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선을 잃어버리면 안 돼
어릴 때는 착하게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라고 하였다.
어른들을 만나면 착하게만 크면 된다고 하였다.
착하게 행동하면 늘 칭찬이 뒤따라왔다.
그래서 착하게 ‘만’ 살면 되는 줄 알았다.
모두의 바람대로 나름 착하게 큰 것 같다.
‘착함’과 ‘선함’을 바라는 세상에 맞게 웃는 얼굴로 상냥하게 행동하고 선한 사람으로 평가받아왔고 나도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사람이 선하고 착한 사람을 이야기하길래 당연히 선의에는 선의로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아무리 내가 선한 마음으로 대해도 엇비슷한 상냥함과 선함이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많더라.
오히려 나의 선의를 이용하고 호의를 권리로 생각하기도 하였다.
어느 날부터 내 마음속에 자그마한 불만과 분노가, 티끌 같은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나 착하지 않은데?’
‘나 그렇게 선한 사람이 아닌데?’
착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아등바등하던 나였는데 어느 순간 더 이상 애쓰고 싶지 않아졌다.
모든 사람에게 ‘선함’을 보여주는 가면을 매일같이는 쓰고 싶지 않아졌다.
어느 날 가까운 사람이 한 뒷말을 듣게 되었다.
나의 진심이 사실은 가짜일 것이라고
착한 ‘척’을 하는 것일 거라고.
착하게 살고 선의를 베풀며 살라고 해서 그렇게 살아왔는데 돌아오는 것은 그 마음을 과녁판처럼 여기며 나의 마음을 멋대로 판단하고 화살을 쏘아대 나를 아프게 하는 것들이었다.
한참을 고민하였고 아파하였다.
나의 마음을 멋대로 평가하던 사람들의 말을 곱씹으며, 혼자 화도 냈다가 실망도 하였다가 이리저리 방황하였다.
‘남에게 상냥해야 하고 선한 사람이어야 하지만 사실 나는 그다지 착한 사람은 아니다. 그렇지만 남들에게 안 좋은 소리를 듣고 싶진 않다.’
이것이 나의 딜레마였다.
무언가 하나는 포기를 해야 하는데 다 갖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을까.
그래서 나는 나의 본질을 인정하기로 하였다.
아니, 인정을 해야만 했다.
나는 착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선한 사람이 아니다.
이렇게 선함의 올가미에서 벗어나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본질의 나를 인정하니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었다.
나는 착하지 않기에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지 않아도 된다. 이전만큼 모든 사람에게 노력하며 애쓰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내 마음이 이끌리는 사람에게 마음이 끌리는 대로 자연스럽게 시간을 갖다 보면 나는 그 사람들에게 착하고 선한 사람이 되어있다.
나는 그저 내 안의 진실된 목소리를 인정하였고,
모두에게 착한 사람이고 싶었던 욕심을 버렸고,
나의 선함을 약점으로 여기던 사람들을 끊어냈더니,
오히려 착함과 선함이 나의 장점이자 무기가 되었다.
나는 마음이 여리고 착하고 선하여 끝끝내 그 마음들을 믿는 사람들에게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늘 착하지 않아도 된다고,
착하게 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나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에게 할 말은 해야 하고
나의 호의가 권리인 것처럼 대하는 사람에게는 단호하게 그걸 끊을 용기가 필요하고
선한 마음을 이용하려는 사람에게는 날카로운 발톱을 스윽 보여줄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요즘 제법 당차게 살고 있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 증명해 주는 것들이 있다.
나의 선의와 상냥함에 더 큰 마음으로 보답해 주는 사람이 있기에 내가 살아갈 희망이 있다는 것.
나의 마음은 올곧게 가야 할 사람에게 전달이 된다는 것.
나의 본성이 어떻든 나를 알아줄 사람은 언제든 어떻게든 제대로 알아봐 준다는 것.
그렇기에 선함이 나의 아킬레스건이 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착하게 상냥하기 살아야겠다 다짐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내가 준 만큼 혹은 그보다 더 많은 선의와 호의를 받으며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큰 기적이 아닐지라도 나를 기쁘게 만들고 눈시울을 붉혔던 모든 것들이 누군가의 상냥함과 착함이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늘 착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선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