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우리 가족의 대소사 중 가히 넘버원이라 말할 수 있는 엄마의 생일.
엄마의 생일을 축하하며 긴 연휴의 포문을 열었다.
생각해 보면 조금 더 어렸을 때만 해도 나의 하루하루가 바쁘고 챙길 사람도, 챙길 일도 많아서였는지 엄마의 생일이 우선순위에서 밀리기도 했던 것 같다.
다행히도 우리 집은 기념일이나 명절에는 가족끼리 보내는 게 암묵적인 약속이었기에 외식을 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긴 했지만 그건 그저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였다.
진심으로 엄마 생일을 성대히(?) 집안 행사의 제일 우선순위로 두게 된 계기는...
엄마가 기념일만 되면, 그날이 다가오면, 스트레스를 받고 무기력해지는 것을 알게 되고부터였다.
어릴 적 너무나도 의미 없이 지나 보냈던 기억들 때문인지, 아니면 점점 무언가를 기념하는 것에 의미도 기쁨도 찾지 못해서인지,
엄마는 생일이 다가오면 자꾸 그날을 애써 외면하고 피하고 싶어 했다.
나도 나이를 먹으면서 생일에 너무 주목받는 것도 뜸하던 메신저 창에 생일을 축하한다는 연락을 받는 것도 조금 부담스럽고 멋쩍은 마음이 있었기에
엄마의 숨고 싶은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엄마의 속마음을 들여다볼수록 나처럼 내성적인 성향 때문에 그런 것도 있지만, 과거의 경험들과 상처들이 자꾸만 엄마가 가장 행복해야 할 날에 엄마를 제일 작은 사람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 엄마 생일만큼은 제일 행복하고 바쁜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다.
처음에는 용돈을 모아 몰래 선물을 준비하고 편지를 써서 생일이 되는 12시가 땡 하고 되면 노래와 함께 전달식을 하였다.
서프라이즈를 위해 엄마의 관심사를 몇 달간 관찰하고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고 서프라이즈로 선물을 준비하고 씰룩거리는 입매를 겨우 감추며 생일이 되는 12시에 맞춰 짜잔!
그런데 그렇게 꾸준히 서프라이즈를 해왔는데 문제가 생겼다.
우리 집에는 딱히 비밀이 없다는 것이다.
다들 서로 이야기를 많이 하다 보니 비밀 없이 지내기도 하고, 무언가를 준비하면 얼굴에 다 드러나서 비밀이 없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제 서프라이즈는 안녕~!
그리고 늘 혼자 나서서 챙기던 엄마 생일에 동생들도 참여를 시켰다.
남동생과 막냇동생에게 5만 원씩 보태라고 하여 엄마가 갖고 싶은 선물을 공식적으로 사게 되었다.
그래서 사실상 9월 말부터 10월 내내 엄마의 생일 주간이다.
보통 엄마 생일에는 12시가 되자마자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편지 전달식을 한다.
그리고 아침이 되어서는 다들 하루 종일 왔다 갔다 하며 계속 ‘엄마 생일 축하해!’를 속삭이고, 저녁때쯤 외식을 한다.
그리고 주변에 네 컷 사진을 찍는 곳이 있으면 꼭 찍어주는 것이 생일의 마지막 코스!
그러면 사진 찍는 것을 싫어하는, 본인의 흔적을 남기는 것을 싫어하는 엄마가 마지못해 함께 포즈를 취하며 매해 사진을 남기곤 한다.
올해에는 엄마가 좋아하는 브랜드인 ‘라문’의 조명과 스탠드를 선물하였다.(엄마가 골랐다.)
연휴가 껴서 배송이 늦게 올까 봐 급하게 구매하였더니 생일 한참 전에 이미 엄마 방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리고 막내의 꽃선물.
막내는 종종 밖에 나가면 엄마에게 꽃을 사 와 선물하곤 한다.
엄마는 꽃이 금방 져버린다고, 돈이 아깝다고 사오지 말라고 하지만
꽃을 선물하고 싶은 그 마음을 누가 말리겠어.
왜 사왔냐고 하지만 꽃을 받은 엄마는 꽃보다 더 환한 미소로 열심히 꽃에 물을 주고 막내에게 받은 사랑을 차곡차곡 마음에 저장한다.
초침이 12와 12에서 만났을 때,
우리의 합창은 시작된다.
생일 축하 합니다~ 생일 축하 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엄마! 생일 축하 합니다~~~
선물은 이미 전달하였고,
편지 증정식이 있겠습니다.
엄마는 종종 의미를 찾지 못해 슬프고, 슬픈 이유를 알면서도 너무나도 케케묵은 감정이라 무기력해한다.
그런 엄마의 삶을 온전히 다 이해할 수는 없어도, 헤아릴 수는 없어도,
자꾸 반복되는 행복에는 어김없이 행복해질 것이라 믿으며
엄마가 웃기를,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엄마의 생일을 보냈다.
이런 마음을 엄마는 당연히 알 테고,
동생들도 몸과 마음으로 체득하길 바란다.
내가 그랬듯,
이런 마음들이 쌓여, 이런 시간들이 쌓여,
엄마를 생각하고 사랑하고 또 존경하는 마음이 커질 테니 말이다.
엄마 사랑해!!!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