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긴장을 풀어주는 마법의 문장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아들 픽업할 시간이다. 그전에 이것까지 하고 가면 좋은데 어서 마무리해야겠다. 맞다! 오늘 태권도 가는 날이지. 옷도 챙겨가야 하고 그전에 간식도 좀 먹고 가야 할 텐데.. 가는 길에 어디를 들러서 먹고 가야겠다."
미팅이 여러 개 있는 날은 정신이 없다. 보통 미팅이 2개 이상 있지는 않은데 오늘은 3개가 있었고, 또 시간이 모두 조금씩 늘어져서 제시간에 끝나질 않았다. 미팅이 끝나고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고 미팅 노트를 마무리하니 아들 픽업 시간이어서 서둘러 나갔다. 마음이 급하다 보니 머리가 산만한 채로 운전대를 잡고 운전을 하는 나를 발견했다. 입 밖으로 나도 모르게 "슬로우 슬로우 착착착"을 내뱉었다.
20대 초반 운전면허를 따고 운전을 하고 싶어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것을 아는 아빠가 그날 대리운전을 하라고 나를 홍대로 불렀다. 홍대에서 집까지는 차로 10-15분 정도의 거리이고 밤늦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차가 그리 많지도 않았다. 운전연습하기 딱 좋은 시간과 거리였다. 나는 신이 나서 홍대로 달려갔고, 아빠를 만났다. 아빠는 기분이 좋게 취해계셨고, 나에게 차 키를 건네주었다. 운전대를 잡고 들떠서 서두르고 있는 나를 보고 아빠가 이것저것 지시를 내리셨다. "먼저 사이드미러랑 백미러를 맞추고, 의자도 키에 잘 맞추고, 출발 전에는 깜빡이를 켜고!" 여러 가지를 옆에서 알려주시며 아빠는 처음엔 나보다 긴장한 것처럼 보였지만, 조금씩 편히 조수석에 앉으셔서 콧노래를 흥얼 거리셨다. 나도 조금씩 긴장을 늦추며 양화대교로 진입하고 있었다. 갑자기 옆 차선으로 뒤에서 오던 차가 쌩하니 나를 앞질러 지나갔다. 나도 모르게 긴장을 했고 긴장한 티가 나자 아빠는 옆에서 말씀하셨다. "슬로우 슬로우 착착착! 천천히 하면 돼" 아빠가 내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서 그냥 생각나는 대로 하신 말씀이었지만, 이 말은 내 뇌리에 깊게 남았다. 나도 "슬로우 슬로우 착착착!"이라고 아빠를 따라 말하며 면허를 따고 무사히 첫 운전을 마무리했다.
이제는 운전한지도 오래되었고, 운전은 아무 긴장 없이 할 수 있는 행위가 되었지만, 가끔씩 머리가 산만하고 복잡할 때 운전을 하면 정신 차려야지 하는 순간들이 있다. 그럴 때 "슬로우 슬로우 착착착" 은 마법처럼 나의 긴장을 풀어주고 운전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그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나를 20대 초반 양화대교를 건너던 때로 데려간다. 아빠가 어떻게 앉아 계셨는지 어떤 노래를 흥얼거렸는지 우리가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자세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가을의 어느 밤이었고, 강바람이 기분 좋게 불고 있었고, 나도 아빠도 기분이 좋았다는 것은 기억이 난다. 그 기억 때문인지 나는 이 문장이 좋다. 운전 중 긴장할 때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오지만, 말하고 나면 피식하고 웃게 된다. 이 말을 내가 아직도 하고 있네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