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년이 지났다.
2024년 9월 8일,
할아버지는 12년간 병원에 계시다가 돌아가셨다.
뇌사도 코마도 아닌 상태, 계속하여 자가호흡을 하셨고
가끔 눈이 마주칠 때면 꼭 의식이 있는 채로 빤히 쳐다보시는 것 같기도 하였다.
어떤 말에는 눈물을 흘리시기도 하였고 고개를 움직이기도 하셨다.
12년이라는 시간은 할아버지에게 남겨진 시간에 대한 막연한 희망을 주었기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엄마는 세상이 무너졌다.
평소 하도 눈물을 참아서 우는 방법을 모른다던 엄마는 할아버지의 죽음에 목놓아 우는 방법을 너무나도 쉽게 터득하였다.
하늘이 무너진 듯 눈물을 쏟아내었고, 어떻게 하냐며 땅을 치며 또 눈물을 쏟아내었다.
어린 시절 엄하고 사랑이 없었다고 생각했던 무뚝뚝한 아버지의 사랑을 건너 건너 듣고 이제야 이해를 해보려 하고 그 시절의 아버지와 손을 잡으려 하던 때였다.
그러는 도중 실존하는 아버지를 여의었다.
엄마는 49재를 지내며 종종 눈물을 흘렸다.
차로 운전하며 울었고, 노래를 들으며 울었고, 이야기를 하며 울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도 시간은 계속 흘렀다.
겨울이 오고, 해가 바뀌어 봄이 왔고, 여름이 지나갔다.
다시 2025년 9월 8일,
여름이 지나가며 쌀쌀해지는 날씨 탓에 목이 잠기나 했던 엄마는 작년 이맘때와 똑같이 목소리를 잃었다.
작년에도 한 달여간 목소리가 나오지 않던 엄마는 올해에도 약 2주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고생을 하였다.
그리고 이유 없는 두통과 설사까지.
왜 그럴까 수없이 원인들을 고민하던 그때
엄마와 나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지만 설마 하는 마음으로 내뱉지 못한 말이 있었다.
설마... 할아버지 기일이 다가와서?
이유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작년의 슬픔과 힘든 마음을 몸은 기억하나 보다.
할아버지를 뵈러 가야 하는 날이 다가온다.
엄마는 그때처럼 울지는 않는다.
하지만 겁이 난다고 하였다.
가족 간의 불화, 작년보다 절대 나아지지 않은 이 상황들을 두고 할아버지를 뵈러 가는 마음이 너무나도 무겁다고 하였다.
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 제대로 나아가고 있는지 아무것도 확신하지 못하는 이 상황에서 할아버지께 가는 것이 죄스럽다고도 하였다.
그럼에도 첫 기일이라 할아버지를 뵈러 가겠지만
여러모로 엄마는 몸도 성치 않고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미움도 원망도 많이 남아 더 슬펐던 할아버지의 죽음.
엄마의 마음에 자리 잡던 응어리들은 과연 눈물과 함께 떨어져 나와 많이 사라졌을까?
엄마가 흘렸던 수많은 눈물에는 미움과 원망, 전하지 못한 질문들에 대하여 답을 듣지 못한 것에 대한 억울함이 가득하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그중 조금의 눈물은 이해와 사랑, 감사를 담은 눈물이었다는 것을 안다.
벌써 1년이 지났다.
우리는 겨울의 눈 시린 바람을 겪느라, 짧은 봄의 왈츠를 즐기다가, 길고 긴 무더운 여름을 보내고 가을의 선선한 바람이 찾아오니
떠나간 할아버지를 기억에서 끄집어낸다.
기억보다도 몸이 먼저 반응을 하니 얼마나 온몸으로 슬퍼했었는지 문득 깨닫는다.
아마도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덤덤해지고 그때의 슬픔을 잊어갈 것이다.
하지만 꼭 기억해야지.
그때 엄마의 눈물이 얼마나 처절했는지,
엄마의 슬픔이 얼마나 아프게 느껴졌는지 말이다.
그리고 엄마가 할아버지에게 느끼던, 할아버지가 엄마를 대하던 사랑을 자꾸만 줄이고 줄이려고 할 때마다 이야기해 줄 것이다.
엄마는 할아버지를 사랑하였고, 할아버지 역시 엄마를 사랑했노라고.
그렇기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리고 그다음 해에도 그렇게 온몸이 아프고, 마음이 아팠던 것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