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드디어 겨울 방학을 했다.
학기 동안 아침에 휴대폰 알람을 맞춰놓고 스스로 일어나 빵이나 초코파이를 먹고 학교 갈 준비를 하던 아이가 기특하면서도 고마웠다. 방학을 했으니 알람을 맞춰놓고 아이 스스로 준비해서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되니 왠지 모르게 죄책감이 줄고 안도감이 들었다. 아이를 데리고 친정집에서 당분간 지낼 예정이었기 때문에 아이가 다니는 국어와 영어학원을 모두 끊어버렸다. 부모님을 도와주기는커녕 내가 돌봄을 받고, 아이가 끼니를 굶지 않을 수 있는 친정에 가기 위해 방학을 무척 기다렸었다.
너무 멀어서, 멀미를 해서, 와이파이가 되지 않아서, 친구들과 놀고 싶어서 등의 이유로 아이는 친정집에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모바일 핫스팟을 연결해 주겠다며, 엄마가 힘들어서 가고 싶다는 부탁과 회유를 통해 아이는 친정집에 내려가는 것에 동의해 주었다.
자가용을 타고 내려가기로 결정했는데 꼬박 4시간을 운전해야 하는 것이 걱정되었다. 예전에 나름 건강했던 때, 도착까지의 시간을 줄여보려고 휴게소도 들르지 않고 4시간 동안 운전대를 잡은 적이 있었는데 2시간이 지나자 브레이크를 밟는 오른쪽 다리가 뻐근하고, 허리가 너무 아팠던 기억이 났다.
KTX를 타고 갔으면 그나마 좀 편했을 텐데 KTX역으로 가는 시간이나 자가용으로 가는 시간이나 큰 차이가 나지 않았고, 두 달 동안의 방학 중 최소 몇 주간은 친정집에서 요양(?)을 받고 싶었다. 그러려면 가져가야 할 게 많아지므로 자가용으로 내려가는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짐을 싣고 출발했다. 찌뿌둥한 날씨를 뚫고 고속도로를 달렸다. 조수석에 앉은 아이는 모바일 핫스팟에 연결된 자신의 태블릿으로 게임을 하다가 지루해하다가 도착시간을 자꾸 물었다.
"OO야, 아까 네가 시간 물어본 지 10분 지났다. 30분은 지나서 좀 물어보면 안 되겠니?"
아이가 힘들고 지쳐할 걸 알기에 빨리 가고 싶어 브레이크를 밟았다. 운전대를 잡은 나 자신또한 걱정되어서 나도 빨리 도착하고 싶었다.
휴게소를 들렀다가 다시 브레이크를 밟았다. 오후 5시가 되자 어둠이 이미 내려앉았다. 어두워지니 컨디션이 확 떨어졌다. 햇빛이 없는 시간은 더 우울해진다. 해가 지고 어두워지니 '죽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다가와 남은 두 시간을 운전하는 것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고속도로 주변 광경이 매우 빠른 속도로 내 옆을 휙휙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차량 계기판을 봤더니 140km를 넘기고 있었다. 그 와중에 바로 옆에 아이가 앉아있는데도 내 머릿속은 온통 '죽고 싶어, 죽고 싶어, 죽고 싶어.'란 생각뿐이었다. 엄마 혼자서 몹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이에게 미안했다.
무사히 친정집에 도착했다.
'이제 당분간 아이 끼니 걱정 없이 지낼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며 그날로 뻗어버렸다.
대학병원 입원 당시, 퇴원 후에 상담가능한 기관을 연계해 줘서 주 1회씩 상담을 받는 중이었는데, 친정집에 내려오면서 상담사와 협의하여 전화상담으로 바꾸었다. 드러누워 기운 없는 목소리로 상담전화가 오는 것을 받는 게 직접 센터에 가는 것보다 더 귀찮았고, 대면상담과 달리 상담의 효과도 확 떨어졌다.
어느 날, 누워서 너튜브를 보다가 우연히 '리춘수' 채널을 보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웃겨서 계속 보다 보니 더 우울해졌다;;;;; 장시간 스마트기기 사용은 역시 건강에 좋지 않나 보다.
친정에 왔는데도 하루하루 날이 갈수록 우울증이 깊어져갔다. 아무래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기존에 의사가 처방해 준 약을 꼬박꼬박 먹는 동안 살이 무럭무럭 쪄서 만삭 때보다 몸무게가 늘었다. 밤에 먹는 약 중에 식욕을 증가시키는 부작용이 있는 약이 있다는 걸 의사와 나는 알고 있었다. 자기 전에 나는 무언갈 먹게 되었다. 그 와중에 졸피뎀(수면제)의 부작용(자는 동안 운전을 하거나 집 밖을 나갔다 온 것 등을 기억 못 함)도 내 예상보다 빨리 나타났다. 자기 전에 복용한 약으로 인해 식욕이 증가한 나는 편의점에 가서 물건 계산을 하고 집에서 먹었다. 자고 일어났더니 웬 빈 과자봉지가 식탁에 있었다.
'응? 아이는 분명 나보다 먼저 잠들었는데 저건 누가 먹은 거지? 편의점 영수증은 또 뭐야?'
편의점 영수증에는 전날 밤에 물건을 구매하고 계산한 시간이 초 단위까지 친절하게 적혀있었다. 편의점에서 내가 물건을 사서 먹은 기억이 없으므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