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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지은 Dec 28. 2023

같은 열아홉, 그녀는 아이 셋의 엄마였다

같은 나이, 다른 문화


7월의 어느 더운 주말이었다. 팔레스타인은 휴일에 대부분 집에 있곤 한다. 문화적 특성이다. 길을 걷다가 차를 닦고 있는 한 아저씨를 길에서 만났다. 동양인이 신기해서였는지 현대를 좋아하는 아저씨의 한국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본인의 집에 초대해 주었다.


여행자를 초대해 대접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이 나라의 문화에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하며 우리는 초대받은 집에 공손히 들어갔다. 유치원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열댓 명 있었고, 성인의 여자 두세 명, 그리고 우리 룰 구경하러 온 동네 어르신들로 집안은 북적였다. 모두가 둘러앉은 거실에서 우리에게 차와 커피를 대접해 주셨다. 팔레스타인의 여러 집에 초대받아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느꼈던 건 남자와 여자의 신분 차이였다. 히잡을 쓴 성인 여자들은 우리에게 가까이 오지 않고 멀리서 우리를 지켜볼 뿐이었다. 이 나라의 암묵적인 룰인 듯했다. 집주인아저씨와 집안 남자들이 보통 우리와 함께 얘기를 하고 여자들은 부엌에서 요리를 하거나 집안 살림을 하기 바빴다.


현대화가 되면서 이전에 비해 많이 좋아진 가정들도 많았지만 이 집은 유독 남자들의 권위가 더 강한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아저씨가 나쁜 분은 아니었다. 다만 오래된 중동의 문화일 뿐.


부엌 한 편에서 우리의 커피를 준비하고 있는 어린 친구가 유독 내 눈에 들어왔다. 나와 비슷한 나이 또래로 보였는데 우는 아이를 달래며 커피를 타는 모습이 안타까워 그녀에게 슬쩍 다가갔다.


그녀의 부엌일을 도우며 어느 정도 일이 마무리되었을 때, 나는 그녀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녀는 나와 같은 열아홉 살이었고, 이미 어린아이 셋의 엄마였다. 막내를 달래며 첫째와 둘째를 케어하는 그녀의 모습이 훌륭하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녀는 그 집에 두 번째 부인이었다. 모든 가정이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아랍권의 여자들은 시집을 일찍 간다. 이슬람은 합법적으로 4명의 아내까지 둘 수 있어 두 명의 아내와 함께 사는 분들도 종종 볼 수 있었다. 집안에 돈이 없으면 딸을 어린 나이에 시집을 보낸다고도 했다. 결혼을 하면 남편 측에서 신부의 가정에 돈이나 큰 사례를 해야 하는 풍습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도 14살의 어린 나이에 시집을 와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었다. 그녀가 진심으로 멋있었다. 같은 나이지만 씩씩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대단했다. 그러나 한 편으로 어린 나이에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아이들을 돌보는 그녀의 공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언어의 한계를 넘어 마음으로 대화를 했다. 눈빛만으로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맘껏 여행할 수 있는 네가 너무 부러워”라고 했다. 괜스레 마음이 아팠다. 그녀와 눈을 마주 보며 나는 눈물을 흘렸다.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너는 앞으로 바라는 게 있어? 꿈이라던지 하고 싶은 거!”

그녀는 막막한 표정으로 “아니. 없어. 그저 아이들이 잘 자라주는 게 내 소원이야.” 그 말을 들은 나는 그녀를 아무 말 없이 안아주었다. 어린 나이에 가족 품을 떠나 아이를 낳아 키우며 얼마나 힘들었을까.. 내가 그녀의 마음을 다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그녀를 오랫동안 안고 있었던 이유는 그녀에게 조금의 위로와 희망이라도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 육아하고 집안일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중동은 아직도 여자들의 역할이 막중하다. 식사준비, 설거지, 빨래 등 온갖 집안일과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관리하는 것은 온통 여자들의 일이다. 그렇다 보니 어린 나이에 시집살이를 하는 친구들은 행복한 삶 아니 작은 꿈 하나도 꿈꾸기 힘들다. 이 친구를 보며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그녀와 같이 힘든 시집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 우리는 꿈을 꾸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는 행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너도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더 많은 친구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그런 사람이 꼭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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