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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한 걸음씩, 나를 되찾는 여정

by 오박사

내 마음은 나날이 어둠에 물들어갔다. 몸과 마음은 지쳐 있었고, 희망의 문을 닫으려는 순간이 가까워질수록 나는 그대로 무너지고 싶지 않았다. 늘 긍정적이었고 내 삶을 사랑했던 내가 이렇게 무너지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쥐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거리로 나갔고, 햇볕을 쐬며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예전에 어디선가, 답답한 마음이 풀리지 않을 땐 책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는 글을 본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휴일의 낮, 나는 무작정 거리로 나섰다. 바람은 조금 쌀쌀했지만 햇살은 따뜻했고, 거리엔 사람들이 북적였다. 한 쇼핑몰 앞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아무 생각 없이 사람들의 발걸음을 따라가다 보니, 나를 짓눌렀던 부정적인 생각들이 잠시나마 사라졌다. 그 순간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다. 오랜만에 찾아온 평화였다. 그리고 마음을 다스리는 책 세 권을 주문했다. 그때만 해도, 그 책들이 내 삶을 바꿔놓을 줄은 몰랐다.


가장 먼저 읽은 책은 **『자존감 수업』**이었다. 20페이지쯤 읽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책 속에 내 증상의 원인과 증상 자체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원인을 알게 되니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내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자존감을 올릴 수 있다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나는 흥분을 억누르며 책을 빠르게 읽어나갔다. 점점 책 속에 빠져들었고, 자존감을 회복하는 방법들이 나올 때는 직접 시도해보고 싶은 조급함마저 생겼다. 당시엔 몰랐지만, 죽어 있던 내 감정이 다시 살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다른 책들도 읽어 내려갔고, 그 안에도 나를 사랑하고 자존감을 키우는 다양한 방법들이 담겨 있었다. 책을 모두 읽은 후, 나는 결심했다. ‘자존감 회복 프로젝트’를 직접 시작해보자. 먼저 내 스타일을 바꾸기로 했다. 아는 동생이 운영하는 헤어샵을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요즘 봄을 타는지 기분이 뒤숭숭해. 스타일을 완전히 바꾸고 싶은데, 너가 봤을 때 나한테 제일 어울리는 머리로 해줘. 그리고 머리 손질법도 좀 알려줘.” 그가 바꿔준 내 머리는 정말 마음에 들었고, 오랜만에 내 외모에 자신감이 생겼다.


다음은 옷 스타일을 바꾸는 일이었다. 두 번째로 읽은 책에서, “남의 시선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옷을 입을 때 자존감이 오른다”는 문장을 보고 실천해보기로 했다. 혼자 쇼핑몰에 가서 처음 시도해보는 스타일의 옷을 골라 입고 출근했는데, 예상치 못한 반응이 돌아왔다. 다들 잘 어울린다고 말해주었고, 머리까지 칭찬을 받으니 괜스레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자존감이 1포인트 올라간 기분이었다.


내 프로젝트는 마치 게임 같았다. 게임 캐릭터가 경험치를 쌓듯, 나는 자존감 포인트를 하나하나 올리고 있었다. 스타일 변화 다음에는 작은 도전을 통한 성공을 시도했다. 조기 축구팀 감독에게 마음이 아프다고 털어놓았더니, 나를 돕고 싶다며 공격수 자리를 맡겼다. 골을 넣을 때마다 자존감이 쑥쑥 오르는 느낌이었다. 심지어 골을 넣지 못하더라도, 도전 자체로 충분히 값졌다. 감독은 커피 쿠폰까지 보내며 나를 응원했고, 그 작은 행동이 나에겐 큰 힘이 되었다. 그뿐 아니라 내 아픔을 알고 묵묵히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되었다.


자존감이 점점 회복되는 것을 느끼며, 1년 넘게 미뤄왔던 유튜브 도전도 해보기로 했다. 편집이 두려워 망설였던 나였지만, 마이크와 조명, 배경을 준비하고 바로 촬영에 들어갔다. 유료 편집 앱도 구입해 책에 나온 대로 따라 해보니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첫 영상은 조잡했지만, “내가 해냈다”는 쾌감이 자존감을 10포인트는 올려준 듯했다.


그리고 마지막, 가장 큰 변화는 바로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운 것이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사랑해”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잠들기 전에는 “넌 잘할 수 있어. 수고했어. 사랑해.”라고 내 어깨를 토닥였다. 내가 나에게 전하는 말들을 녹음해 출퇴근길에 들었는데, 처음 들었을 때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 이렇게 위로가 되다니.


결국 나는 자존감 프로젝트에 성공했고, 이전보다 훨씬 건강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다른 이들의 아픔을 더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고, 그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도 알게 되었다. 때로는 아무 말 없이 옆에 있어주는 것, 커피 쿠폰 하나 같은 작은 행동이 얼마나 큰 힘이 될 수 있는지를 깨달았다.


아프지 않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아픈 만큼 성장한다는 말이 이제는 가슴 깊이 와닿는다. 그리고 말하고 싶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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