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태기에 빠진 내가 축구를 시작한 기적의 서막
매주 일요일 오후, 우리 집엔 반복되는 의식이 있다.
두 남자가 축구화 끈을 묶으며 출격 준비를 하고,
나는 소파 위에 앉다 못해 누워 느슨하게 팔짱을 낀 채 그 둘을 바라보며 말한다.
“다녀와~”
디폴트 된 설정처럼 툭 튀어나온다.
나의 주말 오후는 그랬다.
아니, 그랬었다.(과거형)
.
처음엔 참 좋았다.
늘어지게 늦잠을 잔 뒤 나밖에 없는 조용한 집.
캡슐커피를 한잔 내려 소파에 앉아 속으로 읊조린다.
‘그래, 이게 바로 직장인의 여유지.’
근데, 그게 그렇게 오래가진 않았다.
고요한 공허.
티브이를 틀어놓아도 집중이 안 됐고, 핸드폰을 들었다 놨다, 인스타를 열었다가 다시 닫고,
마치 식은 라면 국물 마시듯 멍하게 시간을 삼키기만 했다.
.
그 무렵, 우리 아이가 2학년이 되었다.
세상 모든 2학년이 그런 건지, 우리 집 아이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1학년 때와는 뭔가가 달라졌다.
“엄마, 내가 알아서 할게요.”
“엄마는 안 해도 돼.”
(어… 뭐야…? 나, 안 해도 돼…? 그럼… 난 뭘 해야 돼…?)
처음엔 ‘와, 자립심이 자랐구나!’ 하며 혼자 감동했는데,
몇 번을 듣고 나니 서운한 마음이 커졌다.
심지어 약간 울컥할 때도 있었다.
전엔 뭐든 “엄마랑~” 하던 애가
요샌 내가 뭘 물어보기도 전에 “괜찮아”라고 미리 자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
‘이러다 아빠랑만 친해지고, 나는 투명 인간 되는 거 아냐?’
걱정이 됐다.
축구를 같이 하고 돌아온 두 남자의 세계는 점점 단단해졌고,
나는 그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어느 날 '나도 같이 가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그 말 끝에 달려온 생각들...
‘근데 내가 가서 뭘 하지…? 공을 차 보긴 했니…?’
‘거기서 나 혼자 서 있으면 집에 있으니만 못할 것 같은데?…’
그렇게 몇 번을 혼자 생각하고 웃고 넘기곤 했다.
그런 날들이 몇 번 더 쌓이고 나서야
내 안의 엔진이 살짝 웅웅거렸다.
‘우리 세 식구가 같이 할 수 있는 거 없을까?’
그 질문이 오래 머물렀다.
그리고 어느 일요일 운동화를 신고 현관문을 나가는 두 남자에게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축구 같이 가자!”
거짓말처럼, 우리 집 남자 둘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남편은 ‘어라?’ 하는 표정.
아들은 눈이 커졌다가 입꼬리가 올라갔다.
“진짜? 엄마가 축구를…?”
그 말투는 반은 놀람, 반은 기대.
그리고 그 순간, 나도 나한테 웃겼다.
('피구도 못하는데, 네가 축구를 하겠다고?')
왜냐, 나는 찐 ‘몸치’니까.
몸으로 하는 건 다 느리고, 이상하게 어설프고,
체육시간에 하던 피구는 항상 맨 먼저 공에 맞고 나오는... 공과는 전혀 거리가 먼 인간.
.
그런 내가 축구를 한다고 말했다.
근데 신기하게도, 부끄럽지 않았다.
왜냐면 ‘잘하려고’ 한 게 아니니까.
그저 ‘가족과 함께 하고 싶어서’ 시작한 거였으니까.
그리고,
그 결심 후 러닝화를 신고 처음으로 나간 운동장에서
나는 당당하게 첫 헛발질을 시작했다.
그 공은 내 발을 떠나 어디론가 굴러갔고,
나는 뒤늦게 따라가며,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그. 런. 데
이게 말이 되나 싶은데
그런 내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기분이 좋아졌다.
아들과 눈이 마주쳤고,
그 눈 속에 '엄마랑 같이 하고 있다'는 기쁨이 반짝였다.
어이없게도, 운동장에서 웃고 있었다.
.
그렇게 두 달 전.
내 인생 처음으로 공이라는 걸 발로 차 봤다.
그렇게 축구(풋살)를 시작했다.
좀 늘었냐고? no! no!
지금도 여전히 못한다.
패스는 커녕 멈춰있는 공에도 헛발질을 한다.
아직도 날아오는 공이 무섭고, 방향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젠 소파 위의 관찰자가 아니라,
운동장 한쪽에서 축구화를 신고 선 사람이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엄마도 있고,
영양교사도 있고,
‘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