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방식이 딱딱해지지 않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애쓴다.
회사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묻는 말은,
"실례지만 나이가..? 아니 결혼 왜 안 하셨어요?"이다.
이 글을 읽는 서울 및 경기 수도권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고, 그거 좀 물어볼 수도 있지 뭐가 문제냐는 사람들은 아마도 내가 살고 있는 지역 혹은 그와 유사한 환경에서 왔을 것이라고 감히 자신한다.
처음에는 이 회사만의 특징이라고 생각했으나 아침 출근길 택시 기사님도 물어보고, 동네 슈퍼 아줌마도 물어본다. 차라리 몇 살이냐고 물어봐줬으면 좋겠는데 나이보다 먼저 튀어나오는 게 결혼했냐는 질문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봤으나 아무리 고민해 봐도 이곳 삶의 방식이 어느 정도 틀에 박혀서 그렇다는 게 가장 유력하다. 한 마디로 도시 전체가 답정너.
응당 20대 후반이면 당연히 결혼해서 이미 애 하나쯤은 있어야 되지. 암 그렇고 말고. 가뜩이나 저출산 국가라서 큰일인데 요즘 도시 젊은이들은 다 이기적이라서 큰일이야 큰일! 속으로 생각해 줬으면 좋겠지만 앞에서 대놓고 혀를 끌끌 차는 사람들.
뭐가 맞고 틀린 지 논하고 싶지 않다. 다만 나한테는 당연한 질문이 누군가에겐 뜬금없을 수 있다는 사실. 예를 들어서 남자친구/여자친구 있냐는 질문부터 아버지 뭐 하시냐는 질문, 성과급 받은 걸로 뭐 살건지 혹은 어디 놀러 갈 거냐는 질문까지. 애인이 동성일 수도 있고,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거나 누군지도 모를 수도 있다. 보너스가 들어오면 빚 갚느라 자기를 위해 쓸 여유가 없을 수도 있다.
어느새 12월이 되었다. 지난 11월은 n년의 회사 생활 중에 특히 가장 바쁜 시간이었을 만큼 일에 혹사당해서 시간을 도둑맞았다. 문제 해결 과정에서 오는 성취감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일을 꽤 좋아한다고 말하는 편인데, 지난달은 내가 일하는 게 아니라 일이 나를 했다. 주도권을 갖지 못하고 일에 질질 끌려가면서 갈리고 또 갈리는 상황. 엄밀히 말하자면 순간순간의 기분을 알아차릴 새도 없이 일-집-일-집이었다. 1주일에 3일은 8시에 출근해서 24시가 지나 다음날 퇴근했다는 사실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
어쨌든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의사결정하는 과정과 그걸 소통하는 대화방식, 사소한 말 한마디에서 나는 이곳이 서울과 다름을 온몸으로 느꼈다. 한 마디로 '틀에 박힌' 사고방식. '왜'라는 단어를 지우면 꽤 살기 편한 환경. 그것은 서울에서 내가 쌓아왔던 커리어의 정반대였다.
Start with WHY
과거 내가 거쳐온 조직들은 항상 '왜?'를 달고 살았다. 왜 그래야 되는데? 더 나은 방법은 없을까? 왜 이렇게 하는 게 최선일까? 과연 그럴까? 왜 그래야 되는데? 이게 왜 필요한데? (컨설팅 업계 아님)
하지만 크고 오래된 회사일수록 혁신보다는 완벽한 관리가 가능하도록 이미 잘 짜인 구조와 체계가 있다. 현 직장이 바로 여기에 속한다.
매일 같은 야근에 주말이면 몸살 나서 쓰러져 자고 코피도 나서 아빠한테 징징거렸다.
"아빠! 옛말에 말은 제주에, 사람은 서울에 보내라는 말이 다 맞아. 옛날 말 틀린 거 하나 없어. 다 때려치우고 당장 서울 가고 싶어."
서울토박이 아빠는 내 말에 긍정도 부정도 아닌 'ㅠㅠ' 이모티콘을 하나 보냈다. 대신 잘하는 사람은 어디서도 잘한다는 말을 해줬다. 지금 퇴사하고 서울 올라오면 커리어 꼬인다고. 조금만 더 버텨서 이기라고. 고비를 잘 넘기는 방법을 배우는 중일 거라고.
분명 서울이 지긋지긋하고 역겨웠던 적도 있다. 그래 서울이든 여기든 장소와 환경의 문제가 아니다. 나를 둘러싼 관계 그리고 그걸 받아들이는 내 태도가 모든 걸 결정한다.
이곳에 익숙해지지 말자.
항상 깨어있자.
밖은 춥고 굳은 머리로는 어딜 가도 살아남을 수 없다.
서울이든 제주든 미국이든 유럽이든 어디서나 빛나자.
Good n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