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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 Dec 03. 2023

그리움이란 <1>

그녀를 보자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어차피 이야기는 똑같이 흘러가겠지만, 다시 그녀를 마주했다는 사실에 온갖 감정이 넘쳐흘렀다.

그러나 그는 알았다.

그가 원하든 원치않든 흘러갈 이야기는 그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갑작스러운 그의 눈물에 놀란 듯 그녀는 당황하며 그에게 물었다.

그러나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하지 못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말을 해봐. 왜 그러는 거야."

멈추지 않는 그의 눈물에 그녀는 안절부절못하며 휴지를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어제와 다르다고 깨달은 건 금방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한여름의 더위로 땀을 뻘뻘 흘렸던 그가 잠에서 깨자 익숙하지 않은 한기에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었기 때문이다.

침대 건너편 책상 위에 있는 휴대전화에서 알람이 울렸다. 그만 침대에서 나오라는 신호 같았기에 이불을 걷고 일어났다.

오전 9시

그의 기억에는 이 시간에 알람을 맞출 이유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째서 이 시간에 알람을 맞춰놨는지.

그보다 더욱 충격적인 건 오늘의 날짜이다. 분명 8월의 타들어갈 여름을 보내고 있었는데 말이다. 시간이 앞당겨진 건지 아니면 미래로 간 건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일단 일어나야 했다. 언제까지 침대와 씨름을 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 항상 하던 대로 따뜻한 물을 한 잔 마시고 간단하게 세안을 했다.

순간 생각이 들었다.

'오늘이 1월 11일... 11일이라...'

1이 세 번이나 들어가서 그런 게 아니라 무언가 중요한 날인 것 같은 그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휴대전화의 잠금을 풀고 캘린더와 메모장을 확인했다.

'이별하는 날'

자주 사용하는 메신저의 나에게 보내기 기능에도 적혀있었다. 여기저기 잊을 수 없도록 각인을 해놓은 것이었다.

그렇다. 오늘은 그녀와 이별하는 날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모른다. 오래도록 메모장과 캘린더에 적혀있던 이 이별은 그녀 모르게 그 혼자 준비했던 이별이었다.

오전 9시에 알람을 맞춘 이유도 이별의 연장선상이었다. 평소 오후 12시 이전에는 거의 눈을 뜨지 않았던 그는 적어도 이별하는 날은 늦잠은 자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렇구나."

아무도 없는 고요한 집에 그의 혼잣말만이 조용하게 들려왔다 사라졌다. 고요함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는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그는 과거로 돌아온 것이고 오늘이라고 해야 할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과거의 오늘은 그녀와 이별하는 날이다. 현재 시간은 오전 9시 30분을 조금 넘기고 있으며, 그녀와는 오후 4시에 만나기로 했다. 약속까진 생각에 잠기기에 충분한 여유가 있으며 그는 그 여유를 최대한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와 이별한 후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았다. 이별한 직후에 들었던 후련함, 어차피 계속 인연을 이어가지 못했을 것이라는 합리화,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이별의 고통에 휩싸인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별을 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그렇지만 이별을 할 자신도 없었다. 다시 한번 그 자리에 나가야 하는 상황이 원망스러웠다.

이별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몇 백 번이고 그의 머리를 강타했었으며 그럴 때마다 그는 한 번만이라도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정작 정말로 과거로 돌아오니 기쁨보다는 공허함이 앞섰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어떻게 얘기를 해야 할지, 이별을 꼭 해야 하는 건지, 심지어 무엇을 입고 나가야 할지까지도.

오래전 읽은 책의 구절이 생각났다.

'그리움이란 기억을 하나씩 포기하는 것.'

사무치게 그리웠다. 길을 지나가다가, 식당에서, 지하철에서, 학교에서 전애인을 마주쳤다는 친구들의 말을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넘겼으나 속으로는 한 번만이라도 마주치기를 원하고 있었던 그였다.

머릿속에 그녀와의 기억이 떠오를 때면 이를 부정하지 않았다. 기억 속에 떠오른 잔상을 진심으로 슬퍼하고 그리워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 기억을 포기하고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포기함을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별한 상태로 만나는 것도 아닌, 이별하는 날 그녀를 다시 만난다.

기억을 포기하려고 노력하는 그였음에도 그녀를 만날 수 있다는 그 사실은 마음 깊은 곳에서 모순적인 기쁨을 생산해 냈다.

<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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