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치유
-해원(解冤)을 중심으로-
아내가 마음공부에 열중한다. 교육 과정에서 ‘해원(解冤)’의 단계를 저녁마다 실천하고 있다. 마음속에 원한(怨恨)과 원통함을 푼다는 과정이다. 자기가 원통하고 분노(忿怒)가 치미는 일을 종이에 적고 그 내용을 마음으로 푸는 과정에서 눈물도 흘리고, 소리도 지르고, 그림도 그리는 모습이 정신 나간 사람의 모습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으로 걱정이 많이 된다. 흡사 사이비 종교 기도 모습이 간간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 작업이 끝나면 얼굴이 평온해지고 마음도 평온하다고 하면서 일상적인 사람으로 돌아온다. 마음공부가 중요할까? 마음은 실체가 없는데, 어찌 마음을 다스릴 수가 있단 말인가?
마음을 어떻게 정의하느냐를 동양 사상에서 살펴보자. 동양은 마음 다스리기가 가장 어려운 일이 주장한다. 바로 극기(克己)이다. 불교에서는 마음에 실체(相)가 없다고 주장한다. 실체는 없지만, 마음이 외물(外物)에 감응하는데 나쁜 쪽으로 감응하도록 하는 것이, 탐욕(貪), 성냄(嗔), 어리석음(痴)이라고 진단하고 이를 물리치기 위해 계율(戒), 마음 집중(定), 참 존재 알기(慧)를 근거로 참선을 통해 마음의 바른 모습을 깨닫게 한다. 마음이 일어나는 방법을 밝히고 본체에 이르는 방법으로 돈오(頓悟)와 점수(漸修)를 제시한다.
성리학에서는 마음을 본성으로 파악하고(性卽理), 마음(性)을 다스리는 격물치지(格物致知)와 존양성찰(存養省察)을 강조한다. 격(格)을 어떻게 적용하는가에 따라 성리학과 양명학으로 분리된다. 조선시대는 성리학 기반으로 이황과 기대승의 이기(理氣) 논쟁에서 마음을 집중적으로 분석한다. 이 논쟁이 이이(李耳)의 이통기국(理通氣局)으로 이어진다. 유교에서는 마음 본체의 존재보다는 마음의 작용이 더 중요시함을 볼 수 있다.
원한, 원통, 분노는 왜 생길까? 절대성이 아닌 상대성 때문이다.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면 원통함이나 분노가 적지만, 자유 의지를 상실한 가운데 타인에 의해 하는 행동은 대부분이 화가 많이 난다. 자유 의지가 전제되지 않은 타인에 의해 강제된 체험과 부정적 언어는 마음 깊숙이 남아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유지하면 우울증, 불안, 공황장애의 극단적 곤란을 겪을 수 있고 평상시에는 대인관계의 어려움, 일상적인 생활의 부적응이 초래된다.
원한과 분노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곳이 여자들 경우 시댁(媤宅)이다. 지금 젊은 세대는 좀 다를 수 있지만 나이가 좀 있는 여자분들은 시댁에서 당한 수모가 가슴에 상처로 남아있다. 시댁의 위엄 때문에 불평이나 불만을 토로하지 못하다가 시간이 좀 지나면서 마음의 상처가 불거지면 부부 싸움의 원인이 하나 생겨난다. 여기서 남편이 시댁 편이 되면 완전 남의 편이 되는 시초이다. 중년의 여자들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시댁 험담이 있고 ‘시’자 들어가는 음식도 먹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그렇게 불만 많은 시댁이면서 자신이 나이가 들면 시어머니가 되고 또 그런 일들이 반복된다. 관습이나 인연의 꼬리를 끊을 수 있어야 하는 이유다.
원한과 분노가 많이 쌓이는 장소가 직장이다. 직장에는 상하 관계가 형성된다. 좋은 관계로 성과를 높일 수 없다는 신념이 직장 상사의 마음이다. 직장 상사의 지시를 따르는 부하 직원은 능력 이상을 감내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분노가 쌓인다. 휴대 전화가 처음 생겨 말로 전화를 걸어주는 기능이 나왔을 때 지하철에서 반듯한 남자가 넥타이를 매고 전화기에 “개00” 한다. 전화 신호음이 가고 조금 있다가 반듯한 청년이 아주 예의 바르게 “과장님 00입니다”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이 눈이 휘둥그레진다. 실제로 목격한 사건이다. 전화기에 저장된 과장 이름도 ‘개00’이다 이 정도면 직장 상사가 아니라 거의 원수이다. 그러니 화가 쌓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원한과 분노가 쌓이는 원인으로 소통이 되지 않는 주변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직장 동료든 친구든 이웃이든 불통에서 오는 분노이다. 개인의 뜻에 따라 마음대로 인간관계를 조절할 수 있는 경우가 많지 않다. 미워도 같이 만나야 하고 좋은 관계라도 늘 함께 못하는 것이, 사람의 일이다. 주변 대화 상대 중 소통이 되지 않는 사람이 가까이 있으면 괴롭고 힘이 든다. 대화 기법을 못 배워 그럴 수도 있고 개인의 가치관이나 아집 때문에 대화가 서툴 수가 있다. 한가지 예를 들어 3명이 모여 불확실한 미래 사건에 대해 일어 날 수 있는 일에 각자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그러면 정답이 없기에 서로 들어주면 된다. 그런데 3명 중 1명은 자기주장으로 상대를 겁박하고 모질게 상대의 의견이 잘못되었다고 한다. 얼마나 무지한 행동인가? 미래는 현재를 기반으로 예측이야 하지만, 꼭 그렇게 된다는 보장이 없고 모든 것이 열려있기에 막말이나 자기의 강한 주장은 자제해야 하는 대화 기법이다.
원한이나 분노는 개인에 따라 다양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에 모든 상황을 나열하기 힘이 든다. 마음에 원한과 분노가 쌓여 있는 것은 방치하면 부작용이 많기에 마음 치유가 필요하다. 마음의 치유가 해원(解冤)이다. 현실적인 방법론을 제시 해 본다.
첫째 ‘수다’를 제시한다. 주변 사람들을 상담해 보면 해답은 본인이 가지고 있다. 누군가 자기를 인정해 주고 같은 편이 되어 주면 문제는 대부분 해결된다. 현대인은 수다를 떨 사람도 없고 수다를 떨 공간도 없다, 그래서 반려동물이나 식물에 매몰되어 있다. 우리 조상들이 빨래터나 우물가에서 힘든 생활을 토로하며 어려움을 이겨낸 조상의 빛난 지혜를 받들자. 소통이 잘 되는 사람과 차를 마시든, 술을 마시든, 사람으로 풀어 보자.
둘째 혼자 즐기는 방법으로 ‘글 멍’을 권하고 싶다. 명상이나 참선과는 또 다른 해결 방법이다. 명상이나 참선은 수련 방법에 이르기까지 많은 훈련이 필요하지만, ‘글 멍‘은 사상가나 주변 시(詩)에서 좋은 문장을 골라 자기 위로를 하면 분노는 사라질 것이다. 이것도 집착은 금물이다. 마음 챙김의 수준에서 해야 한다.
셋째는 취미생활이나 스포츠에 심취하는 방법이다. 취미나 스포츠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오래 진행하면 최고의 효과가 있지만 사람의 생각과 능력이 달라 자치 잘못하면 또 다른 분노가 유발된다. 취미생활은 혼자 할 수 있는 악기 다루기, 그림그리기, 서각, 서예 등이 있다. 신체 건강이 마음 건강이란 말 있듯이 스포츠는 필수이다. 자기가 힘이 있다고 생각하면 주변 상황에 분노를 덜 느끼기 때문이다. 이 방법 외에 다양한 마음 챙김이나 다스리는 방법이 개인적으로 많이 있음을 짐작해 본다. ‘해원상생(解冤相生)’을 통해 마음의 치유를 달성해 보자.
2024. 12. 19 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