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도시 속초
시끄러운 소음, 현란한 간판, 어제와 똑같은 일상...
바쁘게 흘러가는 도시생활에 지친 현대인들이라면 아주 잠깐이라도 한 번쯤은 귀촌을 떠올려 봤을 것이다.
우리 부부의 이야기다. 각자의 커리어에서 나름 인정받으며 자리 잡아 모든 면에서 부족함은 없었지만, 왜인지 마음 한편이 늘 공허했다. 왜였을까?
오래전부터 나에게는 전원생활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할머니댁조차 서울 도시인 전형적인 서울 토박이 출신이지만 박완서 선생님의「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책에 나오는 마당에 핀 애정 어린 꽃나무들을 상상하면서, 대학시절 다녀온 캄보디아 봉사활동에서 풍족하지 않아도 자연이 주는 선물의 그저 행복한 사람들을 보면서, 언제가 나도 해가 뜨면 눈을 뜨고, 해가 지면 잠을 자는 자연의 시계에 맞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5년 전 가을, 남편과 "왜 나중이어야 해? 지금 하면 안 될까?"라는 이야기를 했고 그렇게 그래서 우리는 시골행을 결심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오늘이 가장 소중하니까. 나중은 없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사실 말이 시골이지 우리가 선택한 지역은 어찌 보면 또 완전 시골은 아니다.
우리 부부가 수많은 지방도시 중에 '속초"를 선택한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신혼생활을 시작한 분당에서 주말이면 드라이브 여행을 자주 다녔는데 제일 좋아서 자주 왔던 곳이 속초였다.
첫째. 앞에는 설악산이 있고, 뒤를 돌면 동해바다가 있고, 그 사이에는 유리처럼 맑은 영랑호가 있어 어디를 둘러봐도 지겹지가 않았다.
둘째. 2018 평창동계올림픽 덕분인지 도로가 잘 되어있어 서울까지 왕복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 평일 강남까지 최단시간 약 2시간 ) 또한 2027년 KTX도 개통될 예정이라, 지방이라 해도 모든 연고가 서울에 있는 우리로서 교통의 불편함이 없다.
셋째. 강원도 음식이 우리 부부와 잘 맞는다.
젓갈조차 비린 음식은 손도 못 되는 서울촌놈부부인데도, 강원도 음식은 비리지 않고 오히려 칼칼해 매우 맛있다.
자동차를 타고 속초 지역을 크게 한 바퀴 돌면 2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인구수는 주변 지역인 고성, 양양에 비하면 꽤 높은 편으로 ( 2024년 4월 기준 인구수 : 고성ㆍ양양 인구 약 2만, 속초 약 8만 명) 비록 땅은 제일 작지만 인구가 밀집되어 있어 이 모습은 참 서울을 닮아있다.
그래서일까? 새로 생기고 없어지는 상가들이 많아 변화가 꽤 빠른 느낌이다.
속초의 골목을 걷다 새로 생긴 카페나 식당에 가보면 생각보다 젊은 부부를 많이 볼 수 있는데, 젊은이가 많은 것 같으면서도 일손이 부족한 탓인지 늘 부부가 함께 일한다는 것도 재미있는 사실이다.
우리 부부는 이곳에 내려와 생활수단으로 공방을 시작했다. 우리도 부부가 함께 일을 한다. 그리고 아무런 연고가 없던 이 곳에서 서울ㆍ수도권에서 내려온 젊은 부부들과 나름의 친목 모임이 생겼다.
이 모임에는 노후 준비의 일환으로 주중에는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다 주말에만 속초에서 PUB을 운영하는 부부도 있고, 우리처럼 조금 여유롭게 일상을 살고 싶어 내려와 식당을 시작한 신혼부부도 있고, 아이를 작은 학교에 보내고 싶어 내려왔는데 살다 보니 너무 좋아서 일가친척이 다 내려와 아예 속초 토박이가 되어버린 가족도 있다.
그만큼 속초는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마치 자연의 품처럼 새로운 이웃을 품어준다. 이는 다양성을 포용하는 MZ세대와도 닮아있다.
이것이 내가 속초를 젊은 도시로 생각하는 이유다.
속초가 고향인 한 어르신의 말을 말에 따르면 속초는 오래전부터 피난민의 역사가 있어 그런지 외지인에게 관대하다고 한다. 또한 오래전부터 관광산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텃새라는 게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이 말을 몸소 느낀 것이 속초 정착을 위해 공방을 계약하던 날, 속초 토박이인 공방가게 사장님 부부가 젊은 사람들이 이곳까지 내려와 고맙다고 바다가 보이는 횟집에서 싱싱한 회를 사주셨다. ( 맛있는 거 사주는 사람 = 좋은 사람 )
강원도에 대표도시인 강릉보다 속초를 권하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다.
강릉은 나름의 양반도시로 학연과 지연이 아직도 끈끈한 지역 중의 하나다. 강릉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속초에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에 말에 의하면 강릉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강릉 토박이라고 하면 꼭 어느 학교 출신인지 묻는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이 알게 모르게 텃새로 이어진다는 지인의 증언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잊고 있었던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고등학생 시절, 방송반 활동을 했는데 방송반 선생님이 강릉고등학교 출신이었다. 그리고 선배언니 한 명이 고등학생이 되어 강릉에서 서울로 전학을 왔는데 방송반 선생님은 늘 이 선배를 볼 때마다 "서울 애들은 깍쟁이다. 강릉이 최고다"라는 농담을 하셨다.
이 때는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이야기였는데 이런 배경이 있었나 보다.
이러한 이유로 귀촌을 꿈꾸는 당신에게 나는 다른 어떤 도시보다도 속초에 먼저 살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속초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고, 당신을 받아줄 준비가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