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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연주 Dec 02. 2024

말은 제주에 사람은 한양에 보내라는 옛말에 속지 말라.

사고방식이 딱딱해지지 않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애쓴다.

자정이 훌쩍 넘은 오전 12시 40분 어느 퇴근길에 나를 위로해 줬던 노래



회사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묻는 말은,


"결혼하셨어요?"

"실례지만 나이가..? 아니 결혼 왜 안 하셨어요?"이다.


이 글을 읽는 서울 및 경기 수도권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고, 그거 좀 물어볼 수도 있지 뭐가 문제냐는 사람들은 아마도 내가 살고 있는 지역 혹은 그와 유사한 환경에서 왔을 것이라고 감히 자신한다.




처음에는 이 회사만의 특징이라고 생각했으나 아침 출근길 택시 기사님도 물어보고, 동네 슈퍼 아줌마도 물어본다. 차라리 몇 살이냐고 물어봐줬으면 좋겠는데 나이보다 먼저 튀어나오는 게 결혼했냐는 질문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봤으나 아무리 고민해 봐도 이곳 삶의 방식이 어느 정도 틀에 박혀서 그렇다는 게 가장 유력하다. 한 마디로 도시 전체가 답정너.


응당 20대 후반이면 당연히 결혼해서 이미 애 하나쯤은 있어야 되지. 암 그렇고 말고. 가뜩이나 저출산 국가라서 큰일인데 요즘 도시 젊은이들은 다 이기적이라서 큰일이야 큰일! 속으로 생각해 줬으면 좋겠지만 앞에서 대놓고 혀를 끌끌 차는 사람들.


뭐가 맞고 틀린 지 논하고 싶지 않다. 다만 나한테는 당연한 질문이 누군가에겐 뜬금없을 수 있다는 사실. 예를 들어서 남자친구/여자친구 있냐는 질문부터 아버지 뭐 하시냐는 질문, 성과급 받은 걸로 뭐 살건지 혹은 어디 놀러 갈 거냐는 질문까지. 애인이 동성일 수도 있고,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거나 누군지도 모를 수도 있다. 보너스가 들어오면 빚 갚느라 자기를 위해 쓸 여유가 없을 수도 있다.




어느새 12월이 되었다. 지난 11월은 n년의 회사 생활 중에 특히 가장 바쁜 시간이었을 만큼 일에 혹사당해서 시간을 도둑맞았다. 문제 해결 과정에서 오는 성취감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일을 꽤 좋아한다고 말하는 편인데, 지난달은 내가 일하는 게 아니라 일이 나를 했다. 주도권을 갖지 못하고 일에 질질 끌려가면서 갈리고 또 갈리는 상황. 엄밀히 말하자면 순간순간의 기분을 알아차릴 새도 없이 일-집-일-집이었다. 1주일에 3일은 8시에 출근해서 24시가 지나 다음날 퇴근했다는 사실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


어쨌든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의사결정하는 과정과 그걸 소통하는 대화방식, 사소한 말 한마디에서 나는 이곳이 서울과 다름을 온몸으로 느꼈다. 한 마디로 '틀에 박힌' 사고방식. '왜'라는 단어를 지우면 꽤 살기 편한 환경. 그것은 서울에서 내가 쌓아왔던 커리어의 정반대였다.


Start with WHY

과거 내가 거쳐온 조직들은 항상 '왜?'를 달고 살았다. 왜 그래야 되는데? 더 나은 방법은 없을까? 왜 이렇게 하는 게 최선일까? 과연 그럴까? 왜 그래야 되는데? 이게 왜 필요한데? (컨설팅 업계 아님)


하지만 크고 오래된 회사일수록 혁신보다는 완벽한 관리가 가능하도록 이미 잘 짜인 구조와 체계가 있다. 현 직장이 바로 여기에 속한다.




매일 같은 야근에 주말이면 몸살 나서 쓰러져 자고 코피도 나서 아빠한테 징징거렸다.

"아빠! 옛말에 말은 제주에, 사람은 서울에 보내라는 말이 다 맞아. 옛날 말 틀린 거 하나 없어. 다 때려치우고 당장 서울 가고 싶어."


서울토박이 아빠는 내 말에 긍정도 부정도 아닌 'ㅠㅠ' 이모티콘을 하나 보냈다. 대신 잘하는 사람은 어디서도 잘한다는 말을 해줬다. 지금 퇴사하고 서울 올라오면 커리어 꼬인다고. 조금만 더 버텨서 이기라고. 고비를 잘 넘기는 방법을 배우는 중일 거라고.




분명 서울이 지긋지긋하고 역겨웠던 적도 있다. 그래 서울이든 여기든 장소와 환경의 문제가 아니다. 나를 둘러싼 관계 그리고 그걸 받아들이는 내 태도가 모든 걸 결정한다.


이곳에 익숙해지지 말자.

항상 깨어있자.

밖은 춥고 굳은 머리로는 어딜 가도 살아남을 수 없다.

서울이든 제주든 미국이든 유럽이든 어디서나 빛나자.



Good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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