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도 그 마음이 닿기를
연민하다-불쌍하고 가련하게 여기다.
동정하다-남의 어려운 처지를 자기 일처럼 딱하고 가엾게 여기다./남의 어려운 사정을 이해하고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도움을 베풀다.
이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고는 연민과 동정의 의미가 내가 알고 쓰던 것과 같은지 다시 한번 확인을 하였다. 그러면서 엄마에게 그동안 했던 말들, 가졌던 생각들이 옳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나의 생각에 더욱 큰 확신을 얻게 되었다.
엄마의 마음에는 연민과 동정이 참 많다.
일단 엄마의 마음에 가득 찬 연민과 동정을 이야기하기 전에 엄마의 성격에 대하여 먼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엄마의 평판은 차갑고 공과 사가 분명하지만 따뜻하고 귀인 같은 사람이다.
엄마를 아는 거의 모든 사람이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이게 무슨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인가 싶지만,
그만큼 엄마의 성격은 복잡하다.
겉모습은 차갑고 또 칼 같은 성격에 완벽주의 성향을 곁들인 냉정한 사람이지만
그어놓은 선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허용할 만큼 가까워지고 결이 맞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상냥하고 애교 많고 가진 것 그 이상을 주려고 하는 사람이다.
타고난 공감력과 선함은 엄마가 다른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기도 하지만,
때때로 엄마를 외롭게 하기도 한다.
막내로 태어난 엄마는 엄마가 기억하는 가장 최초의 기억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막내의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고 한다.
어렸을 때에는 부모님이 엄하셔서 땡깡 한번, 어리광 한번 부리지 못하였고,
나이가 든 지금은 언니들과 오빠를 대신하여 다들 주저할 때마다 앞장서서 일들을 추진하고, 관계들 속에서 중요한 열쇠가 되어 여러 일들을 해결하고 있다.
그런 엄마를 보면서 나는 엄마가 남자로 태어났다면... 첫째로 태어났다면... 무언가를 해도 제대로 해냈을 거라고 늘 엄마에게 이야기를 한다.
엄마가 집안에서 이런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는 연민과 동정이 한몫하리라 생각한다.
엄마는 종종 어릴 때 이야기를 하며 남매들의 짠했던 모습들을 떠올리곤 한다.
삼촌이 털레털레 학교에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지각할 텐데 어떡하지 걱정하던 기억,
태어날 때부터 아팠던 이모를 매번 숨기려 하던 할머니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꾸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려고 하고, 자신만큼은 언니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기억.
그런 기억들은 지금까지 이어져 늘 엄마를 앞장서게 만든다.
가족 외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며 공감하고 함께 힘들어하고 걱정하고서는 집에 와서도 고민을 한다.
어떻게든 해결해주고 싶고 힘들 때 함께 해주고 싶은 마음에 엄마의 체력과 마음을 듬뿍 쏟아내어 오래 걸려도 해결이 될 때까지 마음을 쏟는다.
그런 위로를 받고 공감을 받았던 사람들은 엄마를 귀인이라고 한다.
힘들 때 함께 해주는 사람, 그게 바로 엄마인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엄마가 쏟는 마음만큼은 아닐지라도 그 마음을 알아주고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다.
호의를 받을 때에는 고마워하고 좋아하지만
막상 엄마가 힘들 때에는 다들 모르고 지나치는 것이 부지기수이고 비슷한 마음이 되돌아오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나는 늘 안타깝다.
엄마의 마음에는 연민과 동정이 많아 누군가의 슬픔을, 힘듦을 지나칠 수 없어 그 아픔을 나눠 가지려 하는데
정작 엄마의 괴로움과 슬픔은 엄마 혼자 견뎌내려고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래서 내가 언젠가는 엄마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엄마가 스스로를 가여워했으면 좋겠다고,
상처받은 내면을 돌아보고 돌보았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언제부턴가 엄마는 스스로가 불쌍하다고 말한다.
남들 먼저 생각하고 챙겨주다 보니 뒷전이 되는 자신이 애처롭다고.
딸로서 그런 말을 들으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내 놓을 수 있는 지금의 엄마가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제는 스스로를 연민하고 동정할 차례이니까.
나는 남들에게 지극한 엄마의 마음을 안다.
본인이 겪었던, 혹은 이미 초탈한 불행과 아픔들을 내 사람들이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게 해주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런 마음을 알기에 엄마의 연민과 동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가끔은 함께 고민하기도 한다.
그래도 나는 엄마에게 엄마의 마음이 우선이기를 바란다.
남들이 먼저 헤아리지 못하고 알아주지 못해도 엄마만큼은 스스로를 더 많이 가여워하고 보듬어주었으면 한다.
가만 보면 가장 가여운 우리 엄마,
그동안 남들에게는 관대한 연민과 동정을 베풀고
혼자서는 그 많은 짐을 지고 자신의 마음은 혼자 갈무리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제는 엄마가 가진 선물 같은 마음을 엄마도 누릴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