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떠나고 나서야 서울이 최고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 중이다.
마음 붙일 곳 하나 없는 낯선 도시에 여전히 적응하지 못했다. 아니, 사실 나는 어디에서든 빠르게 적응하는 편이라서 이곳 생활에도 금방 익숙해진 것 같다. 그러므로 적응하지 못했다는 표현보다는 정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더 적합하다.
겨울이 되어 해가 짧아지니깐 깜깜할 때 나가서 깜깜할 때 들어오느라 뻥 뚫린 바다를 볼 겨를도 없다. 적이 누군지도 모른 채 나 혼자 싸우고 버티는 전쟁 같은 이 지저분한 이혼 과정 때문인지,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일 때문인지, 철저하게 나 혼자라는 사실에 외로움을 느껴서인지 모르겠다. 마침내 나는 이 우울감을 환경탓하기로 마음먹었다.
여기가 서울이 아니라서 그래.
서울이었으면 안 이랬을 텐데.
언제부턴가 서울에 갈 때마다 익숙한 서울 톨게이트가 나타날 때면 굳게 긴장돼 있던 마음이 스르르 녹아드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자주 가던 양재천의 카페를 갈 때면, 한남대교를 건널 때마다, 강변북로를 달리며 오른쪽으로 여의도의 마천루를 스쳐 지나갈 때마다 서울을 향한 그리움과 서울을 괜히 떠났다는 후회가 커져만 갔다.
- 괜히 이사 왔어. 서울이 싫다는 건 내 착각이었어.
동생이며 친구들이 그제야 조심스레 내 말에 한 마디씩 보탠다.
- 그래 너만 모르고 있었어. 너는 뼛속까지 서울 사람이야. 니가 자연을 좋아하는 건 놀러 갈 때만 해당하지, 넌 절대로 시골에 못 살아.
- 맞아 나도 언니 후회할 줄 알았어. 근데 언닌 일단 부딪혀보는 성격이니깐 나 암말 안 하고 가만히 있었어.
첫 한 달, 두 달은 이 말을 들었을 때 괜히 발끈했다.
- 아니 내가 왜? 뭐라는 거야. 나 서울 싫어. 진짜 지긋지긋해.
하지만 내가 외국인도 아니고 이마에 서울 사람이라고 써붙이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아직까지도 회사에서 마트에서 식당에서 어딜 가나 처음 보는 사람들이 내 말투를 듣기도 전에 먼저 "서울에서 왔어요?" 묻는 건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쭉 나고 자란 회사 동료에게 물어봤다. 야근을 대충 마무리 짓고 소주 한 잔 들어가니 그동안 마음속에 쌓아뒀던 울화와 억울함이 터져 나왔다.
- 도대체 내 어디가 서울 사람 같다는 거야? 먼저 티 내는 것도 아닌데. 그 말을 계속 들으니깐 묘하게 먼저 선 긋는 것 같아서 찝찝해.
- 야 그거는, 여기 니처럼 입는 애가 어디 있나 둘러봐라. 딱 도시 여자처럼 입잖아. 넌 그 서울 중심지 아니면 백화점에 있을 것 같은 옷차림이야. 그리고 머리도 그렇고. 관리 잘 받는 도시 사람 같아. 아무튼 칭찬이다 칭찬.
순간 머릿속에 10년도 한참 전에 들었던 전공 수업이 스쳐 지나갔다. 피에르 부르디외의 구별 짓기. 이제야 슬슬 2030 젊은 여자들이 다 지방에서 못 살겠다고 서울로 뛰어 올라가서 지방에는 젊은 여자가 없다는 뉴스 기사가 틀린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제2의 도시라는 부산에서도 2030 여성의 비율이 불과 11%밖에 안 된다는 사실은 더 이상 남의 동네 옆집 뉴스가 아니라, 그만큼 나도 이곳에 적응하지 못해서 다시 서울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정말로 젊은이가 없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그렇다. 서울공화국이 당장 큰일 난 현실은 맞지만, 그전에 서울이 싫다고 제 발로 떠난 젊은이도 다시 결국 서울이 최고라고 돌아가는 건 아닐까 우려스럽다.
지금 여기서 내게 가장 필요한 건 또래 여자친구인데, 주위에는 또래 여자도 없고 있다 한들 애가 둘셋씩 있는 다른 세계 전업주부다.
서울이 싫다는 브런치북의 제목과 달리 점점 서울이 그리워져서 큰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