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입원은 처음이라(열한 번째 이야기)
모든 상황에 무기력하게 늘어진 몸 상태였기에 나는 수건을 하루에 한 개 정도 버릴 계획으로 그동안 집에서 오래 사용한 수건을 여러 개 가져와서 샤워 후 하나씩 쓰레기통에 버렸다.
잠시 후, 서울대 약대 그녀가 비어있던 내 맞은편 침대 난간에 옷가지를 걸어놓았다. 바닥에 너무 많은 물이 줄줄 떨어지는 게 신경 쓰였지만 애써 신경 쓰고 싶지 않아 모른 척했다. 여기는 정형외과나 안과가 아닌 정신건강의학과 입원실이므로 괜한 말로 트러블이 생겨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기 싫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서울대 약대 그녀가 다시 내 맞은편 침대로 왔다. 그녀는 오른쪽 침대 난간에 걸려 있던 옷을 왼쪽 난간에 다시 널었고 왼쪽 난간에 걸려 있던 옷을 침대 발치 난간으로 위치를 바꿔 정성스레 다시 널었다. 무슨 차이가 있는 거냐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신경 쓰기 싫은데 자꾸만 신경 쓰였다. 그때까지 안경을 벗고 있던 나는 맞은편 침대에 걸려 있는 것들을 무심히 쳐다보고 있다가 별안간 그들에게서 갑자기 익숙함을 느꼈다.
몸을 일으켜 맞은편 침대로 가까이 다가가 걸려 있던 수건에 박힌 글자를 보았다. 그러자 훨씬 더 익숙한 감정이 몰려왔다.
'이 수건, 좀 전에 내가 샤워하고 나서 쓰레기통에 버린 그거 아닌가?’
침대 바닥에 물을 줄줄 흘려가며 애지 중지 말리던 그것이 내가 버린 수건임을 알고는 짜증이 확 밀려왔다. 아직 코로나는 종식되지 않았고 내가 버린 수건이 또 다른 질병의 불씨라도 될 까봐 불안감이 꿈틀거렸다. 그것보단 며칠간 쌓인 짜증을 분출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는지도 모르겠다.
“이 수건, 쓰레기통에서 꺼내오신 거예요? 제가 버린 건데 괜히 가져와서 쓰시다가 저한테 병균이라도 옮으면 어쩌려고 그래요?”
“새댁 한데 무슨 병이 있어? 누가 멀쩡한 수건을 버려놨길래 걸레하기 좋아 보여서 걸레로 쓰려고 했지.”
“돈도 많으신 것 같은데 사면되지, 왜 그걸로 걸레를 하세요?”
“돈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고 걸레하기 딱 좋아 보여서,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 사람이 청소하러 오는데 오만 원씩 주고 있고...”
밖에서 이 소리를 듣고 있던 보호사가 상황을 파악하고는 널려 있던 수건을 버리고 우리 두 사람이 더 이상 대화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곳에선 말다툼도 할 수 없고 싸움도 불가능하다. 이곳은 자유행동 제한 구역이다.
<입원 아홉 번째 날 2>
[간호기록]
12:30 간호사실 와서 내일 오전에 퇴원하고 싶다며 주치의 면담하고 싶다고 함
17:00 주치의 면담함
[잠은 이 정도면 괜찮은 거 같아요 샘. 증상이 변할 때마다 약이 조금씩 변하고 그래서 약 맞추기가 힘들었던 거 같은데 지금은 뭐 숨차고 그런 것도 없고 (후략)]
17:24 내일 보호자 안 오고 지갑, 옷, 신발 모두 다 있어서 혼자 수납하고 갈 거라고 함. 아침식사까지만 신청해 달라고 함
18:10 순수님과 실랑이하고 있어 확인하자 버린 수건을 순수님이 쓰레기통에서 주워서 빨래한 후 침상에 걸어놨다고 함. 순수님이 더 쓸 수 있는 수건을 버렸다고 여러 번 얘기하여 주의 주고 수건 수거하여 버림
23:00 수면 중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