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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요 Jan 10. 2024

아버님, 따님과의 교제를 허락해 주십시오.

요즘 초등학생 연애 이렇게 합니다.

아들이 줄넘기 학원에서 돌아오자마자 나를 급하게 부른다.

"엄마! 엄마!! 제 여자친구가 반지랑 과자 줬어요"

"뭐라고? 방학인데 어디서 만났어?"

"줄넘기 학원에 나왔어요"

"엥? 유진이 원래 다녔었어??"

"아뇨. 오늘부터 다닌데요"


(등장인물의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연애(?) 시작한 지 일주일도 안된 초등학생(4학년) 커플의 생생한 연애담을 듣는 엄마의 감정이란 그야말로 웃기고 슬프다. 자랑하는 아들의 표정에서도 창피함과 쑥스러움이 묻어난다. '초등학생들의 연애라 해봤자 별거 없겠지' 하는 마음이었는데 어라? 선물공세까지? 본격적이네? 싶은 생각이 든다. 딸내미의 연애후기는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들어왔는데 아들내미의 연애후기는 묘한 마음으로 새롭다.


"라온아.. 여자친구 공부 잘하니..?"

"네! 평균 90점? 95점은 받는 거 같아요"

"그런 애가 도대체 너를 왜...."

"아 엄마 왜 그래요~저도 평균 85점은 받는다구요~"


넉살 좋은 아들은 능글맞게 웃으며 대답한다. 나는 객관화가 매우 잘되는 사람이다. 객관화가 잘되기 때문에 아들에 대한 객관화도 굉장히 냉정하다. 아들은 아주 활발하다. 어느 정도로 활발하냐 하면 전학간지 얼마 안 된 상황에서 체육대회를 했는데 진행자가 "반에서 제일 잘 까부는 사람 나와~~~!" 하니 뒤도 안 돌아보고 맨 앞으로 달려 나가 무대를 씹어 먹었던 녀석이다.


좋게 말하면 활발하고 나쁘게 말하면 까분다. 전학 간 상황에서 친구들과 잘 어울릴지, 지방에서 올라왔다고 따돌림당하진 않을지(우리 때는 지방에서 전학 온 친구들은 따돌림을 당했었다) 잔뜩 걱정하고 간 1학기 상담에서 여담임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어머님 라온이는 적응이고 뭐고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곤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시며 "생각보다(까불어서 공부를 못한다고 생각하셨나 보다) 공부도 뒤처지지 않아요"라고 말씀하셨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그 말에 웃음이 터졌었다. 왜 항상 부끄러움은 나의 몫인가.    






딸은 빼어난 얼굴이 아닌데 이상하게도 첫사랑 재질인지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숱한 고백을 받았다. 2학년 때 학교에서 제일 잘생긴 남자아이에게 고백을 받아 교제를 시작했다. 사귄 지 1년 정도 되니 다른 남자애한테 이런 말을 들었다고 했다. "너 남자친구랑 헤어지고 나랑 사귀자!" 뭐야.. 얘네 드라마 찍니..? 그러더니 3학년때는 교제하던 남자 친구에게 본격적인 러브레터를 받아 왔다.


지온아 학교 끝나고 떡볶이 먹으러 가지 않을래?



구구절절 '널 위한 사랑고백'은 필요 없다. 떡볶이면 끝나는 것이다. 너무 귀여워서 "오늘은 떡볶이 먹었어~안 먹었어?"를 연신 물어봤었다. 안 먹었다 하면  떡볶이 사 먹으라고 용돈도 주었다. 실제로 딸내미 남자 친구의 어머님을 동네 분식집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인사하는 과정이 무척 뻘쭘했다.


"아.. 안녕하세요. 진성이 어머님이신가 봐요?"

"네네..? 누구신지..?"

"아.. 저 지온이 엄마예요"

"네~안녕하세요~"

(지온이가 누군지도 모르고 왜 인사하는지도 모르겠다는 표정이시길래)

"진성이가 지온이랑 사.. 사귀는 사이예요"

"네~~???? 너 여자친구 있었어?"


그 자리에서 아들에게 확인사살하신다. 이번에도 왜 부끄러움은 내 몫인가.. 그 이후에는 아이들의 교제를 인정(?)하고 주말 데이트도 같이 나가주었다는 훈훈한 결말이다. 물론 말만 사귀는 사이였지 카톡으로 개인적인 연락을 하거나 그러진 않았었고 전학을 감과 동시에 자연스레 끊겼다.  이성적인 감정이 미미해서 더 순수하고 귀엽게 바라보았는지 모르겠다.






"아버님, 따님과의 교제를 허락해 주세요.

제 아들이 이래 봬도 참 다정한 아이입니다."


아들의 여자 친구 아버님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아들내미가 이틀 전에 와서 말하길 비밀연애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반 학생들이 다 보는 곳에서 공개고백해서 연애를 시작한 걸로 알고 있는데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린가 싶다. 찬찬히 말을 들어보니 여자 친구의 아버님이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남자친구는 절대 허락할 수 없어!"라고 말을 하셨단다. 그래서 모두가 알지만 여자 친구의 부모님은 모르시는 연애를 시작했다고. 아이고야. 내 아들.. 부모님이 반대하는 연애길에 올라탔구나..!


 "아버님. 제 아들이 참 많이 까불긴 해도 정말 다정한 아이입니다. 매일 아침 눈 뜨자마자 엄마에게 와서 꼭 안아주는 걸로 하루를 시작하고요. 여자는 항상 사랑하고 보호해 줘야 하는 존재라고 세뇌교육도 시켜놓았습니다.


커서 여자친구, 부인한테 잘하는 법을 가르치려 누나, 엄마한테 물 떠다 주는 것도 훈련시켜 놓았어요.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예쁘다고 말하면서 걷다가도 까치발 서서 목에 뽀뽀해 주는 걸 받고 있자면 이 녀석이 사랑하는 법을 알아서 여자친구에게도 다정하게 할 거란 생각을 종종 했었습니다.

 

초등학생 연애 아직 별거 없어요. 그냥 지들끼리 문방구에서 산 맞지도 않는 반지 좀 주고받고, 편지 좀 주고받고 기껏해야 마라탕 먹으러 가는 정도예요. 제가 잘 단속시켜 놓겠습니다. 가끔 지 누나랑 주먹질하며 싸우기도 하는데 이것도 정신개조 시켜 놓겠습니다. 여자는 항시 아껴주어야 한다는 것을요.


그리고 사실.. 먼저 마음을 표현한 건 따님.... ..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저는 따님 만나서 떡볶이 한번 꼭 사주고 싶네요. 하지만 아버님이 반대하시니 허락하실 때까지 저도 떡볶이 사주고 싶은 마음 살포시 접어두도록 하겠습니다"



부치지도 못할 편지를 쓰고 있자니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기분이 든다. 아들은 내가 북 치고 장구 치면 옆에서 댄스신고식을 할 녀석이다. 외롭진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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