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혹한 말은 80년대생인 내가 학교에서 주로 듣던 말이지만 오늘은 학교가 아닌 집에서, 당하는 사람이 아닌 지시하는 사람으로 명한다. 바로 아들에게.
아들은 아무 말도 없이 엎드려뻗친다. 이 말은 즉슨 우리 집에선 이런 상황이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일이다. 상황을 자못 심각하게 말했지만 사실은 이렇다. 바닥에 던진 양말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으라는 명령을 3회 무시하고 티브이를 틀지 말라는 나의 말을 5회,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채 기어코 티브이를 튼 아들에게 내리는 경고이다. 이 녀석 혼쭐 좀 나봐라.
"하이 빅스비 5분 뒤로 알람 맞추어줘"
오늘 훈육시간은 5분이다. 아들은 면접준비를 하며 주절거리는 내 옆을 엎드려뻗친 채로 기어 다닌다. 이 녀석이? 조금 더 겁을 줘야겠군.
"너 이러면 괘씸죄가 추가돼"
내 말이 끝난 지 1초도 안되어 반박하는 아들.
"엄마는 예쁨죄가 추가되고요"
???????????
"야... 네가 그러면(수줍) 내가 널 혼내고 있는데 미안해지잖아"
"왜요. 사실인데요"
"응. 그래도 엎드려뻗쳐 5분은 해야 해"
누굴 닮아서 저렇게 능글맞은 지. 고대로 커서 여자친구한테 예쁜 말, 사랑스러운 말 많이 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저번에는 그릇에 고춧가루가 묻어있는 걸 보곤 "엄마 설거지가 이게 뭐죠? 위생관념이 빵점이에요. 얼굴만은 백점이고요"라고 말하는 아들. 애들 아빠는 생전 입에 발린 소리나 낯부끄러운 소리는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이상하다 싶다가도 역시 이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되었나 싶다.
나는 아이들과 연인 같은 대화와 행동을 굉장히 많이 하는데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가도 "너 지금 너무 사랑스럽다""잠깐만, 너 지금 너무 잘생겨서 사진 찍고 싶어 가만있어봐"라고 하질 않나. 길 가다 강아지가 예쁘다는 아이들의 말에 "무슨 소리야 네가 더 예뻐"하면서 옆구리를 쿡 찌르면 아이들은 별말씀을요 하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서로 예쁘고 사랑스럽다는 말을 잘해주지만 아들의 깜빡이 없는 애정공세는 언제 들어도 수줍고 부끄럽다가도 내심 기분이 좋아진다. 특히 엄마가 사랑스럽다는 아들의 말에 너 사랑스럽다는 말이 어떤 뜻인지 알아?라고 물었더니 "귀엽고 예쁘다는 말이잖아요. 엄마는 귀엽고 예쁘니까 사랑스러운 게 맞죠"라고 대답해 주는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을 데리고 있자니.. 이 녀석의 사춘기가 무서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