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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 Dec 20. 2023

그리움이란<3>

서점은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였다. 겹겹이 쌓여있는 책장 속 수많은 책들, 평일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한가한 시간대라 그런지 별로 없는 사람들, 그녀와 같이 책을 읽었던 지금은 비어있는 서점의 책상과 의자, 그리고 서점에서만 느낄 수 있는 포근한 향기까지.


한 번 서점에 갈 때면 그는 몇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읽고 싶은 책을 들고 카페로 향하는 것보단 서점으로 향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그에게는 앉을자리가 없어도 책장에 기대서 책을 읽곤 했다.


오랜만에 온 서점이어서 그런지 책을 읽고 싶은 충동이 크게 일었지만, 그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는 그녀에게 줄 책을 찾아보았다.


"저기 책 한 권을 찾고 있는데요."

서점 한쪽에서 책을 정리하는 서점 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네, 도와드릴게요. 어떤 책을 찾고 계세요?"

"그리움이란 제목의 책이에요. 서점에 있을까요?"

"잠시만요."


그를 앞에 두고 서점 직원은 잠깐 자리를 비웠다. 아마도 책을 찾으러 갔을 것이다. 서점 구석에서 책을 기다리며 그는 생각에 빠졌다. 왜 갑자기 이 책을 그녀에게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까. 그녀도 그를 그리워하고 있었을지 모르는 작은 기대감 때문일까. 아니면 그 책의 결말을 그녀에게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 때문일까. 어떤 이유든 그는 그녀의 앞에 그 책을 가지고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드시


몇 분의 시간이 흐르고, 책 한 권을 손에 든 서점 직원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손님 찾으시는 책이 맞으실까요?"

"아 네, 감사합니다."

"바로 계산해드릴까요?"

"네"


계산대로 이동한 후 서점 직원은 책의 바코드를 찍으며 그에게 물었다.


"혹시 이 책, 손님이 읽으실 책이 아닌가요?"

"네 맞아요. 선물하려고요. 그걸 어떻게?"

"보통 책을 구매하시는 분들은 여러 책을 들여다보시고는 약간의 설렘이 드러난 표정으로 책을 들고 계산대로 오시거든요. 그런데 손님은 설렘보다는 슬픔의 감정이 느껴졌어요."


잠깐 뜸을 들이고 서점 직원은 계속 말했다.


"선물이라고 한다면 보통 슬픔이 느껴지지는 않을 텐데... 아 죄송해요. 너무 말이 많았죠. 책 여기 있습니다."


보통 선물을 한다고 하면 설렘, 즐거움, 선물을 받고 활짝 웃어줄 상대방의 표정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그는 책을 받았을 때의 그녀의 표정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에게 웃어줄지, 아니면 애초에 책을 받지 않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또한 슬픔의 감정을 스스로도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정말 슬퍼하고 있었구나. 애써 참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점 직원의 말을 듣고 한동안 말없이 생각을 하던 그는 간략한 인사와 함께 책을 들고 서점을 나왔다.


오후 1시 20분


집에 도착한 그는 책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 점심 식사를 준비했다. 서점에서 돌아오면서 샀던 샌드위치와 오렌지 주스가 그가 선택한 메뉴였다.


이상하게도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뭐라도 먹는 게 좋다고 생각을 했기에 억지로라도 샌드위치를 씹어 삼켰다.


슬슬 나가야 했다. 약속 장소까지는 꽤 시간이 걸리기에 빠르게 식사를 끝낸 그는 외출 준비를 하였다.


검은색 단추가 달린 니트, 그가 평소에도 그리고 그녀를 만날 때도 즐겨 입었던 어두운 색의 청바지, 모자가 달린 코트와 검은색 머플러까지.


외출 준비를 모두 마친 그였지만 막상 그녀를 만나러 가려고 하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를 만나는 것이 맞는 것인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도 이야기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그 이야기의 끝이 새로운 시작이 될 수도 있고, 영영 돌아오지 않을 끝으로 향할 수 있지만 일단 그곳으로 향해야 했다.


집을 나서기 전에 그는 책의 일부를 접었다. 그녀가 책을 받고 펼쳤을 때에나 알 수 있을 정도로 작은 흔적을 남겼다.


"나 이제 출발해. 곧 보자."


그녀에게 메시지를 남긴 그는 작은 봉투에 책을 담고 집을 나섰다.


<4>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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