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W Dec 11. 2023

비가 오는 날이면

삶을 대하는 자세

비가 오는 날이면 여러분은 무슨 생각이 드는가?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해물파전과 동동주? 외출 나올 때 닫고 나오는 것을 깜빡한 베란다 창문? 아니면 어린 시절 비를 맞으며 집 앞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뛰어놀았던 때가 생각날 수도 있겠다.


나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비 오는 풍경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적당히 내리는 비면 더 좋다. 비 오는 모습을 보면 생각에 잠기기 더 쉽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는 온몸으로 비를 맞고 물웅덩이에서 발을 푹 담구기도 하는 것이 즐거운 놀이 중 하나였다면, 지금은 외출을 꺼려지게 만드는 요인이 되곤 한다.


집이든 카페든 비를 맞지 않는 곳에서 여유롭게 창 밖을 지켜본다. 계속해서 내린 비로 인해 생긴 크고 작은 물웅덩이들, 창문으로 비가 떨어지며 생긴 수많은 물방울, 저마다의 색을 가진 우산을 쓰고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까지. 비 오는 날의 풍경은 매번 같으면서 다른 것 같다.


가끔 사람들이 쓰고 있는 우산이 하나의 짐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작은 우산은 작은 짐, 큰 우산은 큰 짐, 우산이 아닌 우비를 입고 가는 사람들은 짐 없이 홀가분한 모습으로 보이곤 한다.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다들 짐을 지고 살아가진 않을 텐데, 거리를 걸어갈 때 조금은 편하게 걸어갈 텐데, 그렇게 각자의 짐을 가지고 가야만 할 곳이 있다는 생각이 알지도 못하는 거리의 사람들에게 연민과 동질감의 감정을 들게 했다.


비는 그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가뭄이 계속 되고, 비가 내리지 않는 기간이 길어져도 언젠가는 비가 다시 내리기 마련이다. 그럴 때면 집 안 구석에 잠자코 기다리던 우산을 쓰고 나갈 것이다.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비는 우리의 짐을 생각하게 한다. 한 번은 그 짐을 타고 멀리 날아갔으면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우산이라는 짐이 날개가 되었으면 했었다. 그렇지만 결국 두 발로 걸어가야 한다. 짐을 지고 달릴 수는 있어도 날개가 생길 수는 없다.


자신이 가져온 우산이든, 누군가가 준 우산이든, 우리는 모두 비가 내리면 우산을 쓰고 길을 나설 것이다. 어차피 가야 할 길이기에 짐을 이고서라도 한 걸음씩 옮긴다.


어차피 우산을 쓸 거면 기쁜 마음으로 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젠 우산을 쓰고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을 가만히 지켜보기만은 하지 않을 것이다. 우산을 쓴 수많은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하나의 힘이 되어주고 싶다. 나에게도 모두에게도 저마다의 짐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서로에게 위안이 될 것이다.

이전 08화 갈매나무를 생각하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