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5분혁신.디지털&AI]
[방구석5분혁신=안병민] 스마트폰 화면을 켜는 순간 우리는 홍수에 휩쓸린다. 끝없이 반복되는 숏폼 영상, 비슷한 멜로디의 노래, 어디서 본 듯한 이미지들이 알고리즘에 실려 쏟아진다. 클릭하면 재미는 잠깐이지만, 곧바로 공허함이 따라온다. 이른바 ‘AI 슬롭(AI Slop)’이다. ‘슬롭’은 가축에게 주는 음식 찌꺼기를 뜻한다. 질은 형편없지만 양만 많다는 의미다. 문제는 이런 AI 슬롭이 이미 콘텐츠 생태계를 압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창작자가 직면한 질문은 단순하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첫째, 속도의 전쟁에 뛰어들 것인가, 탈주할 것인가. AI는 24시간 멈추지 않고 콘텐츠를 쏟아낸다. 인간이 같은 경기장에 서는 순간 결과는 뻔하다. 선택지는 둘이다. AI와 함께 속도 경쟁에 뛰어들며 스스로 소모품이 될 것인가. 아니면 속도의 논리를 거부하고, 느림과 깊이를 무기로 다른 차원의 가치를 만들어낼 것인가.
둘째, 데이터를 활용할 것인가, 데이터가 될 것인가. AI 시대에 콘텐츠는 결국 학습 데이터로 흡수된다. 대부분의 창작물은 플랫폼에서 소비되고 바로 잊히지만, 어떤 창작자는 고유한 시선과 해석으로 AI가 학습해야 하는 ‘출처’가 된다. 단순 생산자가 아니라 데이터 자산의 주인이 되는 쪽만이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다.
셋째, 플랫폼의 종속자가 될 것인가, 생태계의 설계자가 될 것인가. 유튜브, 틱톡, 스포티파이 같은 플랫폼은 창작자를 철저히 알고리즘 안에 가둔다. 노출 경쟁과 가격 경쟁은 끝없는 소모전이다. 반대로 창작자가 플랫폼의 논리를 역이용해 독자적 생태계—직접 구독, 팬 커뮤니티, 폐쇄형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창작자는 더 이상 ‘공급자’가 아니라, 자신만의 생태계를 운영하는 설계자가 된다.
이 세 가지 선택은 단순한 기술 활용법이 아니라 존재 방식의 문제다. 창작자는 이제 “AI를 어떻게 활용할까”라는 질문을 넘어, “어떤 게임을 할 것인가, 어떤 존재로 남을 것인가”라는 근본적 물음과 마주한다.
그렇다면 콘텐츠의 미래는 어디로 향할까. 단기적으로는 AI 슬롭이 피드를 점령한다. 품질은 형편없지만 중독성 있는 영상과 음악이 소비자를 끌어당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AI가 무한히 찍어내는 소모성 콘텐츠의 바다. 다른 하나는 인간 창작자가 설계한 독창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생태계다. 전자는 즉각적 도파민을 자극하는 소비재이고, 후자는 장기적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동과 신뢰를 축적하는 자산이다.
결국 콘텐츠의 미래를 좌우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선택이다. 창작자가 속도와 양의 노예가 될 것인가, 아니면 도구를 지휘하며 새로운 질서를 세울 것인가.
AI 슬롭의 홍수는 거스를 수 없다. 그러나 그 물결에 휩쓸릴지, 새로운 물길을 설계할지는 창작자의 몫이다. 콘텐츠의 미래는 인간이 어디에 서느냐에 달려 있다. 이 질문은 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창작이란 결국 인간이 세계와 관계를 맺는 방식이라서다. 우리가 선택한 길이 곧, 인간이라는 존재가 남긴 흔적이 될 것이다. ⓒ혁신가이드안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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