸른 잔디 위로 깔린 주황빛 낙엽의 조화로운 경관이 바로 코앞에 있는데 그냥 지나칠 거냐고 묻는다.

 

별수 없이 걸어서 들어가 보기로 한다.




공원으로 향하는 좁다란 길을 걸어 들어가니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부드러운 솜사탕 구름이 하늘과 땅의 경계를 허물며 포근하게 깔려 있는 곳에는 요트들이 하나둘씩 보기 좋게 걸려있었다.


잠시 멈춰 서서 한동안 말없이 그곳을 바라보았다. 그때 어디선가 첨벙 대는 물소리가 들려왔다. 길 모퉁이를 돌아서 가니 보라색 점퍼를 입은 꼬마아이가 솜사탕 구름을 밟으며 놀고 있었다.


참으로 평화롭구나...


비현실적인 풍경을 아이는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이상하리 만큼 신비로운 풍경 속에 풍덩 들어가서 온몸으로 즐기고 있는 꼬마아이가 부러웠다.


한 장면이라도 놓칠세라 열심히 카메라에 기록하 눈앞에 보이는 경관을 뒤로 밀어 공원으로 들어갔다.


또 다른 공간으로 넘어가자 경이로운 풍경이 그림책처럼 펼쳐졌다. 번 테마는 도심 속 빌딩숲이다. 곡히 들어선 빌딩들은 물 위로 비친 그림자와 맞닿아 있으며 다른 두 세계관이 만나서 완벽한 세상을 이루고 있었다.


세상에나~~~~!!


아름다운 이 공원에는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 조깅하는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사는 사람들 에 섞여 홀로 걷고 있던 나는 이방인이다.


한 가지 놀라웠던 것은 공원을 걷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 가슴에 빨간색 양귀비꽃 배지가 달려있었다는 것이다.


대체 저건 뭘까...?

Remembrance day : 11월 11일. 캐나다와 영연방 국가들이 세계 대전에서 싸우고 희생한 군인들을 기리기 위해 지내는 중요한 기념일.


나중에 찾아보니 우리나라 현충일과 같이 군인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의 날이라고 한다. 매년 오늘을 기념하며 전쟁과 같은 끔찍한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염원하는 의미 있는 날이다.


곳곳에서 행사와 퍼레이드가 진행되는데 바로 이곳 스탠리공원에서도 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어쩐지 월요일 아침인데 한가로이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이 참 많구나... 하며 내심 부러워했는데 공휴일이라 가능했던 것이다.


추모의 날을 더욱더 보람되게 보내는 이들의 하루가 달리 보였다. 이때는 몰랐을 사실을 여기에 기록해 두고 당시의 나는 Seawall을 최종 목적지로 두며 공원 산책을 즐겼다.



하루종일 공원만,
TELUS World of Science


오후가 되면서 이 떠오른 태양은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추고 있다. 스탠리 공원을 빠져나와서 곧장 다운타운으로 향한 나는 모처럼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롭슨 스트리트(Robson St.)를 활보하고 있다.


시원한 음료수 한 잔을 손에 들고 거리를 활기차게 걷던 것도 잠시 비슷비슷한 상점들과 고층빌딩에 흥미를 잃어갔다. 아침에 다녀온 묘한 동화 나라 여파 때문인지 그토록 좋아하는 도심 한가운데 있는데 즐겁지가 않았다.


문득 왔다 갔다 하면서 창밖으로 본 동그란 과학관 떠올랐다. 인생 뭐 있나? 하고 싶은 거 하고 보고 싶은 거 보면서 사는 거지.


생각이 떠오르자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바로 스카이라인을 타고 이동했다.


Main Street역에서 내린 뒤 얼마 걷지 않아 동그란 '텔사이언스 월(TELUS World of Science)'가 보였다.


건물 밖에서부터 간단한 실험 장치들이 아이들의 이목을 끌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티켓을 끊고 싶었으나 엄마, 아빠 손을 꼭 붙잡고 아장아장 걸어가는 아이들을 보고 주춤거렸다.


... 함께 들어갈 꼬마 친구가 없!


집에서 잘 지내고 있을 아들과 함께 왔더라면 당장이라도 뛰어들어갔을 것이다. 아쉬운 마음을 곱게 접어두고 과학관의 외관을 감상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상암월드컵 경기장이 떠올랐다.


동그란 지붕이 꼭 축구공처럼 보였다.  축구공은 저무는 햇빛을 받으며 다시 흐려진 하늘과 오묘한 색감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작은 광장에는 마 친구들이 헬멧을 쓰고 자전거와 킥보드를 타 신나게 놀고 있었다. 아이들을 지켜보는 부모의 표정이 평온하다. 리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사람들 각자의 오늘을 마무리 짓고 있었다.


다채로운 풍경으로 채워진 나의 오늘은 '또 다른 여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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