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띵띵 띠리리 띵띵 띠리리 띠리리리리 리리리리링’
익숙한 멜로디가 귓가를 어지럽힌다. 7시를 알리는 알람 음이다. 알람은 어서 일어나 해야 할 일을 하라고 재촉하지만 침대에 붙어버린 몸뚱이는 도통 일으켜 세워지지 않는다.
‘으~! 5분만, 딱 5분만!’
학교 가기 싫어 조르는 아이가 되어 스스로에게 말한다. 그리곤 채 다 뜨지 못한 눈으로 핸드폰 하단에 있는 5분 후 알람 버튼을 누르며 잠시나마 단잠에 다시 빠진다.
삽시간에 흐른 5분, 익숙한 알람 음이 다시 울린다. 평소 음악을 좋아하고 즐겨 듣는 나지만 알람 음은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은 선율이다.
‘으으!’
맘속으로 소리를 지르며 겨우겨우 천근만근인 몸뚱이를 일으켜 세운다. 하지만 일어나기 싫었음을, 늑장 부리고 싶었던 마음을 들켜서는 안 된다. 내겐 훈계해야 하는, 모범을 보여야 하는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알람을 끄며 내던졌던 핸드폰을 다시 집어 들어 신랑이 보낸 카톡을 확인한다.
‘일어났어? 나 회사 잘 도착했어.’
출근이 빨라 이미 회사인 신랑의 메시지를 보곤 무사히 출근했음에 안심하며 침대를 빠져나와 아이 방으로 향한다. 이내, 안방에서부터 소리쳤지만 아직 일어나 있지 않은 아이를 흔들어 깨운다.
“나래야, 얼른 일어나! 지각하고 싶어? 누굴 닮아서 이렇게 아침잠이 많아!”
나를 똑 닮아 잠이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치 나는 그렇지 않은데 너는 왜 그러냐는 양 잔소리를 한 바가지 퍼부으며 아침을 시작한다.
일어나는 순간부터, 아니 잠들기 전부터 고민하던 아침 메뉴를 또다시 고민하다 겨우겨우 아침밥을 차린다.
“아~! 아침 먹기 싫은데, 꼭 먹어야 해?”
“당연한 거 아냐? 아침밥 먹고 다니는 것도 행운인 줄 아세요!”
고민 끝에 차려준 아침밥이 먹기 싫다고 투정하는 아이에게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그랬다. 나도 늘 엄마와 아침이면 밥으로 실랑이하곤 했다. 잠도 제대로 깨지 않아 눈은 떠지지 않고, 밤새 물 한 모금 먹지 않아 입도 텁텁한데 엄만 자꾸 뭐라도 먹어야 한다며 무언갈 입에 넣어주셨다. 돌아보면 그런 엄마를 만난 건 행운이었는데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나도 엄마를 닮았는지 아이가 밥을 먹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말하며 꼭 조금이라도 아침밥을 먹여 학교에 보낸다. 밥이 마치 모래처럼 까끌까끌 거리고 목구멍에 오래 머물며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말이다.
그래도 늘 하는 아이와의 실랑이를 멈출 수는 없다. 난 아침밥을 특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한민국 엄마이기 때문이다.
‘참! 나도 약 먹어야지.’
아이와 실랑이를 하는 바람에 공복에 먹는 갑상선 약을 잊을 뻔했다. 나이가 들수록 몸이 점점 무거워졌지만 그저 기분 탓이라 생각하며 지냈다. 하지만 일상이 힘들 정도로 피곤하고 체중이 자꾸 늘어 병원에 가보니 갑상선에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기분 탓이 아니었다.
난 갑상선 기능저하증이란 판정을 받고 아침마다 공복에 갑상선 약을 먹는다. 내가 약을 꾸준히 먹게 될 줄이야. 매년 건강검진을 할 때 ‘평소 복용하시는 약이 있나요?’라는 질문지에 ‘아니오.’라고 기재하는 것이 당연할 줄 알았는데 이젠 ‘예’로 표시해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은 슬픈 현실이다.
아이가 클수록 나도 나이를 먹고 있었고, 늘어나는 군살과 잔병이 나이를 먹어 가고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또, 그게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세월이라는 걸 몸소 느끼고 있고.
아이를 준비시키고 밥도 먹이고, 준비가 끝난 아이가 옷은 예쁘게 입었는지, 행여 입이나 몸에서 냄새가 나는 건 아닌가 하며 온 신경을 곤두세워 확인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아이의 등교 시간이 다가온다. 지각한다며 얼른 나가라고 말하고 있지만 한 편으론 코앞까지 다가온 나만의 시간을 위해 재촉하고 있단 걸 나 자신은 알고 있다.
“딸, 잘 다녀와! 차 조심하고.”
일어나서 짓는 웃음 중 가장 큰 미소를 보이며 아이와 인사를 나눈다.
‘철컥, 띠리리!’
문 닫히는 소리와 함께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자유, 자유를 얻었기 때문이다. 해도 해도 티 안 나는 집안일이 기다리고 있지만 하루 종일 하는 것도, 시간의 제약을 받는 것도 아니기에 자유가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내 안의 행복들이 깨어난다.
‘우선 화장실 좀 갔다가!’
행복을 채우기 전에 비움 먼저.
평소처럼 주어진 시간에 행복감을 느끼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화장실로 향하던 때였다.
화장실 앞에 놓인 화장대 거울이 내게 말했다.
“어이, 아줌마!”
“아줌마라고? 나한테 그런 거야?”
결혼해서 아이도 있고, 나이도 40대에 접어들어 아줌마가 맞지만 평소에도 아줌마란 소린 듣고 싶지 않았다. 아직은 소녀 같은 감성 때문에 얼굴도, 몸도 아가씨인 양 착각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마구마구 화가 치밀었다.
“뭐! 아줌마라고? 이래 봬도 동안 소리 듣거든!”
마음의 내가 튀어나와 거울과 싸워보려 했지만 거울 속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거울의 단어 선택은 아주 적절했음을 깨달았다.
눈곱이 잔뜩 낀 눈과 추욱 처진 입꼬리 옆으로 짙어진 팔자 주름. 화룡점정 목이 잔뜩 늘어난 상의와 그 하단에 꽃 장식인 양 위장해 있는 떡진 밥풀까지.
‘휴…… 나도 정말 아줌마구나!’
젊은 시절 꿈 많던 어린 소녀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한땐,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뭐든 열정적으로 이뤄내며 의욕 넘치던 모습이었는데, 매무새도 늘 신경 썼는데……. 그 소녀는, 그 아가씨는 어디로 가고 이 아줌마는 누굴까?
평소와 같았던 일상의 시작 점에서 불현듯 현타라는 놈이 날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