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대하는 자세
사랑할 시간도 없는데 어떻게 미움을…
한 음식점 간판 아래에 쓰여있던 이 문장은 나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길을 걷다 간판 아래에서 5초 정도 멍하니 멈춰 서서 조용히 그 문장을 속삭였다. 아무도 듣지는 못했으나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미움의 감정을 느꼈던 수많은 것들을 떠올렸다. 미워했었던, 미워하는, 미워할 것들을 말이다. 겉으로 내비치지는 않았으나 돌아보니 속으로 누군가를 그리고 무언가를 미워했던 날들이 꽤 많았다. 그 시간에 한 번 더 사랑했었다면, 그 작은 미움 너머에 큰 사랑이 있었는데 왜 이렇게 작은 티끌 같은 미움에 매달렸던 건지.
사랑하니까 이별하는 것은 너무 모순된 말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사랑하는데 영영 만나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을 택할 수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난 미워하니까 사랑을 포기하고 이별을 택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미움과 이별은 같은 마음인 줄 알았다.
“이유야 여러 가지 있었겠지만”
“사실 단 하나뿐이었다.”
“내가 도망친 거다.”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끝나갈 무렵, 츠네오의 독백이다. 평화로운 마을과 아름답게 흐르는 강물이 나오는 배경과는 대비되는 문장이라고 느꼈다. 그러나 그렇게 이별하는 츠네오와 조제에게는 어떠한 미움도 느낄 수 없었다.
사랑을 그만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사랑하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사랑할 수 없어서일까. 어떤 이유든 사랑을 포기하고 그만두는 것은 모두 핑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하지 않는 것도, 사랑할 수 없는 것도 하나의 핑계일 뿐이다. 그러나 난 그 핑계를 미워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 핑계 안에는 수많은 고민과 눈물이,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크나큰 현실이, 그 이별을 감수하면서까지 나아가야 할 걸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다양한 핑계로 당신을 떠난 누군가는 그 핑계의 무게를 지고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날 무렵 내가 조제라면 츠네오를 증오하고 미워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저 문장을 마주하자 생각이 바뀌었다. 사랑할 시간도 없는데 어떻게 서로를, 츠네오를, 그리고 조제를 미워하겠는가.
떠나간 자는 떠나간 자만의 아픔과 짐을, 남은 자는 남은 자만의 아픔과 짐을 각각 짊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 짐을 안고 살아가겠지. 사랑할 수 없다 해도 미워하지는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