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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야날자 Apr 11. 2024

서울시 ㅇㅇ구 ㅇㅇ동 272-28

어린 시절 내가 살던 집, 현재도 엄마아빠의 집

대학생 때까지 우리 집(사실 부모님 집) 앞엔 지하철이 없었다. 하지만 교통의 요지였던 우리 집 앞은 서울시내 안 가는 곳이 없다 느낄 정도로 버스가 다양했다. 그렇다 보니 동네친구들과 어디를 갈 때 우리 집 앞에서 갈아타야 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우리 집 앞은 모임의 장소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아침잠이 많고 아침준비가 느린 나로서는 우리 집은 최적의 위치가 아닐 수 없었다.


교통은 편했지만 지하철역은 없었기 때문에 내가 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그 동네는 다른 주변에 역이 있던 동네보다는 발전이 느린 편이었다. 햄버거 가게라곤 롯데리아가 전부였고, 31개의 아이스크림을 파는 집과 몇 개의 개인이하는 커피숍만이 있었다. 하지만 한강도 걸어서 20분이면 갈 수 있고 집 앞에 큰 시장도 있던 그 동네를 나는 참 좋아했었다.


몇 년 후 지하철역이 들어오며 역세권이 된 그 동네는 빠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오래된 건물들은 개조해서 근사한 카페가 되거나 오피스텔 건물로 올라갔고, 유명한 프랜차이즈 음식점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몇 년 후 나는 미국으로 나와서 살았고, 그 동네의 변화는 한국으로 들어갈 때마다 보곤 했는데 갈 때마다 변해있는 동네를 보며 놀라곤 했다. 한국은 워낙 변화가 빠른 곳이니 어딜 가나 새로운 것이 생겨 있었지만, 역세권이 된 동네의 변화는 다른 지역보다 빠르게 변하는 것 같았다. 엄마아빠집 앞으로 30층 높이의 오피스텔이 들어서 시야가 반이 줄어든 집을 볼 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고, 집 앞에 스타벅스가 3개가 생긴 걸 보며 반기곤 했다.




나와 남편이 미국생활을 처음 시작한 곳은 작은 시골마을이었다. 그곳에서 오랫동안 생활을 했었고 도시가 아닌 시골 마을생활은 처음이었지만, 시골이 주는 안정감과 평안함을 처음 느끼며 나는 그곳 생활에 푹 빠졌었다. 아이가 생활하기도 너무 좋은 동네라 나는 다음번 이사를 가도 이런 동네로 가고 싶다고 남편에게 말하곤 했었다.


하지만, 자주 그렇듯 계획과는 다르게 우리는 큰 도시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것도 미국에서 가장 크다는 뉴욕 맨해튼 바로 옆으로 이사를 오게 된 것이었다. 이전에 살던 곳과 비교도 안되게 비싼 집값에 가슴을 쓸어내렸었고, 운전을 했다 하면 들어야 하는 경적 소리와 매번 막히는 도로를 운전해야 하니 피로감이 몰려왔다. (이전 시골마을에서는 아무런 과장 없이 1년에 경적소리를 한 번도 안 듣는 경우도 있었을 정도로 대부분이 양보운전을 했고, 1년에 2,3번 막혔는데 졸업식이거나, 학부생들이 기숙사로 이사를 들어오는 날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피로감도 잠시, 우리는 정말 빠르게 적응해 갔다. 오히려 마트가 가까워 한국처럼 걸어서 마트를 갈 수 있다는 것과, 편의시설이 주변에 많아서 갈 곳이 많다는 것과, 도시가 주는 다양함에 우리가 금방 묻히고 스며들 수 있다는 것에 금방 편안함을 느꼈다. 그리고 미국에서 여러 도시를 다녀봤지만, 서울과 같은 느낌을 주는 도시는 맨해튼밖에 없었다. 다른 도시들은 아무리 도시라고 해도 사이즈가 서울에 비해서 훨씬 작아서, "이게 다야? 도시라며?"라는 말을 우리도 모르게 내뱉게 되거나,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하지만 뉴욕 맨해튼은 사이즈도 크지만, 그 분위기가 서울과 흡사하기 때문에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나로서는 맨해튼만 가면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곤 했다. 




나이가 들어 고향으로 돌아가서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우리 아빠만 해도 그렇다. 아빠는 고향을 떠난 지 벌써 50년이 되었고, 고향에서 살았던 시간은 20년도 안되기에 지금 사시는 집과 동네가 아빠에게 더 오랜 시간을 보내고 살았던 곳이지만, 고향으로 가서 집 짓고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신다. (엄마의 반대로 실현 불가능하실 것 같지만...) 


나와 남편 아들은 주말마다 EBS에서 하는 '집'이라는 프로그램을 다 같이 본다. 자신들의 집을 짓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오는데, 어떻게 그 땅에, 그 집을 지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자신들의 집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집을 새로 짓고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보니 땅값이 비싼 도시보다는 지방에 집을 짓고 사는 모습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렇다 보니 도시생활을 접고 시골생활을 시작하며 마음의 안정감을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아니면 고향집으로 돌아가서 집을 다시 짓거나, 리모델링을 해서 고향에서 다시 생활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자주 나온다. 나의 아빠처럼 아무리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났어도, 다른 지역에서 훨씬 오랜 시간을 살았어도, 자신의 어릴 적 추억이 많은 고향에 대한 따뜻함을 품고 사는 사람들은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나에겐 엄마아빠의 집이 있는 그 동네가 그렇고 서울이 그렇다. 나중엔 나도 그 동네로 돌아가서 살고싶다. 


집도 지었으면 좋겠는데...... 서울이라니...... 역세권이라니...... 


사진: UnsplashCiaran O'Br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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