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주 Jan 21. 2024

강하면 부러지는 건가

콩장 만들기

여자 팔자가 세면 안 좋다?


여자 팔자가 세면 안 좋다는 말은 옛이야기 일까 아니면 지금도 통하는 말일까? 다시 생각해 보면 팔자가 센 거는 좋은데 여자가 세면 안 좋다는 건가?    


리샤에 따르면 앨리스 킴이 반복적으로 계속 이야기하는 것이 세 가지가 있고 백번 넘게 들었다 하는데 대부분 아는 이야기이다.     

 

첫째는 초등학교를 머리가 좋아서 4년 만에 졸업했다. 사실 6.25 전쟁 이후이니 누구나 그렇게 한 게 아니었을까 늘 생각했다.      


둘째는 눈으로 보면 배우지 않아도 다 할 수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간장, 된장, 청국장을 메주부터 다 담그기도 했고 봄날에 쑥을 캐거나 강에서 다슬기를 잡을 때도 다른 사람의 세배는 순식간에 달성했으며 모시에 염색을 해서 여름이면 모시옷을 만들어 입기도 했다.      


셋째는 자기를 공부시켜 줬으면 장차관도 했다. 너도 열심히 공부해라.  

     

하트 여왕처럼 자기 마음에 안 들면 “Off with their heads!” 정도는 아니어도 살아 나온 경력으로 큰소리치며 살아도 될 것 같은데 현실에서 주로 듣는 이야기는 “가만히 있어라”이다.     

 

“I see!” said the Queen, who had meanwhile been examining the roses, “Off with their heads!” and the procession moved on, three of soldiers remaining behind the execute the unfortunate gardeners, who ran to Alice for protection.     

과부나 다름없이 여자 혼자서 악착같이 자식 키우고 살았는데 지금은 스스로를 잊어버리고 사는 이유가 센 팔자 탓이라면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으니 맞는 말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속 편할 것 같다.     

    

콩장 만들기     


이젠 며칠 안 남았는데 짐 싸야지 하면서 하루 이틀 가다 보니 벌써 출발할 날짜가 내일 모레이다. 저녁에 짐을 싸면 좋은데 호기심 많고 질문 많은 앨리스 킴을 이겨낼 재간이 없어 차일피일 미루다 여기까지 와버렸다. 무슨 야반도주하는 것도 아닌데 가지고 갈 리스트는 계속 늘어나는데 짐 쌀 엄두가 안 난다.


그래도 가면 먹는 게 제일 중요하니 한식파인 리샤와 나를 위해 밑반찬 몇 가지는 해가지고 가기로 한다. 콩장은 샘* 콩장이라는데 앨리스 킴에 오랜 세월 길들여진 우리는 욕하면서 배운다고 사 먹는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얼마 만의 콩장인가 싶다.


[직관으로 콩장 만드는 법]

1. 콩을 산다. (한**에서 파는 서리태 콩)

2. 물에 담가 5 ~ 6시간 불린다.

3. 서너 번 씻은 후 마지막 물과 다시마와 한 스푼의 식용유와 함께 콩을 삶는다.

4. 삶으면서 생긴 하얀 거품과 다시다는 건져내고 간을 맞출 준비를 한다.

5. 양조간장과 앨리스 킴이 4년 전에 만들어 놓은 집 간장도 추가한다.

6. 올리고당을 적당히 넣어 더 조려주고 마지막에 깨소금을 솔솔 뿌려준다.     

     


[주의사항]

주의 1. 뚜껑 덮고 삶으면 눈 깜짝할 사이에 물이 부르르 넘쳐 청소부터 해야 하다.

주의 2. 콩이 어느 정도 익었는데도 물이 많으면 물만 다른 그릇에 담아 둔다. 앨리스 킴에 따르면 조리다가 물이 조금 더 필요하면 그 물을 쓰라고 한 것 같다.

주의 3. 물이 졸면서 잠깐 한눈을 팔면 지금까지 달아오른 열로 인해 홀라당 다 타버린다. 반드시 옆에서 간도 보고 나무 주걱으로 가끔 저어준다.    


마지막은 깨로 장식을 해야 하는 데 빻아 놓은 깨가 없어 비주얼이 좋진 않지만 맛은 제법 괜찮다. 진미채를 볶고 났더니 갑자기 현타가 온다. 이제 그만, 멸치볶음은 치앙라이 가서 하자.     


몰래 짐 싸서 공항으로     


“지금 이 시간에 뭐 하냐?” 하는 말에 “짐 싸요. 아 아니 안 입는 옷 정리해요” 화들짝 놀래 진실과 거짓을 동시에 발사했다. 아직 밖이 캄캄한 새벽, 전혀 일어나지 않을 시간에 부지런히 짐을 싸고 있었는데 갑자기 방문을 여는 앨리스 킴.


생전 일어나지 않을 시간인데 그녀를 깨운 것은 아직 살아있는 그녀의 촉일까, 가끔은 깜짝 놀랄 만큼 영특함이 살아있다. 단기 기억을 못 한다는 것과 머리가 나쁘다는 것은 전혀 다른 말이라는 걸 매번 느낀다.


나이 들면 약이 하나둘씩 늘어 간다는데 먹고 있는 다양한 약, 혹시 하는 마음에 챙겨가는 약과 각종 식품 보조제들만 한 가득이다. 화장품을 빼더라도 약은 가져가야지 하는 심정으로 욕심껏 담는다.


식재료들은 가능한 치앙마이에 있는 한국마트, 지두방이나 보라마트에서 사야겠다. 치앙라이에 있는 한국마트는 없어졌다는 붐 얘기에 조금 실망스럽지만 리샤도 어느 정도 컸으니 이제는 좀 더 현지음식을 먹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치양라이 현재 날씨는 17도에서 28도, 밤은 꽤나 쌀쌀하다고 하기도 하고 수영할 정도는 아니라든지 낮엔 할만하다든지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났더니 가져가야 할 옷이 사계절을 넘나 든다.


혹시 밤에는 매우 추운 거 아닐까라는 생각에 붐에게 전기매트 가져갈까 했더니 짐이 가벼우면 가져오란다. 그럼 전기매트도 리샤와 내 것 두 개, 얇은 패딩과 혹시나 그녀를 따라가 줘야만 할 것 같은 수영장을 위해 수영복까지 챙기니 가방이 넘칠 것 같다.   

  

앨리스 킴에게 먼저 간다고 인사   


저녁에 오랜만에 무 넣고 갈치조림을 했다. 물끄러미 그녀를 보니 잘 먹는다. 우리 식탁에서 대화가 사라진 지는 꽤 오래다.


나 먼저 태국 갈 테니 잘 지내 그러다가 2월 되면 엄마도 같이 와서 치앙마이에서 잘 보내야지라고 말하지 못하고 아무 말없이 그녀를 쳐다본다. 어두워지면 집에 도착할 때까지 하는 수십 통의 전화, 어떻게 해야 하나 싶지만 그룹 2가 있으니 어떻게 되겠지라고 다시 한번 결심하고 그 의구심은 꾸욱 눌러버린다.

   

비밀작전을 하듯이 가방을 싸서 비행기를 타고 치앙마이에 내리면 붐이 우리를 기다릴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