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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매 Dec 20. 2024

아이가 자꾸 열까지 세라고 하네요.

열쇠 : 자물쇠를 잠그거나 여는 데 사용하는 물건, 문제해결의 중요 요소

  교직 생활의 마지막이 된 시골학교 교장으로 근무할 때의 일입니다. 유치원 아이들과 저학년 아이들은 만나기만 하면 일명 방방이(트램플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다녔습니다. 너무 많이 들어서 어떨 때는 아이들을 피해 다녀야 할 지경이었습니다. 다행이 상상놀이터 공모 사업에 선정되면서 아이들이 꿈에 그리던 방방이가 설치되었습니다.

  설치가 되고 나서는 안전사고에 대한 걱정과 우려가 늘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준공 검사를 마치고 사용 승인이 날 때 까지 약 한 달간의 기다림은 아이들을 더욱 힘들게 하였습니다. 아이들과 모여 안전하게 방방이를 이용하고 관리할 방법을 토의하였습니다.

  아이들은 안전 사고 예방을 위해 방방이의 출입문은 항상 잠궈 놓고,  이용할려면 담임 선생님과 함께 하여야 하며, 점심 시간에는 담임 선생님은 쉬어야 하니 교장선생님이 함께 있어주기로 하였습니다. 유치원 아이들이 점심시간에 방방이를 타겠다고 급식소 밖에서 창문 너머로 식사를 하고 있는 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주 간절한 눈빛으로......

  점심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급식소를 나오면서 유치원 아이에게 행정실에서 가서 "열쇠 달라고 해라." 라고 시켰습니다. 그런데, 유치원 아이는 안 오고 행정실장님이 오셔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습니다. 

  아이는 행정실 문을 열고 행정실장님 책상 앞에 가서 '교장선생님이 열까지 세라고 했다.'면서 여러 번 시켰다고 합니다. 이제서야 의문이 풀렸습니다. A는 '열쇠 달라'는 말을 '열까지 세어달라'로 받아들인 것이었습니다. 저는 A에게 열쇠를 설명해 주었더니, A는 되받아 대꾸를 하였습니다.  

  조기 영어교육의 위대한 힘(?)을 절감하였습니다. 그 다음부터 유치원 아이들에게는 맞춤형으로 방방이 출입문 '키(Key)를 달라고 하라.'고 주문을 해야만 했습니다. 문해력은 어렸을 때 부터 이렇게 흔들리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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