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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소 Nov 13. 2024

질병휴직 후 - 대형 트램펄린

의사에게 살이 찌는 것과 졸피뎀 부작용에 대해 말했다. 

"선생님, 저도 모르게 밤에 운전대를 잡았다가 기억에도 없는 사고라도 낼까 봐 걱정돼요." 

"그 정도 양가지고는 그렇게까지 행동 안 해요. 졸피뎀(수면제)을 9알씩 먹는 사람도 있는데, 많이 복용하는 분들 중에는 간혹 그럴 수도 있지만. "


몇 년 전, 우울증을 앓고 있던 같은 부서 직장동료가 어느 날 자기 집 현관 비밀번호를 바꿔서 집에 들어가지 못해 20만 원인가 비용이 들었다며 돈 아까워 죽겠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같은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으로서 아마 복용 중인 약에 부작용이 생긴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어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졸피뎀의 부작용을 알게 되었다. 얼른 병원에 가서 현재 증상을 이야기하고 약을 바꾸는 것이 좋겠다고 그분에게 말해주었다. 내 말을 잘 듣지 않던 분이었는데, 의외로 내 말을 듣고 약을 바꿨고 졸피뎀 대신 다른 약으로 잠을 자게 되었다. 그분으로 인해 나는 '편의점 외출 기억 상실'이 졸피뎀의 부작용이라는 걸 빨리 의심할 수 있었다.


졸피뎀은 그대로 처방이 되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편의점을 다녀오는 나의 행동이 다음날에 기억이 났다. 기억이 난다는 것은 기억나는 것만 기억하는 것이라는 걸 알기에 나도 나를 믿을 수 없었다. 졸피뎀 등을 먹고 잠에 들어 새벽에 어쩌다 깼는데 아래층 개가 짖고 있었다.(아랫집 사람이 담배를 피우러 가거나 집을 비우면 몇 시간 내내 짖는다.) 이 새벽에 개가 짖는 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내가 나를 믿을 수 없으니 휴대폰을 꺼내 개 짖는 소리를 녹음하고는 다시 잠에 들었다. 새벽의 일이 진짠지 아닌지 확인해 보려고 아침에 일어나 휴대폰을 열어보았더니 새벽 1시에 정말로 개소리(?)가 녹음되어 있었다.


식욕증가 부작용이 있는 약은 뺄 줄 알았는데, 의사는 그 약을 그대로 처방했다. 대신, 집중력을 높일 뿐만 아니라 더불어 식욕감소의 부작용이 있는 페니드(ADHD치료제로 주로 쓰임)를 추가로 처방해 주었다. 식욕증가의 부작용이 있는 약을 식욕감소의 부작용이 있는 약으로 다스리게 되었다. 즉, 부작용(식욕증가)으로 부작용(식욕감소)을 잡는 이이제이(?) 전략이 펼쳐졌다. 


대부분의 향정신성의약물의 설명서에 적힌 부작용 1번은 '자살이나 자살사고 증가'로 적혀있다. 살려고 먹는 약의 첫 번째 부작용이 '자살'이라니 아이러니했다. 그래서 의사의 처방이 중요한 것 같았다.

집중력 증가와 식욕감소의 부작용이 있는 '페니드'를 복용하고 나서 어제까지 강렬했던 식욕이 하루 만에 사라졌고 '죽고 싶다'는 생각은 한층 더 강해졌다. 내가 의사는 아니지만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 순간 나는 더 이상 '페니드'를 먹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자살사고가 줄어들었다.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건 약이 몸에 안 맞다는 것인데 의사도 환자의 약을 정확하게 맞춰주긴 힘들다는 것을 몇 번의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보호자가 옆에서 약의 부작용을 챙겨주고 의사와 함께 진료를 보는 것이 좋은데, 주말부부인 나를 보호해 줄 사람은 없었다.


('질병휴직 후 - 친정에 가다' 글 관련 : https://brunch.co.kr/@freeblue/58)


운동을 해야겠다며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대형 방방이(트램펄린)를 인터넷으로 구매했다. 넓은 친정집 마당에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장점과 함께 운동을 하며 살을 뺄 수 있겠다는 살기 위한 계획이었다. 

내가 없으면 트램펄린은 짐 덩어리가 되어 놔둘 곳이 없다며 엄마는 구입을 반대했으나 딸의 건강을 위한 요청에 끝까지 반대할 수는 없었다. 트램펄린 조립 및 설치는 치매에 걸린 아빠가 거의 다 해주셨다.(상품설명서에는 분명히 여자 혼자서도 설치 가능하다고 쓰여있었으나 단언컨대, 불가능하다.)


겨울의 서늘한 기운과 찌뿌두둥한 흐린 하늘아래서 방방이를 뛰기 시작했다. 300미터쯤 떨어진 앞 집 아주머니의 우는 소리가 들렸다.  

"똘아아아아아아! 똘아아아아아아아아!!"

로드킬 당한 강아지의 죽음을 애도하는 곡소리가 시작되었다. 60~70대 여성의 목소리라고 하기엔 너무 격하고 우렁찼다. 한 번 울기 시작하면 30분 이상을 울면서 '똘아아아아!'를 외쳐댔고 그 소리가 너무 듣기 싫기도 했지만, 어떻게 저렇게 격렬한 목소리로 오랫동안 울 수 있는지 신기했다. 아주머니의 외침은 너무 격해서 메아리가 울렸다.

 

"저 여자 또 시작이네. 또." 누군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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