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살에 청주에 새 직장을 얻게 되면서 처음으로 혼자 살게 되었다.
내 집에서 보내는 첫날밤. 급하게 이사를 오느라 도시가스랑 TV, 인터넷 아무것도 연결이 안 되어 있었다.
11월인데 보일러를 켤 수 없어 춥고 또 심심했다. 핸드폰 데이터도 얼마 없는데...
전기장판 위에 이불을 꽁꽁 싸매고 누워 핸드폰을 보다 화장실 갈 때는 차가운 방바닥을 깨금발로 겅중겅중 뛰듯이 이동했다.
짐도 별로 없고 9평 원룸이 나에겐 대궐처럼 느껴졌다.
내일부터는 그렇게 원하던 공무원이 된다는 설렘, 늦은 나이에 안 해본 일을 해야 한다는 긴 강감, 이 넓은 원룸에 혼자 있다는 두려움에 약간의 떨림이 전해졌다.
지금 생각해 보니 추워서였을 수도 있겠다.
회사 사람들은 누가 지방 오피스텔을 매매하냐고 한심하듯 말했지만 부동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로서는 일단 내 집을 갖게 되니 감개무량하기만 했다.
하물며 전세랑 매매가가 500만 원 차이여서 '완전 개이득~' 이러면서 샀다.
문제는 집에서 일어나는 자질구레한 뒤처리 또한 나의 몫이라는 거.
벽에 곰팡이가 생기질 않나 세면대 팝업은 한번 누른 이후로 다시 올라올 생각을 안 했다. LED 전등 안에는 지네가 있는 거 같기도 하고(나중에 교체할 때 보니 전선이었다) 콘크리트를 뚫을 수 없어서 대충 걸쳐 놓은 블라인드는 살짝만 움직여도 떨어져 버렸다.
이때였다.
살면서 처음으로 '남자가 필요하구나. 뭔가를 수리하거나 힘쓸 때 남편이 있으면 도와줄 수도 있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맘이 든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우리에겐 유튜브가 있다.
LED 전등, 세면대 팝업(누르면 닫히고 다시 누르면 올라오는 물 빠져나가는 구멍, 팝업이란 용어도 이때 첨 알았다), 가스레인지 후드 교체와 욕실 수납장 다는 법까지 모두 유 선생님(유튜브)의 도움으로 해결했다.
샤워기 헤드도 교체하지 못하던 나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샤워기 헤드를 따로 분리할 수 있는 건지도 몰랐다.
이런 '집 무식자'가 하나, 둘 해결하다 보니 자신감이 붙어서 이모집으로 가스레인지 후드를 교체하러 원정까지 다니는 경지까지 이르렀다. 혼자 사는 사람들끼리 돕고 살아야 하지 않겠어? 엣헴.
한창 기고만장하던 중 싱크대 수전에서 물이 새는 걸 보고 역시나 유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교체해 보기로 했다. 집에 공구가 없어서 회사에서 스패너를 빌려왔는데 크기도 안 맞고 지금까지 한 것 중에 가장 부품이 많아서 어려웠다. 영상을 몇 번이나 되감아 보며 따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싱크대 아래 장 수도꼭지에서 (살짝 MSG를 첨가하자면) 폭포수처럼 물이 뿜어져 나왔다. 너무 당황스럽기도 하고 어찌할 줄 몰라 관리소장에게 울먹이며 전화를 했더니 직접 오셔서 방 꼬락서니를 보시고는 수도계량기를 잠가 주셨다.
난 유튜브 영상에서 수도계량기 잠그라길래 싱크대 장 안에 있는 수도꼭지가 그거인 줄 알았다. 현관문 옆에 수도계량기가 따로 있구나. 그런 거구나.. 나 자신 왜 이렇게 모르는 게 많냐. 꼭 이렇게 힘들게 배워야 하는 거니?
어찌어찌 수전을 교체하긴 했지만 방바닥은 온통 물바다고 싱크대장에 있던 물건들은 다 젖어 설거지 거리가 쌓여있었다. 뿌듯하긴 한데 왜 이렇게 서럽지? 그때 기분이 참 오묘했다.
그래서 청소하다 말고 사진을 찍어 개인 인스타에 올렸다.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었다.
이렇게 말하면 내 주위에서는 "난 남편이 안 해줘서 내가 다해."라고 하더라.
그래 어차피 인생은 혼자다.
나에겐 유 선생이 있으니 괜찮다.
그러고 보면 유튜브의 등장이 결혼율은 낮추는데 어느 정도 역할을 한건 아닐까?
싱글세는 구글에게 요청하심이...... 조심스레 권해본다. 허허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