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뽀를 했어야 할까?
“예뻐” 할아버지는 날 볼 때마다 그렇게 말씀하셨다.
내과 병동에서 일할 때였다. 치매 걸린 할아버지 환자분이셨는데, 날 볼 때마다 누굴 생각하시는 건지, “예뻐”라고 웃으시면서 말씀하셨다.
나는 주사를 놓고 “할아버지 불편하시면 말씀하세요~” 일어서는 날 붙잡고 할아버지는 “뽀뽀”하면서 입술을 쭉 내밀었다.
처음엔 당황스럽고 불쾌했다. 할아버지가 치매니까 이해해야지 싶었지만, 매번 할아버지가 그러시니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친정 엄마에게 안부전화를 했다가 치매 걸리신 할아버지가 매일 나한테 뽀뽀해달라고 그러신다고 말씀드렸다.
. 처음엔 엄마도 당황하셨지만 농담으로 “ 곧 하늘나라 가실 분인데 소원 한번 들어 드려!! ”
나는 “됐거든!”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엄마도 워낙 병원에서 내가 별일을 다 겪으니 이제는 강심장이 된 건지 가끔 저런 반응을 보이셔서 내가 괜한 말을 했구나 싶기도 하지만 뭐 엄마도 좀 속상하겠다 싶기도 해.
할아버지는 항상 “예뻐”“뽀뽀” 이 두 마디만 나에게 하셨다. 항상 웃는 모습으로 말이다. 억지로 만지거나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바라만 보고 “예뻐” 이렇게 말로만 하셨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할아버지가 무섭거나 징그럽지 않았다. 가끔 할아버지는 나와는 다른 어떤 시간 속에 있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 내가 누구예요?” “꽃순이” 엥? 그다음 날에도 똑같이 물었더니 나는 “꽃순이”였다. “그리고 나 할아버지 아니야. 꽃순이 삐졌어?”
할아버지의 첫사랑이 꽃순이인가? 할아버지가 치매증상이 심했지만, 거동은 잘하실 수 없어서 거의 침대에 누워 계셨다. 할아버지는 자기 세상에서는 아직도 젊은 청년인 듯했다.
어느 날 할아버지 팔에 주사를 놓고 주변을 정리하고 일어나려는데 할아버지가 내 손에 사탕을 2개 쥐어주셨다 “꽃분이 혼자 다 먹어야 해!” 할아버지는 웃으셨다.
난 할아버지에게 “네! 저 혼자 다 먹을게요” 했더니 할아버지는 함박웃음을 지으셨다. 어느 날부턴가 할아버지는 잠만 주무시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꽃분이 왔어요~”라고 하면 잠시 눈을 뜨고 웃으시곤 다시 잠드셨다. 할아버지 기력이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얼마뒤 병실문을 열고 들어섰는데, 할아버지가 앉아 계셨다 “할아버지? 웬일이세요? 오늘은 앉아 계시고??” 할아버지는 날 바라보시더니 “그동안 고마웠어” 오늘은 뽀뽀해 달라는 말씀은 안 하시고 내 손을 잡고 고맙다는 말씀만 하셨다” 오늘은 웬일이세요? 뽀뽀해 달라고 안 하시고? “ 할아버지는 웃으셨다. 난 불편하면 콜벨 누르시라고 말씀드리고 자리를 떠났다.
할아버지의 콜벨은 울리지 않았다.
다음날 출근 해서 수액 확인 하러 할아버지 방에 갔는데,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침상에 걸려 있는 이름표가 없어졌다. 할아버지가 전실하셨나? 찾아다녔지만 할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컴퓨터에서 할아버지 이름을 찾았다. 할아버지는 퇴실 목록에 있었고, 차트를 열어 보니 밤사이에 돌아가셨다.
나는 나이트번 간호사에게 할아버지 어떻게 되었는지 물었다,. ” 할아버지 어젯밤에 조용히 돌아가셨어요. 평화롭게” 갑자기 마음이 휑해졌다. 눈물이 났지만, 참았다. 할아버지는 꽃분이를 만났을까?
길에서 파는 눈깔사탕 중에 할아버지가 준 그 사탕과 닮아 있는 사탕을 볼 때마다 나는 잠시 꽃순이가 되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