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 주는 기쁨, 받는 기쁨
엄마가 된 지 8년이 되어간다. 먼저 고백하자면 나와 남편은 아이를 낳을 생각을 점점 하지 않고 있었다. 유학 중에 아이를 낳은 다른 여러 가정을 봤을 때, 겉으로만 보기엔 너무 힘들어 보였다. 항상 생활고에 시달리는 거 같아 보였고, 시간이 없어 힘들고 바빠 보였다. 사실 이 모든 건 맞긴 하다. 우리도 아이가 생기고 사야 할 물건들이 갑자기 늘며 집은 좁아졌고, 비싼 어린이집 비용을 대느라 지출이 갑자기 늘었었다. 그리고 시간도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밤낮으로 해도 모자랐는데 하루에 3시간을 내기가 힘들었고, 잠도 당연히 부족해서 매일 피곤했다.
하지만 아이로 인해서 알게 된 여러 감정을 통해 삶을 다시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생겼다. 기쁨, 불안, 사랑, 충만, 행복, 걱정, 짜증, 분노. 모두 이전에도 알았던 감정이지만 그 감정의 폭이 훨씬 방대해졌고 상향평준화 되었다. 긍정적인 감정은 훨씬 커졌고, 부정적인 감정은 금방 용서가 되고 이해하는 마음이 생겼다.
미국은 어버이날 대신에 Mother's day와 Father's day 가 따로 있다. Mother's day는 5월 둘째 주 주말로 한국의 어버이날과 비슷한 날짜에 있다 보니 어버이날을 챙기듯 그날을 챙기게 된다. 올해 7살이 된 아들이 처음으로 자신의 돈으로 나에게 선물을 하나 사줬다. 이곳에서도 5월 5일이면 우리는 아들의 어린이날을 챙겨주는데 몇 주 전 어린이날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묻는 남편과 아들이 어린이날 계획을 세우다가 아들이 불쑥 Mother's day에 엄마 선물을 사주겠다는 말을 했다. 곰곰이 생각하다 아들이 마트 갈 때마다 사자고 했던 화정난이 기억나 그걸 사달라고 했다. (식물은 사면 잘 키우지 못해서 사자고 할 때마다 "다음에"라고 말하곤 했었다.)
지난 월요일 아들과 함께 마트를 갔다가 아들이 사준 화정난과 풍선을 받았다. 아들에겐 카드나 그림선물을 종종 받곤 했지만, 자신의 돈으로 산 물건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뿌듯함, 기쁨, 감동과 더불어 다른 무언가가 더 있지만, 처음 겪어보는 감정이라 아직 표현을 정확히 못 찾았다. 집에 와서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놓고 물 주는 법을 검색해 봤다. 이쁘게 핀 꽃이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
예전에 처음으로 취업을 하고 돈을 벌었을 때 월급날 엄마아빠께 용돈을 드렸었다. 그때 부모님은 뿌듯해하시는 듯한 얼굴을 하시며 "네가 벌써 돈을 버네"라는 말씀을 하셨었다.
용돈을 드린걸 까맣게 잊었을 어느 날 아빠의 지갑을 우연히 보게 되었었고, 그곳엔 내가 드린 용돈이 그대로 지갑에 있었다. 그 당시의 난 "이걸 아직도 안 썼어요?"라고 물어봤었고, 아빠는 "네가 처음으로 준 건데 그걸 어떻게 쓰냐?"는 말을 하셨었다.
그때도 막연하게 아빠의 감정을 이해했었다. 내가 처음으로 드린 거니까 의미가 있어서 그러시는구나라고 그 감정을 나도 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야 진짜로 알 것 같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이 감정을 그때 부모님도 느끼셨겠구나.
가족들의 생일이나 어버이날, 명절과 같은 날이 있으면 가족들에게 선물이나 돈을 주고받아왔다. 당연하게 서로 주고받아와서 주는 기쁨, 받는 기쁨에 대한 감정이 빠진 지 오래였다. 아들의 선물은 주는 기쁨, 받는 기쁨에 대한 생각을 다시 불러왔고, 특히 부모님이 자식들에게 선물을 받을 때는 그 감동의 느낌이 달랐겠구나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부랴부랴 한국에 계신 양가 부모님께 화정난 하나씩을 보냈고, 엄마와 어머님께 고맙다는 문자가 왔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고받으면 기분이 좋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기쁘다는 말도 많지만, 때에 따라 다르다는 걸 느꼈다. 자식한테는 주는 기쁨도 크지만, 받았을 때의 그 감동과 같은 이 감정도 말도 못 하게 크다. 이 감정을 나에게만 적용하지 말고, 앞으로 자주 부모님께 선물을 해야겠다. 카드도 보내고, 아이스크림 쿠폰도 보내고, 커피쿠폰도 보내며, 자주 이 감정을 느끼게 해 드려야겠다 (너무 작으면 못 느끼시려나?ㅎㅎ). 내가 마루에 놓인 화정란을 보며 미소 짓게 되듯이 깜짝 선물에 미소 짓게 해 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