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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소 Sep 14. 2024

어느 군인의 정신과 입원

정신과 입원은 처음이라(아홉 번째 이야기)

저녁 9시가 되면 모든 환자가 자기 전 약을 먹었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간호사가 약이 든 카트를 끌고 침대 옆으로 와서 약을 주는데 웬일인지 환자들은 간호사가 일하는 카운터로 몰려가 차례를 기다렸다. 가끔은 중년의 남자 보호사가 환자가 몇 명 안 되니 다 나와서 약을 먹으라고 한 적도 있었다. 


환자들이 간호사 데스크 앞에 주르르 서서 한 명씩 약을 받아먹고 물을 마시고 약을 삼켰음을 확인하는 장면을 침대에서 쳐다보고 있자니 미친 사람들을 조련하는 기분이 들어 불쾌했다. 물론, 겉으로 표현하진 않았다. 정신과 병동만 아니었다면 고분고분 나가서 약을 먹지 않았을 것 같았다. 정신과 병동이라서 더욱더 티 나는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환자들 줄이 줄어들면 그때 나가서 약을 받아먹는 것뿐이었다.


간호사가 약봉지를 뜯어 약을 손에 부어주면 물과 함께 삼키고 나서 입을 벌려 약을 삼켰음을 확인시켜줘야 했다. 왠지 치욕스러웠다.


입을 대충 벌림으로써 치욕스러움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하는 나와 달리 서울대 약대 그녀는 입 벌리기 모범생이었다. “아.”하고 입만 살짝 벌려 보여주는 시늉을 하는 나와 달리, 서울대 약대 그녀는 “아, 아~.”하고 목젖까지 다 보이도록 입을 크게 열어 보이며 약을 삼켰음을 정확하게 확인시켜 주었다.       


겉으로 보기에 그는 건강해 보였다. 그곳에 있는 환자들 중 내가 보기엔 가장 건강해 보였다. 특별히 다른 사람을 귀찮게 하지 않았고 조용히 밥을 먹고 가끔 러닝머신을 하면서 땀을 흘렸다. 산책 시간이 되면 산책을 나갔고 가끔 피아노를 치는 등 가장 모범적인 생활을 했다.


그의 병명을 우울증이라고 가정했을 때, 그가 우울증으로 힘들다고 말했다면 직장과 같은 조직에서 꾀병으로 의심하기 딱 좋아 보이도록, 겉보기에 그는 건강해 보였다. 


정신과 보호병동 공중전화는 이상하리만치 음량이 낮게 설정되어 있어서 상대방과 대화를 하려면 어쩔 수 없이 전화를 건 사람이 음성을 높여야 했다. 당연히 환자들의 모든 통화내용을 듣기 싫어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공중전화로 통화하는 목소리가 너무 작아 그동안 통화내용이 잘 안 들렸던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크지는 않지만 평소보다 언성이 높아진 상태라 그가 민간인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이미터 정도 떨어진 자신의 자리에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간호사가 "모범님. 본인 동의 없이 병원기록 열람 못해요."라며 한마디 전해주었으나 공기 중에 뿌려진 간호사의 목소리가 그의 귀에 도달했는지는 모르겠다. 통화대상이던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소속기관에서 입원 중인 아들의 정신과 기록 열람을 하겠다는 말을 들었는지 모범님은 화가 나 보였다.  


하필이면 그의 직업은 현역 군인이었다. 그는 나보다 먼저 입원해 있었고 내가 퇴원할 때까지 퇴원하지 않았다. 나보다 입원 기간이 길다고 하여 그가 나보다 더 아프거나 덜 아픈지, 상태가 더 좋은지 더 나쁜지 알 수 없다. 내가 알 수 있는 건 그는 아파서 이곳에 입원했고 자신을 관리하고 있을 거라는 것뿐이었다.


같은 병동에 입원한 나는 그 사실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외부의 다른 사람들이 그 사실을 이해할 수 있는지, 이해하려는 맘이 있는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 신분이 군인이라면 상황은 더 복잡할 것 같았다. 내가 입원해 있는 동안 그는 겉보기에 건강했고 특별한 정신병적 증세는 보이지 않았다.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라고 같은 병원, 같은 과에 입원한 나는 이해할 수 있었으나 다른 조직에서 이해해 줄지는 별개의 문제였다.    


이곳에서의 모범적인 생활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사람들이 어떻게 이해할지 나는 궁금했다.


<입원 여덟 번째 날>

[간호기록]

11:39 침상에 누워있어 활동 권함

13:19 러닝머신함

13:32 샤워함

15:11 주치의 면담

[그제는 잠드는 게 힘들었는데 약 추가되고 나서는 모르겠어요. 잠 설친 거 같아요. 아침에도 계속 잤어요. 선잠자서 그렇겠죠? 지금도 너무 피곤한데 그냥 참고 있어요.

전에는 자격증도 따고 이것저것 해봤는데 (중략) 배우는 게 눈치도 보이기도 했어요. (후략)]

18:39 침대어 앉아 책 읽고 있음

21:00 침상에 누워 있다 일어나 약 먹음. 투약 후 하품하며 화장실 다녀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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