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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면 쉬어가면 돼.

Vancouver, Canada

by JULIE K Jan 24. 2025

평소와 달리 컨디션이 좋지 않다.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가장 설레는 순간인 공항 가는 길이 힘겹다. 잔뜩 붉게 달아오른 얼굴에서 열감이 느껴졌다. 비행시간을 두어 시간 앞두고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걱정은 아무 의미 없었다. 이제 와서 취소할 수도 없는 노릇 때문이다.


무조건 가야만 한다.


걱정해 주는 남편에게 애써 괜찮다며 웃어 보이고 또다시 홀로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주일간 주어진 황금 같은 휴가인데 하필 몸이 도와주지 않아 속상했다. 겨우겨우 비행기에 올라탄 나는 비몽사몽으로 약 10시간의 비행을 견뎌냈다. 정말 다행인 것은 내 옆자리가 비어있었다는 것이다.


석 한 칸이 주는 위로가 참으로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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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으로 푸른빛이 지평선 너머로 없이 펼쳐졌다. 새하얀 거품처럼 둥둥 떠있는 구름을 보고 있자니 마치 광활한 우주에서 파랗고 하얀, 사탕 같은 지구를 내려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저 밖으로 나가면 숨을 쉴 수 있는 산소가 있을까... 작은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막과 무중력 속에서 유영하는 우주인이 되기라도 한 듯 마음이 평화로워. 상의 나래는 아픈 통증을 안고 멀리 훨훨 날아가주었다.


임없는 공상 속에서 비행기는 지구상에 안개처럼 피어있는 구름을 뚫고 내려와 활주로를 시원하게 가로질렀다. 무사히 착륙과 동시에 살았다는 생각에 안심다.



Good Morining,
Vancouver!


"저.. 혹시 Edmonton으로 가려고 하는데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시나요?"


입국심사를 받기 위해 무거운 몸을 이끌고 힘겹게 걷고 있을 때 기내 안에서 맞은편 좌석에 앉았던 노부부가 다가와서 말을 건넸다. 처음 들어보는 지명에 당황했만 여기서 어디를 가든 분명 밴쿠버는 최종 목적지가 아닐 것이다. 주위를 빠르게 둘러보며 이정표를 찾았다.


"여기서 경유하시는 거예요? 저쪽 환승구역으로 가시면 될 거예요."


캐나다도 처음이고 밴쿠버 역시 처음 밟는 땅이지만 오지랖 넓은 아줌마는 그 이후에도 에드먼턴?으로 가려는 사람들에게 환승구역으로 가시라며 반사적으로 안내하고 있었다.


밴쿠버에서의 처음은 졸지에 가이드가 었네...


무사히 입국심사를 받고 짐을 찾은  숙소까지 어떻게 찾아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이 흐렸고 바다냄새가 시원하게 났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났다. 기력을 거의 소진했기 때문에 헤매지 않고 목적지까지 자연스레 찾아온 것은 기적이었다.


아침 일찍 도착한 나는 운 좋게 방을 배정받 곧장 들어갈 수 있었다. 프니까 방황하지 말고 빨리 들어가서 쉬라는 뜻인 거 같았다.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서 방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개인 사물함 본 순간 다시 나가야 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유스호스텔에서 지낼 때는 자물쇠가 필수인데 깜박하고 그냥 온 것이다. 당장 자물쇠를 구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물어 물어서 근처에 있는 '런던드러그' 갔다. 눈에 보이는 자물쇠 하나 계산하고 이왕 나온 김에 가까운 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로 했다.


분명 낯선 곳으로 여행을 왔는데 한 달간 이곳에서 지낸 사람처럼 거리를 누비고 있었다. 퀭한 얼굴에 헝클어진 머리카락에도 아랑곳 않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완벽하게 차단한 채 좀비처럼 어기적거리며 걸어 다녔다. 


여행이 아닌 생존 문제가 달려있기에 더 이상 묻고 따지지도 않고 눈에 띄는 아무 식당으로 들어갔다. 메뉴가 무엇이든 맛이 어떻든 간에 당장의 굶주림을 해결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밴쿠버에서 맞이한 아침은 살겠다는 집념으로 오직 본능에 충실한 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컨디션 난조로 한 발짝도 디딜 힘이 없던 나는 다시 숙소로 가자마자 로 기절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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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첫날의 하루는 숙소에서...여행 첫날의 하루는 숙소에서...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한숨 푹 자고 일어나니 정신이 조금 돌아왔다. 눈을 떠보니 벌써 해가 저물어 있었다. 여행지에서 금쪽같은 하루를 이렇게 보내버리다니.. 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벌어다.


가족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목소리를 들으니 서러움이 복받쳐 올라왔다. 하필 잘 챙겨서 다니던 상비약도 없어서 통증을 온전히 견뎌내야만  시간들이 떠올랐다. 써 밝은 목소리로 통화를 마친 뒤 밖으로 나가봤다.


주황빛 조명이 눈부셨다. 젊은 친구들이 복도에서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저녁시간이라서 그런지 주방 쪽에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계단 옆 복도에 작은 공간이 눈에 띄었다. 안으로 들어가서 안락해 보이는 의자에 잠시 몸을 기댔다.


"줄리~! 어쩐 일이야~~! 진짜 오랜만이네.. 잘 지내고 있지?"


핸드폰 너머로 친구의 목소리가 하게 려왔다.


"이사장~~!! 잘 지내고 있지? 나 밴쿠버 왔어. 내일모레 뭐 해? 시애틀 갈 건데 ? 이 밥 먹자."


오랜만에 듣는 친구의 목소리에 기운이 절로 났다. 가운 마음에 마치 지금 당장 종로에서 만나 약속 잡듯 아무렇지 않게 을 이어갔다.


"갑자기? 지금 어디야? 어디 달려가야지~ 내일이라도 바로 비행기표를 끊어야 하나~~?"


"가장 빠른 거로 끊고 넘어와~ 우리 빅토리아도 가자. 유럽형 작은 도시라는데 끝내주게 예쁘대."


젊은 시절 항상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던 나를 잘 아는 친구는 갑작스러운 소식에 놀라워하면서도 장단을 맞춰줬다. 장이라도 시애틀에서 만날 것처럼 대화를 이어갔다.


이사장은 캘리포니아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시애틀까지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고 갑자기 휴가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쉽게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한국보다 거리상 가까이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고 의지가 됐다.


한참 동 수다 떨고 나니 잠시 고통을 잊을 수 있어서 살 것 같았다. 오늘만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니 무조건 괜찮아져야만 한다.


실컷 자고 일어난 뒤라 쉽게 잠이 오지 않아 태블릿으로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째 평소답지 않게 태블릿 PC를 챙겼는데 결국 렇게 될 줄 알았던 것인가!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된 나는 온 정신을 드라마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는 것을 못 견디는 성격이라 휴양지에 가서도 숨은 곳들을 찾아서 여행을 다녔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꼼짝없이 갇혀있었지만 막상 지내고 보니 여행지에서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오롯이 하루를 숙소에서 보내는 것도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이 지쳐있는 지금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아무도 없는 4인실 숙소에서 나만의 시간을 갖고 있는 것에 감사다.


비록 엉망진창이 된 시차적응 때문에 밤새도록 잠을 설치게 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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