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매직
내 취미는 뜨개질.
한코 한코 무념무상으로 뜨다 보면 몇십만 코가 모여 하나의 옷이 완성된다.
작년 늦가을부터 만지작만지작,
조금 뜨다가 풀고
또 무언가 시작했다가 다시 또 풀고
그렇게 보풀이 조금 일어날 때쯤 되니 해가 바뀌었다.
새로운 마음 또렷한 정신으로 시작하여 무념무상으로 겨울이 가기 전 하나의 스웨터를 완성하였다.
내가 뜨개질을 하여 옷을 만들면 열 번 중 아홉 번 하고도 반은 엄마가 입곤 한다.
그래서 내가 뜨고 싶은 디자인과 엄마가 입고 싶은 종류를 적당히 타협해서 옷을 뜨곤 하는데
이번 계절은 추웠다가 따뜻했다가 눈이 오다가 맑았다가 비가 오는 덕분에(?) 엄마가 많이 입은 애착 스웨터로 당첨되었다.
적당한 브이넥에 보들보들한 촉감, 알맞은 길이감과 보온성, 그리고 취향저격하는 색상까지!
겨울부터 며칠 전까지 열심히 입어주어서 뿌듯하고 기쁜 마음에 흐뭇하게 웃으며 엄지 척을 여러 번 짤랑짤랑 흔들고 나는 다음 작품을 열심히 뜨고 있었다.
사뭇 더워진 날씨에 스웨터와 헤어질 결심을 한 엄마는 비장하지만 흔들리는 눈을 한 채 ‘이거 세탁기에 돌려도 되겠지?’ 물어보았다.
보통 핸드메이드 옷이나 울 니트는 손세탁을 권장하기는 하지만 ‘살 놈은 산다!’ 마인드로 ‘고!’를 외쳤다. 사실 아무 이상 없으면 다행이지만 문제가 생겨도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서 편한 방법을 택한 것이었다.
세탁망에 고이 접어 넣고 울코스를 조심스럽게 누르고 탈수도 약하게 돌렸다.
세탁과 탈수가 끝나고...
엄마는 세탁실에서 악! 소리와 함께 한참을 나오지 않았다.
세탁실에서 터덜터덜 나온 엄마는 이상하게 두텁고 작은 옷을 가지고 나왔다.
그거 내가 만든 옷 아닌데?!(ㅋㅋㅋㅋㅋ)
세상이 무너진 사람처럼 이거 왜 이러냐며 너무 속상해하는 엄마를 보고 나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말로만 듣던 펠팅 현상이었다.
울 니트 특성상 마찰이 심하게 되면 털끼리 엉켜서 조직이 단단해지고 심하게 수축되는 현상이다.
애착 스웨터가 아동복이 되는 매직을 겪고 엄마는 충격에서 헤어 나오질 못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엄마가 너무 잘 입어주어서 충분히 고마웠고
내가 또 만들 수 있으니 말이다.
수만, 수십만의 코를 뜨며 나는 이미 충분히 행복하였다.
그리고 완성한 후 그 가치를 더 높여주는 사람이 있어서 더 행복하였다.
나의 소소한 취미에 관심을 가져주고, 완성에 함께 기뻐해주고, 다 만들어진 것에 계속해서 애정을 쏟아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는 취미를 넘어 넘치는 사랑과 행복을 받은 것 같아 더 큰 동력을 얻는다.
그리고 다음번에 다시 만들어낼 똑같은 스웨터는 얼마나 더 완벽해질지 기대가 된다.
그때는 더 예쁜 색으로 더 멋지게 완성해야지.
폭싹 줄었수다~!
그래도 나는 행복해~!
엄마의 인스타그램에도
눈물의 폭싹 줄었수다~!
역시 애착 스웨터가 맞았나 보다.
나는 또 뜨개질할 리스트가 생겨서 좋은데...
실은 사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