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에피소드 엘프처럼 생긴 싸이코상사, 그리고 우울증을 쓰느라 그 인간과의 일들을 다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틀간 소화불량과 두통을 경험했다. 5년 전이나 된 일인데도, 이 처럼 기억이 선명하고, 몸이 스트레스에 반응을 하다니 정말 어지간히도 싫었고 힘들었나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생각해 보면 참 운이 시간 맞추어 잘 들어오는 타입인 것 같다. 사건사고도 많은데 숨이 깔딱깔딱하면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온다.
싸이코엘프녀의 2년간의 가스라이팅에 무기력하게 당하며 우울증 약을 먹고 있던 와중,한 구립 도서관에서 은퇴하는 직원이 있어 공립도서관 사서들 중 직원충원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시점은 숨이 넘어가기 직전, 숨이 깔딱깔딱하던 시점이었다. 바로 도망치치 않으면 이러다 암이 생겨 죽던지, 우울증 약 때문에 멍한 정신으로 사고가 나서 죽던지, 곧 죽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실제로도 당시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았다.
도서관에서 도서관 전근은 시험이 따로 필요 없다. 다만 자리가 있으면 구립도서관장과 비공식적인 면접을 본 뒤, 간택을 받을 수 있다. 앞서 말했듯, 내가 몸 담고 있던 빈민가 도서관은 동종업계에서도 3D업장으로 유명했는데 (벨기에 빈민가의 동양인 사서 참조), 그곳에서 버틸 수 있었다면 여기서는 껌 일 것이라는 판단을 했는지 나는 간택을 받았다.
5년을 그렇게 몸 바쳐, 소처럼 일했던 것의 말로가 이렇게 도망치듯 떠나야 한다는 것이라니 씁쓸하긴 했지만, 내 몸을 추스르고 싸이코엘프녀를 벗어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그렇게 천운으로 동료가 10명이나 되는 큰 구립 도서관으로 옮긴 뒤, 빈민가의 도서관처럼 영혼을 갈아 넣고 일하지 않아도 되는 나날을 즐겼고, 도서관장과 동료들의 신임과 사랑을 받으며 점점 우울증이 나아졌다. 그리고 약을 끊을 수 있게 되었고,다시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동료들은 어디선가 나타나 2-3인분의 일을 해치우는 나를 신기하게 봤고, 나를 참 좋아해 주었다. (소처럼 단련시킨 빈민가 도서관에서 감사하다 해야 할까?) 특히 이곳에서 일하는 반년동안, 유교녀의 참 교육 시전은 계속 이어졌고, 아주 고질적이었던 싸가지를 말아먹은 중동계 청소년들의 싸가지 재건에 큰 기여를 했다. 이 시기에 조서를 작성하느라 경찰서를 참 많이도 갔다. 싸가지가 조금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말아먹었으면, 진짜로 뜨끔한 맛을 봐야 하는데 이때는 경찰을 끼고 조서를 작성해 민원을 걸면 대 다수의 문제청소년들이 정신을 번쩍차리고, 부모님 대동하고 와서 싹싹빈다. 얘들아, K-아줌마를 쉽게 보면 큰일난단다.
싸이코엘프녀는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실 것 같아 소식을 전한다.그 여자는 그 예쁜 얼굴로 짓는 아름다운 미소와 가식으로 높은 분들에게 잘 보여 승승장구하였고, 더욱더 높은 자리로 갔다는 소식을 최근에 들었다. 애석하게도 세상의 모든 것이 사필귀정, 인과응보는 아닌 가 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살다 보면 언젠가는 본인이 한 짓들이 발목을 잡을 것이라 생각한다.
가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그 싸이코엘프녀와 조우하는데, 생각보다 트라우마가 심했나 보다. 어느 날은 아들이 방학 때 참가했던 음악캠프에 그 여자의 아들도 우연히 참가를 하였었는지, 본인 아들을 데리러 온 그 여자를 보았다. 우연히 마주쳤는데 날 보더니 또 그 가식적인 생글거리는 웃음과 함께 다가와 친한 척을 하는 것이었다. 수년이 지났음에도 그 여자 얼굴만 봐도 다시 그때로 돌아간 듯 숨이 다시 콱콱 막혔다. 당신, 언젠가는 벌 받을 거야!
나를 어둠의 구렁텅이에서 꺼내 준, 구립도서관에 은혜를 다 갚기도 전에 (전근 간 지 반년 밖에 되지 않았던 시점이었다.) 앤트워프 대학 학술도서관 경력직 사서 구인공고를 보게 되었다.
경력 3년 이상
학사이상
문헌정보전공 우대
뭐야, 이거 내 얘기 아니야?
앤트워프 대학 사서도 공무원이지만, 월급의 출처가 다르다. 시공무원은 시에서 월급을 주고, 앤트워프 대학의 사서는 연방정부의 교육부에서 월급을 준다 (벨기에의 모든 대학은 국립이다). 앤트워프 대학에서 일을 하게 되면, 시 공무원은 사표를 내고 나와야 한다. 그러나!
혜택을 자세히 살펴보니, 이건 뭐 비교할 바가 아니다. 나는 아직도 고등학교 졸업장이 없어도 되는 말단 공무원등급으로 일을 하고 있었으므로, 대졸자의 월급을 받게 되면 월수입이 수직상향이다. 게다가 일 년에 휴가가 무려 40일 + 크리스마스와 새해 사이에 또 쉬니 대략 45일이었다.
이 구인공고는 정말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싸이코엘프녀와 함께 일했을 때에 이 공고를 보았더라면, 나는 무기력으로 인해 그냥 기회를 흘려버렸을 것이다. 천운으로, 동료들의 사랑과 도서관장의 신임을 듬뿍 받으며 우울증에서 회복되고 난 후에 본 공고를 보게 되었으니 나는 진심으로 행운아가 아닐 수 없다.
잘 된다면, 나에게 사랑과 믿음을 준 동료들을 떠나야 했지만 이런 기회는 아무 때나 오는 것이 아니었기에 잡아야 했다. 그리고 아직 붙은 것도 아닌데 김칫국부터 마시기엔 일렀으니, 일단 지원하고 그다음 일은 혹시라도 붙으면 생각하는 것으로 마음을 정했다.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보냈더니 면접을 보러 오라는 이메일을 받았다. 앗싸!
그.런.데.말.입.니.다.
당시에 한국에서는 컬러 샴푸로 머리를 감으면 머리색이 바뀌는 제품이 유행을 타고 있었다. 나는 너무 궁금하기도 했고, 더 나이 먹기 전에 한 번만 해 보자라는 생각으로 무려 한국에서부터 국제택배로 배송시켜 초록색제품을 사서 시도해 보았다(본디 남의 말 드럽게 안 듣고, 하고 싶은 건 해 봐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 요즘 말 안 듣는 우리 아들 탓을 하기 전에 스스로를 돌아봐야 함).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보내기 전의 일이었다. 제품에는 색이 일주일가량 지속됩니다 라고 쓰여 있었는데, 거의 3주가 다 된 시점에 면접일이 다가오고 있는 와중에도 초록색은 빠지지 않았다. 이런 된장. 아직도 내 머리색은 크리스마스 트리마냥 초록초록했다..
이 머리로 학술도서관 사서 면접 보면 빛의 속도로 탈락일지도. 양심이 있어 자체검열 후 스티커 붙임.
면접 당일이 되었다. 이 머리를 어찌할 까 고민을 하다가 떠 오른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아주 신박한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검정 마스카라로 머리를 칠하기 시작했다. 워터프루프도 아닌데... 밖을 보니 하필이면 또 비가 온다. 이놈의 벨기에 날씨. 제발 날 좀 살려주소. 다행히 나는 잠시 비가 그친 상태에 도착하여 검은 얼굴로 면접장소에 들어가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혹시라도 이렇게 되어 면접 보러 들어갈까 봐 두려웠다. 완전 호러물각.
볼 때마다 호그와트가 생각나게 하는 앤트워프 대학 건물. 보기엔 예쁘지만 겨울에는 우풍 작렬. 느무 춥다
면접 보는 자리에는 총 4명이 있었다. 1명은 인사팀 직원이었고, 다른 세명은 도서관 실무자들이었다.
(면접언어: 네덜란드어)
유교녀씨?? 들어오세요. 저 자리에 앉으시면 됩니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지금 공립도서관에 근무 중이신데 하시는 업무는 무엇인가요?
저는 현재, 어린이 교육담당 사서로 어린이들의 독서활동에 도움이 될 만한 프로그램과 작가 강연들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작가 섭외와 정부의 보조금지원 요청도 하고 있고요.
공립도서관과 학술도서관의 성격은 많이 다른데, 학술 도서관 근무 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학술도서관은 취미생활로 하는 독서가 아닌 학술연구가 목적이기에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토대로 원하는 데이터를 추려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엄청난 정보가 가득하지만, 찾지 못한다면 아무런 쓸모가 없으니, 사서의 가장 큰 업무는 학생들을 잘 도와 원하는 데이터 재현율을 높여 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학술데이터뱅크는 구글처럼 작동하지 않으니까요.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데이터의 정확도를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앗싸, 아는 질문 나옴) 불리언 오퍼레이터들과 *, ?와 같은 와일드카드들의 사용으로 정확도를 보다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에게 데이터 재현율과 정밀률 관련수업도 해야 하는데, 여러 사람 앞에 서는 것이 본인 성격에 문제가 되진 않겠습니까?
도서관에서 어린이들에게 책을 읽어 주기도 하고, 여러 가지 체험활동들을 함께 하였습니다. 한국에서는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도 있습니다. 그리고 공공도서관에서 다양한 일을 경험하여, 사람들 앞에 서서 뭔가를 한다는 것은 전혀 걱정이 되지 않습니다. (상상초월하는 일이 매일 벌어지던 빈민가 도서관이 이렇게 고마워질 줄은 몰랐다.)
때로는 반납되는 책 들이 많아서 하루에 몇십 권 이상 책을 책장에 꽂아 놔야 하고 몸을 쓰는 일도 있는데 괜찮습니까?
공짜 피트니스인데, 그럼 더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몸을 움직인다는 게 얼마나 좋습니까!(캬, 몇십 권? 장난하십니까? 빈민가 도서관에서 하루에 500권도 넘게 정리해 봤는데... 500권 정리는 정말 삽질이었다.)
본인의 장점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저는 재미있는 사람이어서 팀의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해 줍니다. 팀원들이 제가 있으면 아마 정말 재미있어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있는 도서관에서도 제가 분위기 메이커이거든요! (방정맞음 특 A+++, 사서를 안 했으면 코미디언을 했을지도...)
오늘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소식 있길 바라겠습니다.
왔다. 느낌이 왔다. 느낌이 느으으으무 좋다. 왠지 엄마, 아빠가 재롱떠는 자식 보는 것 같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2주 후, 핸드폰이 울렸다.
안녕하세요? 앤트워프대학 인사담당자입니다. 합격소식 전해드리려고 전화했어요. 혹시 통화 가능하신가요?
아니, 안 가능해도 가능하게 해야죠! 허허.
40명의 경력직 지원자 중, 1등으로 합격하셨습니다. (훗, 엄마, 아빠 미소의 의미가 저것이었군.)
저 소리 한 번만 질러도 되나요? 핸드폰 잠깐만 귀에서 떼 주세요.으아아아아아아아, 너무 좋아요!!!
하하, 지원자님이 이렇게 기뻐하시니 저도 기분이 좋네요. 그럼 현재 직장과 잘 조율하셔서 출근날짜를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럼요, 그럼요. 감사합니다.
그 많고 많은, 40명의 벨기에 대졸자 경력직지원자들 중에 내가 1등으로 뽑혔다고?학교다닐 때에도 1등한 적 없었는데, 나이 다 차고나서 지구 반대편에서 1등의 타이틀을 한번 걸어보는구나..감개무량하다. 정말 감사 또 감사합니다! 새로운 직장에서는 더더더더더 열심히 일을 해야겠다 생각했다. 아직 출근도 안 한 직장에 충성심 뿜뿜!
앤트워프 대학채용은 시험을 보지 않았다. 시 공무원은 시험이 필수였지만, 이곳에서는 지원조건을 까다롭게 걸어놓았고, 채용하는 포지션이 사서라고 특정지어 있어서 인지 시험은 보지 않았다. 아기 안고 울며 대학원공부를 한 보람이 있었다. 그렇게 울며 공부를 했더니, 결국엔 이 학위를 써먹는 날이 오는구나!
물론 현재 직장을 그만둔다는 것이 너무너무 미안했고, 나를 구렁텅이에서 꺼내 올려 준 고마움에 이렇게 빨리 그만두는 것이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그래도 이렇게 수년을 고등학교 졸업장도 필요 없는 급수로, 현재 일하는 등급보다 한 단계 아래의 봉급을 받으며 일하다가 찾아온 기회인데 놓칠 수는 없었다.
미안한 마음에 쭈뼛쭈뼛 구립 도서관 동료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더니,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나의 가는 길을 큰 금액의 상품권과 함께 축복해 주었다. 그 상품권으로 산 우비는 4년 반이 지난 지금도 비 오늘날 동료들을 생각하며 자전거 출근 시 함께 하고 있다.
그렇게 나는 앤트워프시에 사직서를 던졌다. 네덜란드어도 못 해서 찌질했던 시절, 공무원 합격하고 나서 이어진공무원 부적격 판정, 외국인 관리청, 그리고 빈민가 도서관, 2년간 가스라이팅도 당하며 내 생애 쏟아본 적 없는 눈물 콧물을 다 쏟게 했던 지난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나는 셀 수도 없는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웬만한 힘듦에는 눈도 깜짝 안 할 경험치를 올렸다.
앤트워프 시공무원을 그만둔다니 80프로는 정말 속이 시원했고, 20프로는 아쉬운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섞여 있었다. 너무 힘들어서 원망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많이 때려줘서 퍽퍽 맞으며 맷집을 키운 것도 어찌 보면앤트워프 시 덕분이기도 했다. 시원섭섭하게 나는 작별을 고했다.
Good bye, City of Antwerp!
Stadhuis van Antwerpen, 저곳에서 처음 시공무원으로 임용이 되었을 때, 공무원 선서를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