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을 쫓는 PD, 문장을 깎는 작가

보이기 위해 애쓰는 김 PD와 읽히기 위해 애쓰는 이작가

by 기록습관쟁이

김 PD의 하루는 지표와의 전쟁으로 시작되었다. 새벽 3시에 올라간 예능 클립의 '좋아요'와 '조회수'는 이미 수십만을 넘겼지만, 그는 만족하지 못했다. 찰나의 자극을 위해 편집된 1분짜리 영상. 폭발적인 리액션. 황당한 자막, 쉴 새 없이 터지는 효과음으로 가득 찬 영상이었다. 김 PD는 초고속으로 스크롤을 내리며 실시간 댓글을 확인했다. "대박", "미쳤다", "PD 천재"같은 휘발성 감탄사들이 넘실거렸다. 이 모든 것은 보이기 위해 애쓰는 그의 고단한 노력의 결과였다.


그는 믿었다. 사람들은 생각할 시간을 주면 떠나버린다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으로 클릭을 유도하고, 쉴 틈 없는 전개로 눈을 붙잡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보여줘야 한다. 일단 봐야 다음이 있다." 이것이 그의 철학이었다. 그는 문장을 다듬는 작가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쓸데없는 고집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작업은 너무나 비효율적이었다. 짧은 문장 하나를 위해 며칠을 고민하고, 불필요한 단어라며 삭제하는 행위가 그에게는 그저 시간 낭비로 보였다.


같은 시각, 이작가는 텅 빈 원고지 앞에 앉아 있었다. 그의 손에는 연필이 쥐어져 있었고, 그 앞에는 열 번도 넘게 읽은 초고가 놓여 있었다. 제목은 이미 열두 번이나 바뀌었고, 첫 문장은 완벽한 리듬을 찾기 위해 수없이 수정되었다. 그는 단 하나의 문장이 독자의 마음을 여는 열쇠라고 믿었다. 그의 작업은 속도가 아닌 밀도에 집중되어 있었다.


며칠 전, 그가 집필한 르포 소설을 웹 다큐멘터리로 만들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연출을 맡은 사람이 바로 김 PD였다. 첫 회의부터 그들의 충돌은 예견되어 있었다.


"작가님, 제목이 너무 심심해요. '노동의 소멸, 사라지는 인간'이라니. 이건 뭐 철학서도 아니고 '인간을 지우는 미래, 당신의 일자리는 안전합니까?' 이런 식으로 좀 자극적으로 가야죠."


김 PD의 말에 이작가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제목은 그 글이 담고 있는 무게를 보여주는 겁니다. 무게가 없으면, 읽히지 않습니다."


김 PD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읽히기 전에 보이지 않으면 끝이에요! 시청자는 작가님이 아니라고요. 무게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일단 클릭하게 만들어야죠!"


김 PD는 시청자의 반응을 예측하며 온갖 장치를 제안했다. 긴장감을 높이는 배경 음악, 예측 불가능한 반전, 심지어는 실제 이야기에 없는 가상 인물을 추가해서라도 극적 요소를 더하자고 했다. 이작가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거짓말을 쓰고 싶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가진 본연의 힘을 믿습니다."


며칠 뒤, 이작가는 수정 작업을 마친 최종 원고를 김 PD에게 건넸다. 원고는 첫 만남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든 문장이 달라져 있었다. 접속사는 최소화되었고, 불필요한 수식어는 사라졌다. 군더더기 없이 단단해진 문장들은 마치 잘 깎인 조각처럼 정교했다. 이것이 그가 말한 읽히기 위해 애쓰는 고단한 수정작업의 결과였다.


"이게 최선입니까? 조회수가 바닥을 치면 어쩌려고요?" 김 PD는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작가는 조용히 답했다. "조회수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집니다. 하지만 독자의 기억은 오래 남습니다."


김 PD는 결국 이작가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원고 그대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그는 방영일을 손꼽아 기다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실패를 확신했다. 예고편의 제목은 이작가의 의견을 따라 '노동의 소멸, 사라지는 인간'으로 올라갔고, 댓글창에는 '제목만 봐도 재미없다', '이런 걸 누가 보냐'는 혹평이 이어졌다. 그의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는 듯했다.


방영일, 첫 주 다큐멘터리의 조회수는 처참했다. 김 PD의 예상대로였다. 그의 동료들은 "거봐, 내가 뭐랬어. 작가주의는 방송에서 안 통한다니까"라며 혀를 찼다. 김 PD는 이작가의 전화번호를 지우려다 멈췄다.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묘한 미안함이 자리 잡았다.


그러나 다음 주부터 기묘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첫 주 조회수는 낮았지만, 재시청률과 완독률이 놀랍게도 90%에 육박했다. 사람들은 다큐멘터리를 '보았다'기보다는 '읽었다'라고 표현했다. SNS와 커뮤니티에는 "제목은 재미없었는데, 내용이 미쳤다", "문장이 너무 좋아서 그냥 볼 수가 없었다", "이 다큐는 꼭 봐야 하는 이유가 있다"는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유명 평론가들이 이 다큐멘터리를 "문장으로 쓴 영상"이라고 극찬했다. 영상은 더 이상 눈을 즐겁게 하는 자극제가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는 텍스트가 되었다.


댓글의 내용도 달라졌다. "대박"이나 "미쳤다"는 짧은 감탄사 대신, "내용을 곱씹을수록 깊은 울림이 느껴진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새로운 시각을 열어줘서 감사합니다"와 같은 진지하고 긴 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영상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하고, 공감했다.


두 달 뒤, 김 PD는 이작가를 찾아갔다. 김 PD의 손에는 노트북이 들려 있었다. 노트북 화면에는 여전히 낮은 '조회수'가 보였다. 하지만 그 옆에는 '평균 시청 시간'과 '댓글 수', 그리고 '재시청률' 그래프가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작가님 죄송합니다. 제가 틀렸습니다."


김 DP의 진심 어린 사과에 이작가는 고개를 들었다.


"저는 그동안 '보이기 위해' 발버둥 쳤습니다. 더 강렬한 자극을 찾았고, 더 짧은 호흡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였습니다. 그래서 순간의 감탄은 얻었지만, 긴 여운은 남기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작가님은... 처음부터 '읽히기 위해' 문장을 깎고 다듬었습니다. 그 고단한 과정의 기쁨과 고통을 담아내셨기에, 사람들이 그 글을 읽고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 과정의 기쁨과 고통을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글이 더 좋은 이유를 이제야 알겠습니다."


김 PD는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결국 '보이는 것'은 '읽히는 것'을 위한 미끼였을 뿐이었습니다. 저와 작가님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저는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았을 뿐이고요."


이작가는 미소를 지었다. "하나의 문장을 만드느라 수많은 밤을 지새운 기쁨을 이제 김 PD 님도 아시겠군요."


김 PD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지표 중심적인 사고방식에 '밀도'와 '깊이'라는 새로운 기준이 더해지는 순간이었다. 이 깨달음은 그의 다음 프로젝트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이끌게 될 터였다. 그는 더 이상 자극을 찾는 크리에이터가 아닌, 이야기를 다듬는 작가의 자세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당신은 지금 보이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까? 아니면 읽히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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