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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야날자 Feb 21. 2024

눈사람 만들다 발견한 snowball effect

그래 계속하자! 

지난 주말 마트를 가기 위해 아들과 저녁 먹기 전에 잠시 나왔다. 지지난달에 이사 온 집은 걸어서 10분 거리에 마트가 있어서 무거운걸 살필요가 없으면 걸어서 마트를 다니고 있다. (결국은 꼭 많이 사서 무거워지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이전에 내가 살던 동네들은 마트는 무조건 차를 타고 가야만 하는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지금 걸어서 다닐 수 있는 이 상황이 참 좋다. 예전에 서울에 살 때는 너무 당연한 일상이었지만, 미국에서는 이렇게 걸어서 마트를 다닐 수 있는 곳은 정말 드물다.


지난주에 눈이 15센티정도 왔었고, 사람들이 걷지 않는 잔디밭쪽이나 양쪽으로 치워둔 눈들은 아직도 녹지 않고 길에 쌓여있었고, 아들은 신나서 눈으로 뛰어갔다. 아들은 조그마하게 눈덩이를 하나 만들더니 걸음을 옮기며 계속 한주먹씩 눈을 주우며 미리 만들어 놓은 눈덩이에 붙이며 걸어갔다. 지난주에 아빠랑 나가서 눈사람을 만들었고, 눈사람이 엄청 커서 윗부분의 눈덩이를 올리기 위해서는 아빠랑 둘이서 들어야 했는데, 얼마나 컸는지 둘이서 간신히 들었다며 계속 눈덩이에 다른 눈을 더하며 손으로 톡톡 두드렸다.


마트에서 간단히 장을 보고 나와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아들은 계속해서 눈을 뭉쳐갔다. 그러더니 잔디밭쪽에 치우지 않아 눈이 고스란히 쌓여있는 곳으로 들어가더니 자신이 만들던 눈덩이를 바닥에 놓고 굴리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눈덩이는 눈에 보이게 쑥쑥 커져갔다. 그전까지만 해도 아들이 들고 다닐 수 있는 사이즈여서 주의 깊게 보지 않았는데, 바닥에 놓고 굴리기 시작하자 조금씩 커지더니 나중에는 아들 혼자서 미는 것도 힘들 정도로 커졌다. 그렇게 커진 눈덩이는 이제는 바닥에 있는 대부분의 눈을 자신의 몸에 달라붙게 하며 사이즈를 키워갔다. 빨리 집에 가자고 재촉하던 나도 그걸 본 순간 아들 옆으로 가서 같이 눈을 굴리게 되었다. "와! 정말 snowball effect 네!"라는 말이 입 밖으로 절로 나왔다.


어린 시절 서울에서도 큰 눈이 몇 번 온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나도 눈이 오면 언니와 같이 뛰어나가서 눈싸움도 하고 썰매도 타면서 놀았었다. 그런데 한 번도 눈사람을 만들어본 적은 없다. 눈의 성질이 다른지 눈이 제대로 뭉쳐지지 않았어서였다. 작은 사이즈의 눈덩이는 만들 수 있었지만, 큰 눈덩이는 만들지 못해서 눈사람을 만드는 건 매번 실패하고 말았었다. 어른이 되어서는 추위에 약한 나는 눈이 오면 더더욱 집안에 머무는 걸 좋아하게 되어서 눈이 와서 아들이 나가자고 하면 뒤로 쓱 빠졌다. 아빠랑 나갔다 온 아들은 눈사람을 얼마나 크게 만들었는지 무용담을 나에게 전했었고, 듣기만 했을 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고만 생각했었는데 그렇게 쑥쑥 커지는 눈덩이를 처음 보고 나는 snow effect 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나는 뭔가를 시작하면 제법 꾸준히 잘하는 편이다. 하지만 종종 아무런 성과가 없어 보일 때면 "이거 이렇게 하는 거 맞는 거 맞아?", "나만 잘못하고 있는 거 아니야?", "이제 이건 그만하나?"라는 생각들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특히 기대감을 가지고 시작한 일들은 실망감이 더 쉽게 찾아오고 점점 그 일을 하는 것이 즐거운 것이 아니라 견디는 일이 되어버리고, 억지로 하게 되기도 한다. 끈기를 가지고 몇 년을 인내하며 기다려야 한다는 말들을 들으며, "그래, 난 아직 1년밖에 하지 않았는데.. 너무 빠르게 결과를 원했는지도 몰라." 라며 위안해 보지만, 3개월 만에 6개월 만에 했다는 다른 사람을 보면 그런 마음은 저 멀리 사라져 버린다.


요즘 나도 (요즘이라고 썼지만, 이런 생각을 안 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거 같다. 사실 맨날) "도대체 언제나는 저기까지 갈 수 있지?", "될 수 있는 게 맞나?"라는 생각을 한다. 아니면 "진작 좀 시작해 둘걸, 왜 아직까지 저걸 안 해왔을까?"라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아들이 만들던 눈덩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적당한 사이즈가 쌓일 때까지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한번 그렇게 커진 눈덩이는 엄청나게 커진다. snowball effect, 그리고 복리도 결국 같은 원리이지 않을까 싶다. 어느 시점까지는 내가 쏟아 넣는 자원과 에너지에 비해 결과는 너무나도 작고 보잘것없어 보인다. 하지만, 어느 시점을 딱 지나는 순간, 내가 쏟아 넣는 것보다 결과가 더 커지는 순간이 온다. 그리고 그 속도는 그때부터 눈에 보이게 커질 것이다. 그걸 보기 위해선 그 시점까지는 가봐야 하는 것이고 인내하고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며칠뒤 다시 마트를 가기 위해 아들과 나왔다. 지난번과 동일하게 아들은 계속해서 눈을 모으며 눈을 불려 가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엔 눈의 성질이 바뀐 건지 눈이 뭉쳐지지 않았다. 결국엔 눈덩이를 만들지 못하고 나에게 눈을 뿌리며 깔깔거리고 있었다. snowball effect 도 모든 상황에서 통하는 건 아니다. 무조건 계속한다고 되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눈덩이가 커질 수 있는 곳에서 굴러야지 무조건 구른다고 눈덩이가 커지는 건 아니듯이 우리가 하는 일도 계속할 때 결과를 볼 수도 있고 못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망하기보단 아들처럼 다른 방법으로 눈을 가지고 논다면 되지 않을까? 인생에 의미 없는 일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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